일곱 걸음, 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by 독립여행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어떤 기록은 문장을 끝내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멈추는 순간을 만들기도 합니다.

더는 적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

채우지 않고, 텅 빈 그 여백을 느껴보는 것.

쉼은 그렇게 찾아옵니다.

기록보다 더 조용한,

말보다 더 깊은 침묵처럼.


쉬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


“한 달만 쉬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한 달을 쉬라고 하면,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 당황합니다.

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도, 마음이 쉬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일을 잊지 못하고,

쉬는 동안에도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찾아 헤맵니다.

‘나는 왜 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고,

그 시간조차 잘 쉬지 못한 채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쉼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너무 오래 성과와 연결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쉬는 시간마저 ‘의미 있는 시간’, ‘보람 있는 회복’으로 포장되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쉼조차도

‘잘 쉬어야 한다’는 강박에 묶어 두고 살아갑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이유


요즘 쉼은 ‘성과 회복의 도구’처럼 여겨집니다.

조직의 번아웃 방지 프로그램, 워라밸 복지 제도, 힐링 연수 등

이 모든 쉼이란 이름 아래에는 ‘다시 일을 잘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습니다.


리처드 러너는 말합니다.

“성과 중심의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명령 속에 가둔다.”


이런 쉼은 회복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여백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 쉼이 끝났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쉬었는데도, 왜 더 피곤하지?’


이는 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쉼의 방식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쉼이 아니면 오히려 더 피곤해지는 것이 쉼의 역설입니다.


쉼 앞에서 불편해지는 마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낍니다.

잉여 시간에 책을 한 장 더 읽어야 할 것 같고,

마음공부나 건강관리라도 해야 ‘시간을 잘 썼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어슬렁은 다릅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대로 걷고 멈춰도,

그 자체로 충분한 방식입니다.


오쇼는 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법을 기억하는 일이다.”


‘의미 있는 무의미’를 허락하는 태도.

이것이 어슬렁이 제공하는 쉼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왜 쉬는 법을 잊었을까?


쉼은 단순히 휴식이 아니라,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자기 자신과 연결되는 법’조차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릴린 폴은 『쉼과 나아감에 대하여』에서 말합니다:

“바쁘게 일하고, 잠깐의 회복만으로 돌아오는 삶은 결국 우리를 단절시킨다.”


쉼은 단절된 나를 다시 연결하는 시간입니다.

그 연결이 있어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생깁니다.


김민철 작가도 『무정형의 삶』에서 고백합니다.

“멈춰 선 그 자리에서 문득, 내가 오래전부터 필요했던 것이 쉼이었다는 걸 알았다.”


쉼은 생산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

잃어버린 나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쉼’을 대했나요?

앞으로는 어떤 쉼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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