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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이 학교 다니기 싫어!

학교 간 셋째 딸에게서 온 전화

by 이강헌

“흑흑흑… 엄마 나, 이 학교 다니기 싫어…"


나 김해 보내줘… 더 이상 이 학교 못 다니겠어.

항상 혼자야! 밥 먹으러 가는 점심시간이 더 힘들어.

아무도 나와 함께 해주지 않아! 나 김해 다시 갈 거야…

그래서 학교에서 내 짐 다 싸들고 나왔어…”


막내딸의 휴대폰에서 울움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였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우리 부부가 밀양으로 귀촌을 하였지만,

딸들은 다니던 학교 때문에 저희들끼리 김해에 살고 있었다.

가족이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이 여러모로 불편해서


이전 중학교에서 전학하는 날

막내딸이 전학해온 학교의 3학년 반의 학급 분위기는

얼마 있으면 곧 졸업하고 학교를 떠다는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 학생 누구도 전학 온 학생에게 관심이 없었다.


전학을 해온 지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도 항상 혼자 외톨이가 되어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3학년 졸업을 코 앞에 앞두고 전학 온 학생은

무슨 문제가 있어서 온 것이 아니냐?' 라는 시각도 있었다는 것이다.


전화기 넘어 딸의 울음 섞인 소리를 들은 우리 부부는 머릿속이 하얗게되고 이어서 가슴이 아려왔다.

뭔가 슬픔이 뒤섞인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것이, 가슴 아래쪽에서 솟구쳐,

다시 목까지 뻐근해 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우리 부부는 만사를 채 쳐 놓고 급하게 차를 몰고 막내딸이 있는 학교로 달려갔다,


새로 전학 온 학교로 전학 온날- 교복이 다르다!

운전을 하고 가는 길에 우리 부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부모의 무모함과 무능함

자책감이 되어 무거운 짓눌림, 차 안 공기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가슴에는 '우리 가족은 아직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서러움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고

낯선 곳에서 혼자 외로워 울고 있는 가엾은 막내딸

빨리 달려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앞만 응시한 채 말없이 차를 몰았다.


“엄마! 아빠! 우리끼리 사는 것도 한계에 왔어요!”

둘째와 셋째 딸이 감해에서 밀양으로 오는 것도 참 어렵게 결정하였다.

우리가 밀양에 올 때에,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김해에 남아서 좁은 집에서 부모 없이 저희들끼리 살았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견디다가 1년이 채 못 되어 “엄마! 아빠! 우리끼리 사는 것도 한계에 왔어요!”

라고 해서 정리하고 밀양으로 합류를 한 것이다.


사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한계에 왔다.

우리 부부가 밀양으로 새롭게 귀촌해서 살아가는 집은 산골 깊은 마을에 있고

밀양에서 새롭게 시작한 일터는 산 넘어 읍내에 있다.

우리 부부는 딸들을 돕기 김해를 수시로 오고 가야 했다.

각기 동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곳들을 오가던 우리 부부도 이제 많이 지쳐 있었던 차이다.



“밀양은 썩었어!”

"너희들도 이제 밀양으로 오면 어떻겠느냐?" 우리의 질문에 딸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다.

밀양시가 김해에 비해 너무 작고, 자기들로서는 아무런 볼 것도 갈 곳도 없다는 표현이다.

익숙하고 편리하고 친한 친구들이 있는 김해를 떠나

불편하고 낯설고 시골스러운 밀양에 가서는 못살겠다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도 하다.


더욱이 우리가 사는 곳은 시내지역도 아니고 외진 산골이다.

하지만 가족이 나누어져 사는 생활도 너무 힘들어 서로 지친 상태이다.

가족들이 아무리 생각하고 의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논하다 보면 오히려 의견의 차이로 서로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날 때가 많았다.



근본 원인 제공자는 아빠에게 있어 더 미안하다.

딸들이 밀양으로 오는데 어려움은 교통의 불편과 주거 공간의 한계

학교와 진로, 아이들의 심정 등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근본 원인은 아빠인 내가 기존의 삶을 다 정리하고 훌쩍 골짜기로 온 것에 있다.

그래서 나의 심적 부담은 크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딸들과 의논해보면 서로의 마음과 생각이 달랐다.

어떤 때는 갈등하던 끝에 부둥켜안고 운 적도 있다.


다행히 어렵고 힘들게 몇 가지 조건을 걸고 간신히 타협점을 찾았다.

막내딸이 전학을 오게 되었고, 둘째도 합류를 한 것이다.

문제는 전학시기가 안 좋았던 것이다.

졸업을 채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전학을 시킨 것은 우리의 실수였다.

이러한 시기에는 전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한 바탕의 소용돌이는 있었지만 막내는 마음을 다잡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

요즘 나는 아침마다 막내딸 눈치를 보며 긴장한다.

행여나 “나 학교 가기 싫어!” 하면 어쩌나 싶어,


그러나 다행히 막내가 아무 말 없이 학교를 가준다.

아침에 둘째 언니와 함께 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뒷모습을 나는 끝까지 지켜보며...

마음속에서 '미안하고 고맙다!'라고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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