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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몰라도 마음은 자신 있다.

스물아홉의 인생 배팅 : 피자집 창업

by ryun

드디어 4월입니다. 저는 요즘 메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자는 여섯 가지, 사이드는 한 가지로 구성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일 즈음이면, 드디어 계약을 할 것 같습니다. 실감이라는 게 났다가 안 났다가 합니다. 아무튼 5월에는 드디어(?) OBPC를 연트럴 파크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나에게 '식사'는요

나는 하루를 끝내고 나서야 마음 편히 식사를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열아홉부터였던 것 같다. '먹으면 기절하는 습관'은 오후를 버리지 않기 위해 점심을 거르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하루를 마무리하고 눕기 직전에야 먹었다. 아니,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먹고 기절하겠다,라고 얘기하고 다니기까지 했었다.


매일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에는 매 끼니를 먹기엔 지갑이 너무나도 가벼웠고, 이십 대 중반에는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어떤 날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불편한 사람과 불편한 자리에서의 식사가 싫어서 거르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 이런 내가 맛있는 피자를 만들 수 있을까요

IMG_7770.jpg 메뉴개발기1 - 페포로니 피자

그런 내가 내 가게를 한다. 배민을 1년에 200번 넘게 시켜먹는, 집에 가스도 없는 내가 돈 받고 팔 피자를 만든다. 남은커녕 나를 위한 요리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피자를 만들고 있다. 비싸고 좋은 것보다 싸고 양 많은 게 아직까지 더 좋은 내가 중국산 말고 국산 쓰자고 한다.


이렇게 얘기하자니 나조차도 글을 쓰면서 '내가 과연 맛있는 피자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과 다르게 마음은 무언가 확신에 가득 차있지만.. '나는 맛있는 피자를 만들 수 있다'라는.


많이 먹었다. 2018년부터 주마다 피자를 먹으러 다녔다. 연애를 해도 30분 이상 걸리는 곳에는 가지 않는 내가 일주일에 한 번, 피자를 먹으려고 천안을 가고 안산을 가고, 부산까지 갔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지구에맛없는피자는없다 라는 해쉬태그를 남기며 50여 곳의 피자집을 다녔다.

스크린샷 2020-04-04 오전 2.48.16.png #지구에맛없는피자는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팀이 있다. 이게 가장 크다. 맛을 책임지고 만들어 줄 광민이 형, 그리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 이상의 친구 영기. 둘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못하는 걸 누구보다 잘하는 둘이 있기 때문에.

IMG_6398.jpg 좌 대륜 중 광민 우 영기



3. 맛은 몰라도 마음은 자신 있다고요.

피자 한판이랑 피클 한 접시 툭 줘도 다른 피자집이랑 다를 게 없는데, 나는 국도 있고 반찬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매장에서는 피자 한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정갈한 '한상' 든든하게 먹고 갔으면 좋겠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든든하게 먹는 식사의 즐거움, 성실하게 보낸 하루에 대한 무겁지 않은 보상. 그걸 얘기하고 싶다.


IMG_8505.jpg 언제나 존재했던 엄마

비로소 엄마가 되어본다. 일곱 살, 유치원 끝나고 피자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내게 피자 한판이랑 이것저것 먹으라고 엄마가 차려준 한상. 정크푸드 한 번을 쉽게 먹이지 않았던 엄마. 그런 엄마가 나를 위해 준비한 피자 한상. 아무튼 그래서 피자 한상.


사실 맛은 광민이 형과 영기가 다 만들고 있다. 나는 그저 형과 영기가 만들어가는 맛을 믿고,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돈을 받고 팔아야 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건 OBPC를 한 번이라도 찾아주는 분들이 좋은 기억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4. 그리고 조각피자

조각피자도 준비하고 있다. 바쁜 거 알겠는데, 먹으면 잠 오는 거 알겠는데, 한 조각 정도 괜찮다고 나한테 말하고 싶었다. 쉬어도 된다고, 고작 하루라고, 공원에 사람들 보라고. 니도 저렇게 가끔 휴식하고, 위로받고, 충전하라고. 나한테 말하고 싶었다.


P20161017_191107191_89F0F05B-E353-439A-B379-B78771ABD7E8.JPG 2016년 첫 연트럴 파크의 기억

그리고 연트럴 파크의 첫 기억을 떠올려본다. 모든 게 좋았던 날. 너무 차갑게 불지 않는 바람, 길을 걷다 보인 편의점에서 산 맥주, 그리고 그 시절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 무릎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던 그날의 기억.


연트럴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겁지 않은 한 조각의 피자와 맥주 한잔을 권하고 싶다. 그렇게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연트럴 파크에서의 기억 속에 곁들여 존재하고 싶다.



1편. 왜 하필 지금이에요?


2편.왜 하필 피자예요?


3편.왜 한입이에요?


4편.왜 연남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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