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경 Oct 23. 2024

여덟 번째

인간 낙하지점

1984년, 겨우내 방랑 생활을 끝내고 봄 무렵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심각한 영양실조에 간경화 말기의 상태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식당 주방 일마저 아버지의 병구완으로 인해 못 나가는 때가 않았고 이미 일정 금액을 가불 한 상태여서 매일 세끼 챙겨 먹기도 힘들었다. 아버지는 늦여름에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자신의 인생을 돌보지 않을 요량으로 소주 됫병을 사두고 맥주 컵으로 물 마시듯 들이켰다.


그해 12월, 아버지의 다리가 심하게 붓고 배에 복수가 차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어느 날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읍내 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소식을 듣고 황망히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토사물 옆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업고 아랫길에 세워놓은 택시까지 맨발로 뛰어 내려갔다. 나는 어머니의 슬리퍼를 들고 따라 뛰었다.


 


“우야꼬, 우야노… 우야꼬…” 맨발의 어머니가 울며, 뛰며, 고향 사투리로 주문을 외듯 한탄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흔들거리던 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와 옆에서 함께 뛰고 있던 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은 소의 눈처럼 두려움이 가득했고 영문을 모르는 듯 순진했다. 나는 아버지와 눈을 맞추며 계속 함께 살아갈 것을 염원했고 아버지는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듯, 체념하듯 시선을 흐리며 몸을 늘어트렸다.


아버지의 입원과 퇴원이 몇 번 거듭되면서 무기력해진 할머니와 어머니는 병색이 짙으면서도 음주를 멈추지 않는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시시때때로 다락문을 열고 됫병에 담긴 소주를 기분 좋게 들이키며 자신의 낙하지점을 가늠하는 듯했다.


 


그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 할머니가 12월이 다 지나도록 김장을 하지 않았다며 아버지에게 성화를 부리니 못내 김장 준비를 해야겠다며 장을 보러 나갔다. 아버지는 장터에서 쓰러졌고 인근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담당의는 아버지의 장기 출혈 부위에 공과 같은 기구를 삽입했고 그 기구에 의해 수 시간이 지나면 장기 조직이 괴사 되므로 유효한 시간 안에 지혈이 되지 않으면 결국 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지혈이 되지 않으면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겁니다.”라고 담당의는 단정 지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고 일곱 시간이 지난, 밤 열 시경. 코피는 멎었고 하혈은 계속되는 가운데 병상에 차분히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아버지는 괴로운 듯 손을 허공에 휘적였다. 침대 곁에 앉아 있던 내가 일어서 손을 잡으니 내 손을 밀어내며. ‘엄마를 불러 다오.’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복도 의자에 할머니와 앉아 있던 어머니를 불러 병실에 들게 한 후 나는 복도로 나갔다. 할머니는 평소처럼 탁해진 눈을 가제수건으로 연신 닦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체머리, 바짝 고부라진 허리, 거의 남지 않는 반백의 쪽진 머리, 왼손 중지에 끼워진 두껍고 누런 황금 쌍가락지의 할머니는 밀려오는 두려움을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병실에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의사의 말 대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만 임종을 지켰다. 아버지의 임종 직후 어머니와 할머니는 울지 않았다. 나는 토할 것 같은 답답한 공기를 피해 병원 밖으로 뛰쳐나가 건물 뒤편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가족의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할머니는 문 닫힌 마루에 쪼그려 앉아 문틈으로 비치는 햇살이 만드는 먼지의 띠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자신에게 고된 삶을 강요하는 생명의 실을 스스로 잡아당겨 한 단, 한 단, 차근차근 풀어냈다. 자신에 대한 책망과 타인을 향한 원망, 혹은 대상도 없이 자신의 박복함을 한탄하며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향해 미련 없이 낙하하고 있었다.


다음 해 4월 이른 새벽, 할머니의 낯선 고함이 울렸다. 소리에 놀라 깬 내가 안방에 뛰어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천장을 향해 시선을 보내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의 고함은 의미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저항하는 것인지 순응하는 것인지, 반기는 것인지 두려워하는 것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소리였다.


 


“어헝~! 앙~! 엉~! 아앙~!”


 


그렇게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부릅뜬 눈으로 소리치던 할머니는 어느새 잠들 듯 숨이 멎었다. 아버지가 그랬듯 할머니 또한 죽음을 앞두고 남기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황망히 서서 한참 동안 조용히 식어가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나도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았다. 마음으로 준비된 담백한 가족의 죽음이었다.


 


오늘은 네 번째 맞는 아버지의 기일이다. 나물 세 가지에 닭과 계란을 삶고, 소금에 절인 조기 한 마리,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 사과, 배, 곶감, 생률, 마른 대추를 놓아 생전 할머니의 방식대로 소박한 제사상을 차렸다. 상의 양쪽에 하나씩 촛불을 켜고 밥과 국은 세 개를 나란히 놓았다. 향나무를 연필 칼로 깎아 향로에 연기를 올렸다. 생전에 질기게 사랑하고 모질게 미워했던 세 사람이다. 나에게 세 사람은 하나이며 모두이다. 제사를 마치고 상을 물린 후 좌식 책상에 앉아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이 편지는 내 마음에 깊이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쓴 편지는 내가 나를 위해, 순전히 나를 위해 쓴 글이 된다, 결과적으로.’


 


 


 


*

아버지, 올해 여름은 가끔 더웠고 장마에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 채 미끄러지듯 겨울이 왔습니다.


아버지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 속 이 세계에 존재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 해가 지고 뜰 때, 낮에 눈이 녹을 때, 새벽 창에 서리가 어릴 때 당신은 시간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요 며칠, 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집에서 머물며 계속 책을 읽었습니다. 며칠 전엔 나흘 동안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모르게 보낸 선뜩하고 끈적한 시간으로 몸의 살은 빠져나갔고 어느 정도 머릿속도 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죽는다면, 이렇게 외롭게 죽어간다면, 그렇다면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식구들을 남겨둔 채 은둔하던 아버지의 겨울을 생각합니다. 어느 해였던가… 고통스러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해질 무렵 돌아온 아버지는 산에 가서 도인을 만났다면서 돌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거나 여관에 몇 달을 머물며 지냈다고 ‘달방여관 302호’의 열쇠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쇠약해 보이는 얼굴에서 빛나던 날것 그대로의 눈빛과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먼지 더미를 털어낸 듯 홀가분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원망이나 미움 같은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어요.


은둔자가 되곤 했던 아버지의 기행은 남겨졌던 가족의 마음에 굵은 마디를 남겼습니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숙부는 불완전한 가운데 완전함을 꿈꾸었던 몽상가들이었어요. 다들 각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동원해 아버지가 보통의 인간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몽상가는 아버지였을까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는 간혹 보통의 인간처럼 살아가는 것을 연기할 때가 있었고, 그 연기가 완벽했다는 것만은 인정합니다.


아버지가 보통 인간의 삶을 구현하기에는 진심이 나지 않았다는 것, 유효한 것에 대한 아버지의 기준이 조금 달랐다는 것, 누구에게도 쏟아내지 못할 아버지만의 언어가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은 제 생애를 걸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제 삶은 아버지 인생의 완결 편이 될 테니까요.


 


아버지,

무언가 한 가지, 단 한 가지를 지니고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외롭지만 자유롭습니다. 지킨다는 마음도 없이 그것을 지키며 충실히 현재를 살아가다 생기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없는 빛, 색채입니다. 그들이 세상에 내보이는 엷은 빛은 마음속 심지에 붙은 불꽃에서 기인한 것으로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완벽하게 홀로여야 스스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리에 속해 있으며 어우러져 살게 마련인 가운데 완벽하게 홀로 된 끝점에서 자신의 불꽃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이유는 완벽하게 홀로 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매우 어렵고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우리는 홀로 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두려워하며 혼자서는 생존조차 불가능합니다.


어느 사람은 그것을 보고자 스스로 삶을 변형시키고 왜곡시키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본의 아니게 경험하게 되는 힘겨운 상황 끝에 보게 되기도 합니다. 불꽃을 찾아 나선 자와 맞이한 자 사이의 차이는 없습니다, 올 것이 오는 것일 뿐. 자신의 불꽃을 자각하는 순간 삶은 이제까지 보여줬던 단순한 프레임을 넘어 보다 섬세하고 다양하며 복잡한 덩어리의 실체를 슬며시 내보입니다. 분명 이것은 끝점이 아닌 시작점이며 지금까지 착각에 가까운 자각에 기대어 보아 온 현상들에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게 될 것임이 예견되는 순간입니다.


아버지, 제가 경험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일대(一大)의 서사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불현듯 스스로 강렬한 의지가 생기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이가 귀인이 되어 도우며, 자기 내면의 또 다른 어떤 '존재'가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리드해 나아간다는 것,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모든 상황의 방향이 바뀌었거나 전혀 다른 기반의 현재에 착지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변화가 퇴화일 수도 있고, 진화일 수도 있지만 그 가치와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의 경험치라면 외부의 가치평가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실존하는 자의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허상의 삶에서는 결과의 객관적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실존하는 자의 삶은 완성도의 수위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또한 외부의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창의적이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곤란함에 빠지지 않도록 선함을 바탕으로 배려합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사람들은 아버지를 향해 기인이라거나 허언증이 있었다거나 무책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불꽃을 순전한 의지로 결국 확인하였고, 그것에 관해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숙하게 스스로 삶을 변형시키고 왜곡시킴으로써 아버지 자신을 포함해 온 가족이 독특한 상황 속에서 평범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저로서는 유감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이어서 가능했던 제 삶이었고, 또한 어머니의 아들이어서, 할머니의 손자여서 가능했던 모든 깨달음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행복했고, 또한 모든 것이 충분했습니다.


평안을 빕니다.



이전 07화 일곱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