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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May 26. 2020

스물아홉의 인생 배팅 - 피자집 창업

공사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무려 한 달 만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피자집 하나 차리는 데 뭐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였으면 절대, 절대 못 차렸을 거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또 절감하며 한 달을 보낸 것 같습니다.


지지난주 월요일, 드디어 철거를 비롯해 매장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계획에 따르면 공사는 6월 10일이 되어야 끝이 납니다. 2월에는 4월이면 오픈할 줄 알았고, 3월에는 5월이면 오픈을 할 줄 알지만.. 결국 6월, 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오고 나서야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것도 아직 계획일 뿐이지만요..)


아무튼 지난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볼까 합니다.

매장 입구 도안, 우측 PIZZA HERE는 사라질 예정이다. (예쁘죠?)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면 [사람, 인테리어, 브랜드, 그리고 나]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 태오, 그리고 종엽이


매장을 함께 꾸려나갈 사람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두 친구가 있었다. 태오와 종엽이. 그리고 두 친구는 OBPC와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다.


1. 태오가 올라왔다


'친구 이상의 친구'

먼저 태오는 나랑 영기의 오래된 친구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는데, 수련회였나? 그날 밤 우리는 우연히 함께 눕게 되었고 그날부터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스물셋에는 노량진 반지하(겨울에 따뜻한 물을 기대할 수 없고, 곱등이가 현관 앞을 지배하고 있었다)에서 1년을 함께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태오, 영기, 그리고 륜 사진)


'친구야, 올라온나'

6년 전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태오에게 올라오라고 했다. 6년 전 우리는 어렸고(물론 지금도 어리다^^), 액셀을 밟고 있었으나 방향을 생각하지 않았다. 잊지 못할 추억이지만, 분명히 실패했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더 태오에게 올라오라고 했다.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잘될 것 같냐고?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반년 전만 생각해도, 내가 이걸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나도 처음이라 어떤 공수표도 못 던지겠고, 하나도 짐작이 안된다. 그냥.. 같이 만들어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냥 좋은 기억일 것 같다. 나는 사실 그거면 충분하다. 설마 굶어 죽겠냐.."


그리고 태오가 올라왔다.

스물여섯의 태오랑 나


2. 전역을 앞둔 종엽이


'묵묵히 했던 아이'

스물셋, 학교를 다니며 평일에는 과외와 학원 알바를 했고, 주말에는 옥타곤에서 일을 했다. 그때 종엽이를 옥타곤에서 만났다. 다른 동생들처럼 형들한테 살갑게 구는 구석도 없었고, 말 수도 적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착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다.


'전역 언제냐?'

나보다 늦게 입대를 한 종엽이는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매장을 함께 꾸려나갈 친구를 떠올렸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종엽이가 떠올랐다. 곧장 연락을 했고, 종엽이는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다.



3. 구인구직


태오와 종엽이와 함께 매장을 이끌어줄 친구가 둘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사업자가 나오기 전까지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인구직 글을 올렸다.

개인 소셜에 올린 구인구직
OBPC 채널에 올린 구인구직

3일 동안 다섯 친구가 지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난주 다섯 친구를 만났고(한 친구는 만나지 못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저 고마웠다. 피자 사진 하나 없는 @obpc.seoul 계정을 통해 무려 다섯 친구가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었다.


한 지원자 친구가 그려준 OBPC 그림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구인구직은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혹시라도 구인구직에 관심이 있다면 ydryun@hellogentle.com 으로 메일 주시길..)




인테리어 - 매일이 이슈의 연속이다.


자리를 알아보고, 계약을 하고, 철거를 하고, 공사를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났다. 인테리어.. 짧게 얘기하자면.. "계속 바꾸고 싶다. 매일 사건이 터진다. 일정은 계속 밀린다." 정도인 것 같다.

3월 인테리어 업체와 첫 미팅을 하고 공사가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5월 18일까지 무려 7번의 수정을 보았지만.. 지금도 매일 현장에서 조금씩 디테일이 바뀌고 있다. 우리가 처음이라서 그런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일곱 번을 바꿔도, 또 바꾸고 싶다..


'계속 바꾸고 싶다.'


공사는 시작됐고, 시간은 흘러가는 중인데 바꾸는 것들이 계속 생겼다. 이를테면 어제까지는 입구에 창문이 없었는데 오늘은 입구에 창문을 내기로 했다. (덕분에 인테리어 업체 분들만 고생이다..)

과연 6월 10일에 마감을 할 수 있을까

처음과 달라지는 것이 생길 때마다 일정은 딜레이 되고 있다. 일정이 딜레이 되는 것과 바꾸지 않고 진행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지금도 고민과 갈등을 하고 있다. (뭐, 얼마나 달라지겠냐만은..)



'매일 사건이 터진다'


언젠가 광민이 형이 그랬다. "공사 시작하면 매일 하나씩 터질 거야"라고. 믿지 못했는데, 정말이었다. 정말(신기할 정도다) 매일 한 가지씩 터진다. (못 믿겠다면, 가게 하나 차려보시길..)


우선 푸드트럭. 500만 원 주고 인천에서 사 왔는데 당장 매장 앞에 주차를 하려면 9월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것도 보장할 수 없다. 푸드트럭에서 조각피자를 팔려고 했었다. 컵 20,000장 , 조각피자 박스 6,000개 제작이 들어간 상태였다. 그걸 떠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조각피자가 필요했다.

대안이 필요했다. 테라스에 테이크아웃 부스를 만들기로 했다. 6개월을 당연하게 준비했던 푸드트럭이 30분도 되지 않아 테이크아웃 부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2만 장이나 찍은 맥도널드 라지 세트 음료 컵


끝이 아니었다. 주차장을 테라스로 만들기 위해 데크(나무)를 깔고 있는데, 옆 건물의 건물주가 찾아왔다.


'여기서부터 60cm는 내 땅이니까 쓰지 마세요'


60cm.. 박스 하나 제대로 놓을 수도 없는 공간.. 그거 우리가 쓰면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기는 것도 아닌데.. 새삼 세상은 혼자라는 기분이 든다. 당연히 행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은 알지만, 나도 사람이니까 너무하단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튼 60cm를 비우고 데크를 깔기로 했다.

60cm가 작아질 테라스..




브랜드 - 이게 먹힐지 모르겠지만


텍스트로 주저리주저리 이런 의도로 저런 장치를 만들었다,라고 얘기하는 게 OBPC라는 브랜드를 준비하면 할수록 불편해졌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브런치에서만 그것도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어차피 몇 명 안 볼 거니까..). 시간이 제법 지나고 언젠가 내 설계가 먹혔는지 안 먹혔는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 알지 않을까 싶다.


매장을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잡화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첫 시즌을 준비했다. 10가지 정도의 제품을 준비했다. 데님 팬츠, 치노 베스트, 양말, 트레이, 미니 트레이, 포크, 나이프, 피자 스쿱, 퀵 스냅, 스툴.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데님 그리고 치노 베스트


유니폼이 필요했고, 앞치마는 싫었다. 평범하게 로고 플레이된 티도 싫었다. 그래서 데님과 치노 베스트를 만들었다. 매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멋있게 입고 일했으면 했다. 그리고 스토리를 붙여나갔다.(다음 편에 계속)

OBPC APPAREL 케어라벨 (궁금하지?)



2. 정갈한 피자 한 '상', TREY


정갈하게 차린 피자 한 '판'이 아닌 한 '상'을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매장에서 사용할 한 '상' 트레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포크, 나이프, 피자 스쿱도 만들었다. (처음엔 포크, 나이프, 스쿱, 접시가 들어가는 서랍도 제작하려고 했는데, 여건상 어렵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지구에서 하나뿐인 서랍 있는 트레이..



3.QUICK SNAP(일회용 카메라)


OBPC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사진 한 장 찍어줄 생각이다. '사진 한 장이 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니 그 사진 한 장이 주는 위로가 작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사진 한 장 남기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ORDINARY BECOMES PLEASURE AND COMFORT"

(우리를 둘러싼) 보통날이 즐거움과 위로가 된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보관해 줄 메일 박스와 퀵 스냅 패키지에 자그맣게 새겼다. 남기고 살아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메일 박스
32칸의 메일박스



4. 스툴


매장과 테라스 사이에 BAR TABLE을 만들었다. 테라스의 높이와 매장의 높이가 달라 높이가 다른 스툴이 필요했고, 때마침 잘 만든 스툴이 눈에 들어왔다. 지인을 통해 바로 연락을 취했고, 미팅을 했다. 그 친구가 가구를 대하는 철학, 이야기를 매장에서 함께 전하고 싶어 졌다. 그리고 매장에 필요한 14개의 스툴을 제작해주기로 했다(다시 한번 고맙다).

스툴




나 - 벼랑 끝, 그리고 타투



OBPC 심벌을 활용한 피자 박스 디자인을 팔목에다 새겼다. 그리고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인 'NO MIDDLE GROUND(중간이 없다)'도 새겼다. 나름대로의 결의와 배짱으로.

2020년에서야 한 2019년의 타투


어쨌거나 다시 벼랑 끝이다. 노량진 26만 원 고시원 살던 시절에도 벼랑 끝이었고, 3억 2천짜리 수업을 아주 세게 하고 있는 지금도 벼랑 끝이다. 어쨌거나 나는 아직 이십 대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낙관적으로 생각하면서 마무리한다(사실 엄청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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