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픈 3일 전에 쓰는 글
가오픈이 3일 남았다. 주방 공사가 끝나고 태오와 종엽이는 주방에서 열심히 피자를 배우는 중이다. 나와 영기는 이것저것 사소하게 챙겨야 할 것들(메뉴판, 포스터 등등)을 채워가는 중이다. OBPC(one bite pizza club)라는 브랜드가 탄생하는 데까지 어느덧 10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길 수가 없었다(정말 길었다).
통장에 잔고는 0원이 된 지 오래고, 긴급 생활 지원금도 바닥이 난지 오래다. (반전세 집 월세도 밀리고, 가스비도 밀리고, 카드값도 밀려서 정지가 되었으니... 비로소 벼랑 끝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이 벼랑 끝, 절박한 상황과는 다르게 마음은 새벽 4시의 청구역 사거리처럼 고요하면서 담담하다. 서울 살이 10년 동안 나라는 인간이 제법 단단해졌나 보다.
아무튼 가오픈 일을 6월 12일로 정했는데 아직까지도 매일 사건이 터지고 있지만(지금은 6월 9일 새벽 3시다), 일단 열어보기로 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서울살이 10년, 내 첫 공간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이었다. 그곳에서 꼬박 2년을 살았는데(삼 개월 만에 2만 원 더 비싼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긴 했다), 그때부터 큰 집에서 살고 싶다는 뻔한(?) 목표가 생겼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목표 덕에 지금은 방이 무려 3개나 있고, 거실도 있는 넓은 집에 남자 셋이 살고 있다(원래는 혼자 살았다).
참 싫었나 보다. 그 좁아터진 고시원이 어지간히도 싫었던 거지. 그때부터 내게 공간, 집은 그저 잠자는 곳,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었다. 문을 열고, 허물 벗듯 옷을 집어던지고, 샤워를 하고, 잠에 들고, 다시 눈을 뜨고, 바닥에 던져진 옷들 중 잡히는 대로 입고, 다시 문을 연다. 그 생활을 몇 년이나 했을까.
그러다가 작년부터 영기와 동거를 시작했다. 헉헉거리고만 살았던 내가 녀석과 살고부터 순간을 남기기 시작했고, 순간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조금씩이지만(정말 조금씩..) 내일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공간, 그러니까 집도 그 순간들 중 하나였다. 문을 열면 집에서 좋은 냄새가 코를 맴돌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곳. 공간이 주는 묘한 맛을 알아버린 거다...
조명은 어떻고, 테이블은 이렇고, 목재는 뭘 썼고, 어떤 풍이고... 이런 건 나 정말 잘 모르겠고, 지금 당장은 알고 싶지도 않다. 대신에 눈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했고, 차갑기보다는 따듯하게 맞이하고, 노랫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으면 했고, 나무 향이 섞인 피자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이곳에서의 한입을 기대했으면 했고,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질문할 일이 없었으면 했다. OBPC의 공간은 이렇게 채워갔다. (궁금하다면 직접 한 번 와 주시길...)
이십 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나도 참 뻔한 구석이 많아서 그런지, '9'라는 숫자가 시도 때도 없이 어제를 추억하거나 혹은 내일을 상상하게 한다. 어떤 날은 사랑이란 단어의 개념을 바꿔버린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고, 어떤 날은 세상 누구보다 치열했던 엄마를 떠올리고, 어떤 날은 십 년 후 더 이상 헐떡거리며 살 지 않는 나를 상상하고, 또 어떤 날은 당장 몇 달 후 할리 데이비슨의 아이언 883을 타고 제주의 바닷길을 달리고 있는 나와 영기를 상상한다.
그렇게 인생에 어떤 한순간-이를테면 피자집을 차리겠다, 아이언 883을 타겠다 같은-을 쫓으면서 이십 대를 통째로 살았는데, 막상 추억하고 기억하며 다시 또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지난날들은 합격자 발표 날도 아니고, 전세 집 계약하던 날도 아니라(물론 기억하고 추억한다...), 의외로 평범하고 별 것 아닌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평범한 날들이 사진으로 남아 나를 위로하고, 걸음을 내딛게 했다.
피자집, 뭐 대단한 날에 오겠어. 그냥 지나가다 들르거나, 그냥 식사 한 끼 딱 그 정도잖아. 그러니까 특별할 것 없는 보통날, 그날을 남겨주고 싶었다. 찍는 대로 곧장 나오는 폴라로이드 같은 거 말고, 필름 카메라로 남겨 줄 생각이다. 일일이 인화하고, 포장하고, 이름도 써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잊고 지내다 만난 고작 사진 한 장이 당신 삶을 피자 한 조각만큼은 행복하게 할 거라고 확신하니까.
아무튼 나는 지금처럼 주저리주저리 가 싫어서 겪어보게 할 생각이다. (궁금하면 꼭 한번 와 주시길...)
이건 앞에서도 얘기 많이 한 것 같다. 고작 음식이 위로가 된다는 이야기, 고작 음식이 내 하루를 살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튼 도우 컨디션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걱정이다. 가오픈까지 3일 남았는데... 뭐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다.
며칠 째 틈틈이 브런치를 쓰고 있다. 얼추 1주일은 더 걸린 듯하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정말로 시간이 없다. 이제 OBPC의 모든 것은 매장에서 확인하면 될 것 같다. 그럼 OBPC에서 봅시다!
(제발 사람 많이 오길...)
주소 : 마포구 양화로 23길 40, 1층
6편. 공사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5편. 맛은 몰라도 마음은 자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