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PC(원바이트피자클럽) 6월 한 달 동안의 기록
매장은 문을 열었고, 제품들은 사진도 찍었고, 매일 생겨나는 이슈들을 하나, 둘 처리하면서(메뉴를 조금씩 바꿔본다거나, 바닥이 미끄러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들 같은)... 그렇게 7월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꼭 숫자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라고 마음먹고...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여준영이라는 사람이 있다. 스무 살 서울살이를 갓 시작했을 때, 우연히 이 사람의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다(지금은 막혀있지만)
학창 시절 공부로 줄을 세우면 뒤에서 줄을 서기 바빴고, 어찌어찌 좋은 대학을 가긴 했으나 전공(산업공학이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서 그런지(그래서 나는 아직도 졸업을 못했다), 스승이라는 단어는 내게 먼 존재였다. 아버지란 존재도 부재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남자 어른과의 관계 자체가 실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를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정말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쓴 글을 보며 나는 인생을 배웠고, 아버지를 배웠고, 태도를 배웠다. 군대 갈 때는 그가 쓴 모든 글을 인쇄해 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같이 봤던 걸 또 보고, 다시 읽고 하고 있다.
이 얘기를 왜 하냐고? 이 사람이 프레인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던 시절, 매출에 대한 이야기를 100원으로 나누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볼까... 싶어서
가게를 하나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이 100원이라고 했을 때, 크게 계약(권리금, 보증금, 월세 등)/공간(인테리어, 주방, 가구 및 집기, 에어컨, 스피커 등)/마케팅이라고 부르는 불편한 작업들(블로그, 페이스북 광고)/브랜딩(디자인, 패키지, 메뉴판, 메뉴 개발, 제품 생산 등)/기타 부대 비용(다이소, CCTV, 인터넷, 포스기, 정수기, 가스, 전기 등)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계약
먼저 권리금과 보증금 그리고 첫 달 월세를 내는 데 61원을 썼다(어마어마하다). 계약 직전 월세가 70만 원이 올라서 70만 원 x 12개월인 840만 원을 권리금에서 제외할 수 있었지만, *렌트프리 기간은 겨우 일주일이었다.
*렌트프리 : 계약하고 오픈 전 공사 시간 동안 월세를 내지 않는 시간(보통 1달 정도 주는 데 우리는 고작 1주일을 받았다)
61원이라니... 나도 믿을 수 없다. 좋은 자리긴 했지만, 코로나 19로 지구 전체가 움츠려 있는 지금, 2년째 무지막지한 권리금으로 인해 안 나가고 있었던 자리(들어가면 호구라고 말하는 자리)에 들어간다고 61원을 썼다. 무려 61원이나...
공간
61원을 써서 공간에 들어갔지만, 이제 그 공간들을 채워야 했다. OBPC가 생기기 전 이곳은 원래 '술트럴 파크'라는 세계맥주 집이었는데, 모든 것을 비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채워나가기로 했다.
'비버 랩'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형님(이제... 형님이라고 해도 되겠죠? 여전히 저희가 많이 괴롭히고 있죠?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과 매장 인테리어를 했고, '이목원'이라는 같은 경상도 출신의 형님(역시.. 형이라고 할게요)과 테이블과 테이블에 올라갈 집기들을 만들었고, '이장준'이라는 동생을 만나 스툴을 만들었고, 스피커는 아울에서 알게 된 쇼기형에게 부탁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돈이 없어서 '이케아(ikea)'에서 채운 것들이 몇 가지 된다.
비용을 정리하면 인테리어 하는데 15원을 썼고, 주방을 채우는 데 6원을 썼다. 테이블과 트레이, 포크, 나이프 등을 제작하는 데 3원을 썼다. 그리고 바 테이블의 스툴을 만드는 데 0.5원을 썼고, 예산이 없어서 이케아에서 채운 것들이 0.3원이었다. 끝으로 에어컨 두대(주방에 하나, 홀에 하나) 설치하는 데 0.1원을 썼고, 스피커 5대(화장실 1대, 홀 2대, 테라스 2대)에도 0.1원을 썼다.
다 합치니까 25원 정도를 공간을 채우는 데 썼다. 이 글을 쓰면서야 나도 '아, 이렇게 저렇게 돈이 쓰였구나'를 알아가고 있다(나 정말 막썼구나...?) 벌써 86원을 써버린 거다. 이제 남은 14원으로 매장을 오픈해야 했다.
마케팅이라고 부르는 불편한 작업들
이 바닥에 발을 들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에 돈을 쓰는 게 기호가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OBPC가 있는 연남동 같은 경우에는 네이버에 '연남동 맛집'이라고 치면 상단에 나오는 A to Z들 중에 돈 안 쓰는 곳이 없다고 한다... 참 불편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나는 여기에 돈 안 써!"라고 얘기하며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아집을 부릴 생각은 아쉽지만 없다. 이 바닥의 생태계를 바꾸겠다, 라는 거창한 소명이나 사회의식도 없다(나중에는 모르겠다, 정말 나중에는)
아무튼 남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쓰기로 했다. 네이버 블로그 200건에 0.6원을 소셜 채널 업로드에 0.9원 정도를 쓰기로 했다. 이 불편한 작업에 1.5원 정도를 쓴 거다. 자 14.5원 남았다.
**7월 6일 월요일 오전, 현재 129개의 블로그 리뷰가 있는데 이 중 진짜 리뷰는 15개입니다. 다행히 상위 링크에 나오는 블로그들은 거의 다 실제 리뷰니 참고하셔도 됩니다. 페이스북에서 OBPC 피자를 보셨다면 그것도 광고였을 겁니다.(나 정말 솔직하죠?)
브랜딩
아, 나는 이 단어가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살면서 느꼈던 거, 좋았던 거,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거 어때?라고 묻고 싶었던, 이거 해봐!라고 권하고 싶었던 것들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들과, 내가 만든 공간과 제품으로 얘기하기 위해 쓴 돈이다.
패키지, 로고, 심벌 디자인은 영기가 손그림을 그리고, 디자이너가 작업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했고, 메뉴판이나 소셜에 업로드하는 콘텐츠들은 속도가 중요하니까 그냥 내가 뚝딱 했다. 메뉴 개발은 광민이 형의 회사 셰프님이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드리면, 그 맛을 만들어 주셨다(안 계셨으면 정말 못했어요).
패키지 3원(컵 2만 장.. 박스 1만 장.. 아찔하다), 디자인 0.6원, 메뉴 개발 1원, 각종 인쇄물 인쇄 0.4원이 들었다. 여기에도 무려 5원을 썼다. 이제 남은 게... 9.5원뿐이다.
아차, 우리 제품도 만들었다. 데님 팬츠, 치노 베스트 200장 찍는 데 2.5원을 썼다. 이제 7원밖에 안 남았다. 아찔하다.
기타 부대 비용, 그리고 버린 돈..ㅠ
주방 공사가 끝나고부터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쓴 것들에 대한 비용을 이곳에 모았다.
다이소에서만 0.3원을 썼고, 애들이 한 달 동안 먹고, 마시고 하는 데 0.6원을 썼다. 그리고 각종 공과금과 세스코, 포스기, 정수기, 인터넷, CCTV에 0.1원을 썼다.
오픈 초반 식자재, 주류, 음료 등 초도 물류비로 3원을 썼고, 첫 달 직원들 급여로 2원 정도를 빼두었다. 그리고 1.5원을 푸드트럭 구매에 썼는데(원래는 매장 앞에 푸드트럭을 두려고 했었다), 지금은 골칫거리가 되었다(물론 곧 어떻게든 쓸 생각이다).
100원이 가게 하나 차리는 데 이렇게 분배되었다. 돌이켜보니 이건 이렇게 줄여야 했고, 여기서는 조금 더 썼어야 했고, 아쉬운 부분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뭐... 나름대로 잘 해낸 것 같다.
지금부터 오픈을 하고부터 7월이 오기 전까지 어떤 일들을 했는지 적어보려고 한다,라고 썼는데 또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은 벌써 7월 6일이다) 그러니까... 다음 편에 계속...
피자만 팔려고 피자집을 차린 건 아닙니다 보러가기
고작 피자집 하나 차리는 데 십 년이 걸렸습니다만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