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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Oct 25. 2024

아홉 번째

영혼을 가르며 나아가는 자

*

"산옥아."


아버지는 다정히 나를 부른 뒤, 뚝뚜둑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무릎을 접어 쪼그리고 가만히 앉았다. 업히라는 의미였다.

그날은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저녁이었다. 저녁밥을 먹으려는데 아버지가 마당 한가운데 쪼그려 앉은 채 나를 불렀다. 열 살의 나는 점퍼를 입고 신을 신었다. 내 등 뒤에서 할머니가 언짢은 듯 아버지를 나무랐다.     


"애기 밥 먹게 둬. 산옥이 밥 먹으믄 가."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의 나는 폴짝 뛰어 아버지의 등에 얼굴을 묻었고 아버지는 나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단단히 받쳐 잡은 후 딱딱 소리를 내며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할머니의 지청구에 아버지는 소리 없이 웃으며 나를 업고 일어섰다.

    

"산옥아, 손 넣어."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업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의 숨소리와 흐릿한 술냄새, 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들판의 미흡한 계분 냄새, 오른쪽과 왼쪽으로 일렁이던 몸의 흔들림,  눈을 감고 느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아버지는 가끔 나를 불렀다.  

   

"애기야..."    

"네?" 나는 대답과 함께 아버지의 등에 내가 있음을 알리려는 듯 몸을 조금 흔들었다. 아버지는 안심한 듯 아무 말 없이 또 한참을 걸었다.               

   

나는 아버지 등과 내 배 사이에 양손을 모아 넣은 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오른쪽  볼을 아버지의 등에 단단히 붙여 놓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업고 동네 입구까지 걸었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며 산업도로가 생겼다.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에 비하면 우리 동네는 낡았고 허름하며 운명의 수레바퀴에 갇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도로가 나오자 아버지는 다시 몸을 돌려 집 쪽을 향해 걸었다. 마을 초입 첫 번째 집 커다란 창에 어린 노랗고 따뜻한 불빛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말했다.

     

"여기가 경숙이네 집이야. 경숙이는 누나의 자식이지만 남이나 다름없다. 여기 이사 와서 동네 사람들이 텃세를 부렸는데 경숙이도 한편이었어. 누나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지만 누나가 낳은 자식도 아니니까 멀리하며 살기로 했지. 하지만 언제나 이곳을 지날 때 마음이 좋지 않아. 가족이란 그런 것이지."

 

그 일이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동네는 고모부와 고모가 살 던 곳이다. 둘 사이에 태어난 고종사촌들이 서울에 자리 잡으면서 이곳을 떠나고 싶었던 고모의 바람대로 고모부 소유의 집과 땅을 숙부가 매입했고 고모는 이곳을 떠났다. 숙부가 매입한 고모부의 집과 땅은 아버지의 소유가 되었다.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한 고종 사촌 경숙 누나는 고모가 후실로 들어간 곳의 전실 자식이다.  우리가 이사와 같은 마을에 살게 되면서 사이가 더욱 나빠져 남보다 못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늘 이식된 마을의 이방인이었다. 어머니는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 최선을 다하다 제풀에 지치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움을 받았다.

어느 마을에서나 그들은 우리가 정착하지 못하고 나가주길 바랐고 사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는 것이 아버지가 바라던 바였으므로 실상을 알아채지 못한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의미도 없이 노력하고 그 끝의 배신감이나 참을 수 없는 따돌림에 힘들어하다 제풀에 지쳐 아버지를 따라 살 던 마을을 떠났다. 내 쪽은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기의 잦은 전학으로 학교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마을의 아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나를 지켜보았고 어둠 속에 빛을 내는 짐승의 눈빛으로 나를 경계했다. 작고 마른 몸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는 햇빛과 바람이 키운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그들이 다른 세계의 사람같이 느껴졌다. 마을의 아이들은 매우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자연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존재들, 마치 요정 같았다.


아버지는 마을로 난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성급하게 휘어진 길을 따라 방향을 바꾸며 걷다 아버지가 발을 헛디뎠고 길가로 밀어 쌓아놓은 눈에 발이 빠졌다. 등에 업힌 나를 추스른 뒤 다리의 눈을 털어 내려고 쿵쿵 굴렀다. 그곳을 지나쳐 계속 걸음을 떼었다. 아버지는 내 엉덩이를 받친 손을 나머지 한 손으로 톡톡 치며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손바닥 너머로 기분 좋은 토닥임이 엉덩이에 느껴졌다.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곳에 오래된 웅덩이가 있었대. 원래는 동네 공동 우물이 있었다는데 그 주변의 땅이 논으로  바뀌어 우물은 망가진채 방치되고, 방치된 우물은 시간이 지나자 웅덩이가 되었는데 처음엔 개나 염소가 빠져 죽곤 했대. 그러다 술 취한 이 씨가 밤에 발을 헛디뎌 빠져 죽었고, 얼마 후 자전거를 타고 가던 윤 씨 막내아들이 빠져 죽었는가 하면 윤 씨의 아내가 이어 자살을 한 곳이기도 해. 그런 일이 있고서 우물을 다 채워 막았대. 이 마을에 이사오던 날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존재들을 보았어. 그 존재들은 무해하지만 간혹 심술을 부리거나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떻게 해야 나를 골탕 먹일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해. 그런데 산옥아,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너를 업고 있으면 그들이 말을 걸지 않아. 평소와는 전혀 다른 슬픈 얼굴로 저만큼 떨어져 서서 나를 단지 보고만 있어. 저들에게 표정이란 게 있을까 싶지만, 내가 그리 느낀다는 게 맞겠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느낄 수 없는 절절한 무언가를. 상실감 같아. 너를 업고 이 길을 걸으며 나는 단지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상실감을 읽어. 저들은 죽어서도 놓지 못한, 잃고 싶지 않은 무엇이 있어. 나는 살아 있음에도 갈애가 없는데 죽어서도 갈애하는 저들이나 나나 매한가지겠지."

     

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길, 이제 마을에서 만나는 마지막 집을 지나고 있었다. 완만하지만 경사진 길을 아버지는 용케 고른 호흡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딱 한번 단 한 사람을 갈애했었다. 어느 여름 바닷가 달빛에 비치는 피부가 너무나 하얗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어. 머리칼은 무척 검고 한 올 한 올이 생동감 있게 찰랑거렸어. 여린 듯하나 여리지 않았고 충동적이면서 적극적인 모습이 한없이 뜨거웠어. 잘 웃다가도 불같이 화내는 모습이 예측하기 어려웠어. 그녀는 나를 한 없이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 불안감이 두려워 정착하게 되었지. 결혼하고 난 후 나는 간혹 그녀의 피부를 얇게 갈라 그 속에 들어가 버리고 싶을 만큼 갈증이 났어. 우리가 한 덩어리가 아닌 것이 못 견디겠더군. 그 사람이 너의 어머니다."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분을 흩어내는 듯 보였다. 잠시 조용히 서있다 등에 업혀 있던 나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길바닥에 웅크리고 앉은 채 나를 당신의 다리 사이에 세워둔 후 꼭 안았다. 아버지의 차갑고 억센 질 낮은 점퍼, 그 안에서 폭닥히 새어 나오는 온기, 담배 냄새와 미묘한 배율로 섞인 소주의 알코올 냄새를 나도 끌어안았다.

나를 다시 등에 업고 걷기 시작하며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지금껏 죽은 것과 살아왔다 해도 지나치지 않아. 왜냐하면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어 있는 그들이 내게 더 많이 접근해 왔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보낸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조금 전 지나온 우리 마을의 길가 마지막 집이 똘이네 집이야. 동네 사람들은 똘이네 식구들을 무시하지, 무식하고 가난하다고. 똘이네 집은 모내기나 추수 때 농사일을 거들어야 한다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아. 내가 똘이네 집 모내기할 때 똘이에게 물었었어. 학교 가고 싶지 않냐고, 그랬더니 학교에 가든 안 가든 어차피 똑같다고 대답했어. 똘이의 바로 위 오빠는 중학생인데 아직 한글을 못 떼었다고 하더라고. 참, 똘이가 왜 똘이인지 알아? 똘이는 마을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고 본명은 따로 있어. 똘이의 본명은 연지야. 보통 그 집의 이름, 가호는 아버지나 어머니, 장남 혹은 장녀의 벼슬이나 이름, 출신 지역으로 지에 부르는데 똘이네 집은 달라. 똘이는 그 집에서 제일 어린 막내거든. 그 집 식구들 중 가장 똑똑해서 동네 사람들이 똘이라고 불렀대. 역설적이게도. 똘이가 모내기가 한창인 때 논둑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도 똘이와 눈을 맞대고 있는 그것을 보게 되었는데 자전거 타고 가다 웅덩이에 빠져 죽은 윤 씨의 막내아들이었어. 똘이는 이미 알고 있었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아버지는 어둠 속의 달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얼마나 더 걸을 것인지, 어디까지 갈 작정인지 우리 집에서 멀어지는 길을 택해 걸었다. 아카시아 나무의 뿌리가 드러나도록 땅을 파고 흙을 걷어내어 낸 길이었다.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젖은 흙의 냄새와 쌉싸름한 나무뿌리의 냄새가 엉켜 진지하고 끈질긴 여름이 느껴졌다. 겨울의 길은 여름의 것보다 신사적이고 오히려 우리 집에 가는 길보다 넓고 완만하다. 동네의 마지막 집, 똘이네 집을 지나면 가로등이 없어 어둠뿐인 길이 계속되었다.

     

"산옥아, 너를 업고 밤길을 걸으면 특히 나는 기분이 좋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살아있지 않지만 살아있다고 믿고 있는 저들이 말없이 물러서서 바라보는데 이 느낌을 잘 기억하고 싶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물러서고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무심히 걸어 나아가는 거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는 거지. 지금은 너를 업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머잖아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겠지. 결국."


아버지는 독백 같은 말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인간은 왜 하나같이 모두 대단하며 슬플까? 인간 하나가 떠안고 있는 특별한 하나의 우주에 대한 연민이 시작점이 되어 결국 나 하나가 떠안고 있는 우주 하나를 통찰하지 못하고 떠다니듯 살고 있어. 나의 눈은 외부의 것에 매료되어 멀어버렸고 영혼은 개체로서의 빛을 잃어 가고 있지. 이런 내가 너를 업으면, 너를 업고 있으면, 너를 업고 걸으면 좀 살 것 같아. 소주를 입에 물고 있는 기분이거든."

   

아버지는 걸음을 늦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빛과 그리고 그림자

               

"산옥아, 산옥아, 나는 나의 사랑을, 너의 어머니를 지키지 못할 거야."  

   

나를 업은 아버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며 등으로 젖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눈을 감은채 아래로 넣어 두었던 손을 꺼내 있는 힘껏 아버지의 팔을 둘러 잡았다. 다시 얼마간 아버지는 나를 업은 채 말없이 걸었고, 그 사이 나는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결국 그 무엇도 지키지 못했다.






넷이 살던 집에서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집안 곳곳이 빈 공간이었고, 그 빈 공간에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흔적이 안타깝게 부유했다. 오랫동안 도배하지 않는 벽에서 흐르는 땟자국 처럼, 달궈진 구들에 타버린 딱딱한 장판처럼 늘러 붙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작고 동그란 양은 쟁반에 담긴 구멍 뚫린 신신파스와 담배, 가스라이터, 꽁초와 재가 담긴 스테인리스 재떨이, 분홍색 안약통을 윗목에 그대로 두었고 옷걸이에 겹겹이 쌓이듯 걸려있는 아버지의 점퍼와 셔츠가 점점 홀쭉해지며 늘어져도 치우지 않았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잠시 내장산에 구경이라도 간 듯이, 다시 올 사람들인 것처럼.

어머니는 아무 동요 없이 식당일을 했고 나 또한 학업에 전념했다. 서로 말도 없이 각자 그렇게 살았다. 어머니는 평소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훈육을 위한 도구로 언어를 사용했을 뿐 언어의 온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건너올 여분의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나누어 가지며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채 아버지만을 바랐다. 어머니의 마음은 아버지에 대한 집착과 할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닳아 없어졌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일 년이 조금 지난 어느 아침, 도시락을 가방에 담는 나를 보며 어머니가 말했다.


"산옥이는 아이일 때 아이가 아니었어. 밭에 심어놓은 무처럼 그렇게 어느새 쑥 자라 버렸지. 너의 자라온 모습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네, 엄마가."


함께 살면서도 어머니의 시선이 온전히 나에게 닿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18년. 그 어색하고 고르지 못한 정서의 결을 넘어서기도 전에 어머니는 박종명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의 삶은 의미가 없었고 의미 없음에 나란 존재가 섞여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학력고사를 두 달 앞두고 어머니 장례를 치렀다. 내 마음의 안과 밖이 너무나 소란스러웠다. 온전히 슬픔을 관통하려면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억지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모든 문제를 내 탓이라 여겼다. 모든 것을 내 탓이라 여기며 겁도 없이 혼자서 영혼을 가르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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