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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Apr 08. 2020

맛은 몰라도 마음은 자신 있다.

스물아홉의 인생 배팅 : 피자집 창업

드디어 4월입니다. 저는 요즘 메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자는 여섯 가지, 사이드는 한 가지로 구성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일 즈음이면, 드디어 계약을 할 것 같습니다. 실감이라는 게 났다가 안 났다가 합니다. 아무튼 5월에는 드디어(?) OBPC를 연트럴 파크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나에게 '식사'는요
 

나는 하루를 끝내고 나서야 마음 편히 식사를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열아홉부터였던 것 같다. '먹으면 기절하는 습관'은 오후를 버리지 않기 위해 점심을 거르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하루를 마무리하고 눕기 직전에야 먹었다. 아니,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먹고 기절하겠다,라고 얘기하고 다니기까지 했었다.


매일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 같다. 이십 대 초반에는 매 끼니를 먹기엔 지갑이 너무나도 가벼웠고, 이십 대 중반에는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어떤 날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불편한 사람과 불편한 자리에서의 식사가 싫어서 거르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 이런 내가 맛있는 피자를 만들 수 있을까요

메뉴개발기1 - 페포로니 피자

그런 내가 내 가게를 한다. 배민을 1년에 200번 넘게 시켜먹는, 집에 가스도 없는 내가 돈 받고 팔 피자를 만든다. 남은커녕 나를 위한 요리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피자를 만들고 있다. 비싸고 좋은 것보다 싸고 양 많은 게 아직까지 더 좋은 내가 중국산 말고 국산 쓰자고 한다.


이렇게 얘기하자니 나조차도 글을 쓰면서 '내가 과연 맛있는 피자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과 다르게 마음은 무언가 확신에 가득 차있지만.. '나는 맛있는 피자를 만들 수 있다'라는.


많이 먹었다. 2018년부터 주마다 피자를 먹으러 다녔다. 연애를 해도 30분 이상 걸리는 곳에는 가지 않는 내가 일주일에 한 번, 피자를 먹으려고 천안을 가고 안산을 가고, 부산까지 갔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에 #지구에맛없는피자는없다 라는 해쉬태그를 남기며 50여 곳의 피자집을 다녔다.

#지구에맛없는피자는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팀이 있다. 이게 가장 크다. 맛을 책임지고 만들어 줄 광민이 형, 그리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 이상의 친구 영기. 둘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못하는 걸 누구보다 잘하는 둘이 있기 때문에.

좌 대륜 중 광민 우 영기



3. 맛은 몰라도 마음은 자신 있다고요.

피자 한판이랑 피클 한 접시 툭 줘도 다른 피자집이랑 다를 게 없는데,  나는 국도 있고 반찬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매장에서는 피자 한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정갈한 '한상' 든든하게 먹고 갔으면 좋겠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든든하게 먹는 식사의 즐거움, 성실하게 보낸 하루에 대한 무겁지 않은 보상. 그걸 얘기하고 싶다.


언제나 존재했던 엄마

비로소 엄마가 되어본다. 일곱 살, 유치원 끝나고 피자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내게 피자 한판이랑 이것저것 먹으라고 엄마가 차려준 한상. 정크푸드 한 번을 쉽게 먹이지 않았던 엄마. 그런 엄마가 나를 위해 준비한 피자 한상. 아무튼 그래서 피자 한상


사실 맛은 광민이 형과 영기가 다 만들고 있다. 나는 그저 형과 영기가 만들어가는 맛을 믿고,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돈을 받고 팔아야 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건 OBPC를 한 번이라도 찾아주는 분들이 좋은 기억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4. 그리고 조각피자
 

조각피자도 준비하고 있다. 바쁜 거 알겠는데, 먹으면 잠 오는 거 알겠는데, 한 조각 정도 괜찮다고 나한테 말하고 싶었다. 쉬어도 된다고, 고작 하루라고, 공원에 사람들 보라고. 니도 저렇게 가끔 휴식하고, 위로받고, 충전하라고. 나한테 말하고 싶었다.


2016년 첫 연트럴 파크의 기억

그리고 연트럴 파크의 첫 기억을 떠올려본다. 모든 게 좋았던 날. 너무 차갑게 불지 않는 바람, 길을 걷다 보인 편의점에서 산 맥주, 그리고 그 시절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 무릎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던 그날의 기억.


연트럴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겁지 않은 한 조각의 피자와 맥주 한잔을 권하고 싶다. 그렇게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연트럴 파크에서의 기억 속에 곁들여 존재하고 싶다.



1편. 왜 하필 지금이에요?


2편.왜 하필 피자예요?


3편.왜 한입이에요?


4편.왜 연남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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