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바이트피자클럽(OBPC)-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OBPC가 될 수 있을까
매장 오픈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나름대로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함께 준비했습니다. (뭔가 대단한 준비를 한 건 아지만...) 유니폼이 필요해서 옷을 만들었고, 매장을 채워가며 물건들을 만들었고, OBPC라는 브랜드를 가볍게 접할 수 있는 굿즈(양말이나 박스테이프 같은...)도 몇 가지 준비했습니다.
처음엔 조악하게라도 자사몰까지 만들려고 했는데, 도저히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가게 하는 모든 사장님들 존경합니다). 결국 지난주 29cm를 만났고, 이번 주엔 룩북(거창한 단어와 다르게 그냥 동네 돌아다니면서 하는 촬영이지 않을까...)을 찍었어요. 그리고 몇몇 오프라인 샵에도 입점을 제안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조금 써볼까 합니다.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음식점에서 만든 옷"을 떠올리면 큼지막하게(혹은 왼쪽 가슴 한편에) 로고가 박힌 그저 그런 하얀 반팔 티가 떠오른다. 고민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옷들. 우리는 폴로도 아니고, 나이키도 아니고, 조던도 아닌데... 아무튼 그게 싫었다.
그저 그런 걸 만들 거면 만들지 말자,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자. 피자를 고민할 때처럼.
데님 팬츠와 치노(코튼) 베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내 파트너, 영기가 나섰다. 영기는 대원이 형과, 동주 형의 없어선 안될 도움을 받아 3개월을 쏟아 제품을 만들었다. 치노 베스트 같은 경우에는 샘플을 네 다섯 차례를 봤는데, 그땐 '아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결국엔 만들었지만(브이..)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옷을 만들기로 했다.
하나, 누구나 옷장에 하나씩은 있는 옷을 만든다.
둘, 혹은 옷장에 하나쯤 있으면 좋은 옷을 만든다.
OBPC는 고작 한 끼 식사가 우리의 온갖 하루에 위로와 충전이 되고, 매일 찾아오는 보통날을 기억하면 그게 사소한 추억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며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OBPC가 만드는 제품들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다.
옷, 우리가 매일 입고 살아가는 옷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옷장에 하나씩 있는 옷(이를테면 청바지나, 셔츠, 트레이닝 복 같은), 사실 그래서 한 장만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옷을 만든다. 그리고 옷장에 하나쯤은 있으면 좋은 옷을 만든다.
모두가 옷장에 한 장씩은 있는 데님 팬츠.
나만 해도 워싱 따라, 핏 따라 옷장에 50장은 있는 것 같다. 당신의 옷장에도 한 장만 있지는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 가는 바지는 채 10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옷장 구석에 박혀버리는 데님 말고, 손이 자주 가는 데님 팬츠를 만들었다.
나를 닮아가는 데님 팬츠.
나를 닮아간다. 내 걸음, 내 자세, 내 똥배가 묻어난다. 그렇게 나의 데님은 점점 변해간다. 살짝 노란빛을 띠게 워싱이 들어간 일자로 쭉 떨어지는 연청 데님 팬츠는 스케치북의 흰 도화지 같다. 나의 하루들이 오롯이 새겨져 가는 데님. 그런 바지를 만들었다.
하나쯤 있으면 좋은 옷, 코튼 베스트
마찬가지로 누구나 옷장에 하나쯤 있으면 좋은(다르게 얘기하면 없어도 상관은 없는) 옷이 있다. 이를테면 한겨울 추위를 함께 견뎌낼 롱 패딩처럼(없으면 조금 많이 추울 뿐). 피서의 계절 여름, 바다 갈 때나 챙겨가는 아쿠아 슈즈처럼.
치노(코튼) 베스트... 굳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크게 차이는 없는 옷일지도 모른다. 슈트가 없으면 주변의 경조사가 곤란한 일이 되는 것과 다르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옷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OBPC는 치노(코튼) 베스트를 만들었다. 치노라는 소재가 베스트 특유의 포멀함과 딱딱함을 덜면서, 투박하고 거친 느낌을 더했다. 마치 꽃꽂이 학원에서 만난 거친 손을 가진 여자처럼, 의외의 모습을 담았다. 무례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군대 2년, 동거 2년을 빼고 나면 6년을 혼자 살았다. 6년 동안 혼자서 밥을 먹었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사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엄마가 가장이 되고, 엄마, 동생, 그리고 나, 우리 셋이 살게 된 열두 살부터. 그래, 나는 그때부터 혼자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 몸통만큼 큰 냄비에 김치찌개, 카레, 또는 곰탕을 끓여놓곤 했다. 오래오래 먹을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랬다. 그때부터 나는 '상가로'라고 부르는 배달 잡지를 한 손에 끼고 살았으며, 지금도 나는 배달의 민족으로 1년에 260끼를 해결한다. 그런 내가 음식(피자)을 판다고..?
어렸을 때 가끔 일요일이면 엄마가 차려주던 특별한 건 하나 없지만, 밥그릇 세 개가 그저 좋았던 식사. 삼 년도 전에 전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부랴부랴 차려주셨던 떡갈비 가득했던 한상. 잠시 부산에 내려갔을 때, 영기 어머니가 차려주셨던 한상. 이런 기억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누군가가 차려준 정갈한 한상을 대접받는 기분, 그 기분을 OBPC를 찾아주신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 어떤 기억과도 쉬이 바꿀 수 없을 거라고 감히 단연코 확신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게 문을 열고 나서야 알게 된 게(열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거야) 한 가지 있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한상을 준비하는 일이,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이고, 그 손보다 마음이 열 배는 더 많이 가는 일이라는 걸 가게 문을 열고 나서야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도.
아무튼 그런 마음에서 백 참나무(비싼 나무...)로 TREY를 만들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흔적이 묻어나는. 때론 나를 위해, 때론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한상을 차려보는 기분을 한 명이라도 좋으니 공유하고 싶어서.
내 경우에는 그렇다. 가끔 아주 이상한 곳에서, 쓸데없는 고집이 생기곤 한다. 붕어빵은 팥 들어간 붕어빵만 먹어야 하고(슈크림도 맛있는데),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에는 무조건 폴로를 입는다.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건데, 피자 한 조각만큼 더 행복하고, 더 자신감이 생기곤 한다.
매장 오픈을 준비하면서 트레이와 함께 포크, 나이프, 그리고 피자 서버를 만들었다. 덕분에 나에게는 한 가지 의식이 더 생겨버렸다. 피자를 먹을 때면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피자 서버로 먹는 의식.
아무튼 이것도 팔아볼 작정으로 조금 더 만들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손에 가득 담기는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피자 서버.(집들이 선물로 괜찮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1. Cherry Wood Stool
예산이 부족했다. 매장의 모든 테이블과 의자를 직접 제작할 수 없는 상황...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바(bar) 테이블만큼은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목수, 장준이를 만났다. 당시 연남에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스툴의 이미지를 보는 순간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더 끌린 건 인스타그램 아이디 었는데, 장준이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dobbyisfreedom 이었다.
덜덜 떨리는 예산의 압박 속에서, 장준이는 아주아주 작은 예산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함께 작업을 해 주었다. (다시 한번 정말 정말 고마워) 기존의 디자인에서 높이만 조금 다르게 가져가기로 했고, 매장의 벽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체리나무를 쓰기로 했다.
장준이는 스툴을 만들 때 이런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각형도, 사람도 혼자보다는 뭉쳐있을 때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OBPC STOOL은 주로 크고 작은 직선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러한 사각형들은 무겁게 느껴지기도, 투박한 느낌까지 주기도 해요. 이런 사각형들이 하나로 만나, 가구를 이루게 되면서 투박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우아하게 느껴지길 바라며 디자인했어요. OBPC를 찾는 저마다의 사람들도 조화로운 공간의 하나가 되길 바라요.
- 이장준(@dobbyisfreedom)
-2. White Oak Mini Tray
손님에게 빌지를 전하는 것도 가벼이 전하고 싶지 않아서, 백 참나무로 빌 트레이를 만들었다. 제법 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트레이. 책상에 뭘 많이 올려두고 작업을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스테이셔너리 같은)을 올려놓을 수도 있다.
OBPC가 One Bite Pizza Club의 약자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풀어쓴 로고를 어디에다라도 놓고 싶었다. 이제 제품 배송할 일도 잦아질 테고(희망 사항...), 맥북 사과를 가로지르며 테이프를 붙여놓기도 했다.
슬리퍼와 샌들을 신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신고 다니는 양말. 양말을 만들었다. OBPC의 O, One을 숫자 '1'로 표현했다. 모든 한입, 모든 처음, 모든 하루를 잊지 않고 살아가자는 마음에서.
가격은 29cm 6,000원, 매장 4,000원
매장에 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매장에서 귀여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테이크아웃 패키지에 조금 키치함을 주고 싶었는데, 그것 말고도 한 가지를 더 만들었다. 바로 배지.
두 가지 디자인을 영기가 준비했다. 가방에도 붙일 수 있고, 비니나 캡에도 붙일 수 있고, 때로는 옷에도 붙일 수 있다. 가격은 개당 1,000원인데, 이 글 보고 오신 분이면 직원에게 얘기해서 하나씩 가져가시길.
어쨌거나 할 게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29cm 상세페이지를 만들어야 하고, 오프라인 편집샵 한 곳에 제품도 보내야 하고, 인스타그램 쇼핑 태그도 신청해야 하고, 사진은 장마와 장마 사이 어떻게 겨우 찍기는 했구요. 아, 서빙도 해야 하네요. 지금도 서빙하러 가야 합니다. 저는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