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걸음, 존재.

지금 나는 나와 연결되어 있나요?

by 독립여행

지금 나는 나와 연결되어 있나요?


기록도 멈췄고, 걷는 것도 멈췄을 때,

조용히 떠오르는 어떤 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해야 할 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쉼 이후, 비로소 드러나는 존재의 기척.

그 조용한 떨림을 느끼는 것.

바로 존재의 시작입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 있기


‘존재’라고 하면 우리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느낍니다.

지금 이 역할, 이 성과, 이 관계 속의 내가 존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 톨레는 말합니다.

“존재는 과거의 정체성이나 미래의 꿈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감각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어슬렁거리며 걷는 시간,

속도를 늦추고 멈추는 순간,

무엇을 위해가 아닌,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진짜 존재를 마주합니다.


존재는 완성된 정체성이 아닌, 오늘 내가 선택한 방향


우리는 자주 존재를 ‘완성된 무언가’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존재는 고정된 신분이나 역할이 아닌

내가 지금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에서 드러납니다.


김영하 작가는 『단 한 번의 삶』에서 말합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보다, 당신은 오늘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 말은 직장 안에서도 유효합니다.


성과를 내고도 “그다음은 뭐지?”라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

일을 쉴 때조차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

이 모든 혼란의 감정은 사실 내 ‘존재’의 방향을 묻는 것입니다.


나는 왜 존재할까요?

그 질문에 답은 나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나를 다시 선택하며 존재합니다.


내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존재는 어떤 철학적 개념보다 먼저,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드러납니다.


릭 루빈은 『창조적 행위 : 존재의 방식』에서

“창조성은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했고,

김주환 교수는 ‘고유 감각의 회복’을 자기 존재의 회복이라 정의했습니다.


존재는 정답이 아닙니다.

존재는 성과도 아닙니다.

존재는 지금 여기의 나를 허락하는 일입니다.

바쁘게 사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을 때,

쉼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나’를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어슬렁의 끝에서 드러난 존재


속도를 늦추고, 걷고, 바라보고, 느끼고, 질문하고, 기록하고, 쉬었습니다.

그 모든 걸음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어슬렁의 마지막 걸음, 존재에 도착합니다.


어슬렁거리기는 그냥 걷는 일이 아닙니다.

존재를 알아차리는 일상의 실천입니다.


잠시 멈추었을 때,

그저 바라보았을 때,

속도와 목적에서 벗어난 그 순간에

존재는 개념이 아닌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나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왔나요?

앞으로는 어떤 태도와 감각으로 ‘나의 존재’를 더 자각하며 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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