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비전을 정하다_왜 한입(one bite)이에요?
비전을 정했다.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어떤 공간이고 싶은지, 어떤 피자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 피자집이 될 것인지에 대해 팀과 많은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씩 정해 가고 있다.
우리의 피자집이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써보려고 한다.
왜 한입(one bite)이에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피자집의 이름은 OBPC(One Bite Pizza Club)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문득 떠올랐던 것 같다. 그리고 마다마다에 의미를 담게 되었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수많은 '처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진다. 어떤 것은 냄새로, 어떤 것은 온도로, 어떤 것은 당시의 기분으로, 어떤 것은 풍경으로..
1. '처음' 엄마 없이 내 방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던 레고와 장난감, 미니카로 가득했던 경산 우방아파트 내 방.
2. 첫사랑을 '처음' 만났던, 중학교 시절 학교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대연비치 농구장.
3. 어금니 꽉 깨물고, 굳게 마음을 먹고, 한편으론 도망치는 마음으로 서울행 KTX를 타고 마주한 '처음'의 서울.
4. 2년 만에 고시원을 벗어나 '처음'생긴 내 공간, 신림동 원룸.
5. 정현이 형과 간 '첫' 해외출장이었던 상해에서 미래를 다짐했던 '첫날밤'의 기억..
말고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너무너무 많은 '처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처음'들은 내 29년짜리 기억들 속에서 나름대로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부품인데, 없으면 작동하지 못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처음'에 집중하고 싶었다.
모든 음식의 처음이 바로 한입(one bite)이었다. 나는 그 한입으로 음식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고 그 한입의 순간들을 기억 속에 저장해갔다. 그 처음 한입의 순간을 되도록이면 잊지 않았으면 해서. 한 끼의 식사가 중요한 것처럼, 한입의 순간조차 소중했으면 해서. 모든 한입에 마음을 담아.. 그래서 한입(one bite)이 되었다.
나는 삼시 세 끼를 챙겨 먹는 편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취(벌써.. 10년 째다)를 하고 있고, 지금도 집에는 가스가 없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식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저 살기 위해 먹는 것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는 꿈이었고(먹고 싶은걸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꿈이었다), 이십 대 중반에는 수단이었다(살아야 하니까 먹었다). 그리고 스물아홉, 지금 나에게 식사는 전과 다르게 많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1. 보상 - 홍대 이치류 양꼬치를 먹으면서 '이런 게 바로 누군가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먹는 행복한 식사구나'를 느꼈다. 나의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2. 행복 - 신당동 옥탑방 시절, 사랑했던 사람이 좋아했던 볶음밥(나는 그저 그랬던)을 먹으면서 '무엇을 먹냐' 보다 '누구랑 먹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볶음밥의 맛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행복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3. 위로, 휴식, 동력 - 해가 뜨기 전 하루를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식사를 거를 때가 종종 있다. 치열하게 보낸 하루가 드디어 끝나고, 그제야 쉰다. 나는 뒤늦은 첫 식사를 하며, 한입 한입 새기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내일 다시 달릴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고작 한 끼 식사가 나에게 이렇게 많은 역할을 한다. 때론 지친 하루의 적절한 보상이 되기도 하고, 때론 행복을 주기도 하고, 때론 음식에게 위로를 받기도 한다.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한 끼, 아니 한입(one bite)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를 둘러싼 소중한 한입(one bite), 그 한입(one bite)의 이야기를 피자로 하고 싶다. 모든 한입(one bite)에 마음을 담아
사실 나는 알파벳 4개로 이루어진, 마지막 알파벳은 C(Club)로 끝나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크루는 너무 힙(hip)하고, 모임은 너무 딱딱하고, 단체는 너무 건설적이니까. 그래서 나는 클럽(club)으로 정했다.
아무쪼록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