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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22. 2024

이름이라는 것은

내가 나이기에

지금은 한글 이름처럼 예쁜 이름이 많다. 태어난 해에 따라 유행하는 이름도 다양하다.

아이들의 모습만큼이나 이름을 짓는 것은 매우 신중한 일이 된다. 정해진 대로 장차 불리게 될 이름은 한평생 따라다닌다. 물론 개명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시댁 외조부님(아이의 증조부)께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 크게 효도하라는 의미의 이름이었다. 둘째는 우리 부부가 잘 크라는 의미로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조합하여 인터넷 철학관에서 지어 주었다.


그렇게 잘 부르고 쓰던 이름이었는데 그만 셋째가 태어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유명한 철학관에 가신 아버님께서 셋째의 이름을 받아오며 첫째와 둘째 아이의 사주팔자까지 조사한 후 새로운 이름을 들고 오신 것이다. 새로운 이름 아래 6살, 5살 꼬맹이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다.


어른들의 믿음은 들은 대로 확고한 정답이 된다. 이름으로 갈릴 운명 앞에 걸쳐진 인생의 기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환상 같은 것이다. 잘 되길 바라고 승승장구하여 앞날이 유복하길 바라는 이름 앞의 삶은 어쩌면 모두가 바라고 기도하는 삶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름은 현정아이다. 한자를 풀어보면 잘 쓰지 않는 '솥 정'에 '어금니 아'를 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출생신고하면서 아무렇게나 찍어낸 한자인지, 접수한 직원의 의견이 들어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자의 의미를 나름 해석한 바로는 솥이 있어야 의식주 중 '식'에 해당하는 밥을 지을 수 있다.

치아 중에서는 어금니가 있어야 음식을 잘게 으깨고 부수어 비로소 소화 작용이 잘 되게 넘길 수 있게 된다. 둘 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라 나 스스로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 여기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내 이름 대신 불리는 이름은 'OO 엄마'였다.

나의 이름 앞에서 점점 불릴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내가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다.

아이 위주, 집안 행사와 살림 위주, 거기에 맞벌이까지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면서부터 나의 의미는 점점 묻혀 간다. 나보다 먼저 보살필 것들이 많으니 때가 아니라 여기어졌다.

내 이름은 저만치 뒤로 가고 그래서인지 내 마음속에 간직한 오랜 꿈의 무게도 점점 서랍 안으로 들어가 잠겼다.


 물론 아이 키우면서 ‘OO 엄마’로 불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잘 커 주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엄마로 살게 한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최고의 나날이라 할 정도로 뿌듯함과 애틋함을 동시에 가진 시절의 귀한 이름이다.      


 그러면서도 사는 내내 불릴 이름 앞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냐에 따라 나의 존재가 살아난다. 내가 만나는 나의 이름은 비로소 내가 아껴 주어야 만나지게 된다. 나이가 많아도 이름이 다정히 불릴 때 가장 좋은 기억이 된다.   

  

 봄 햇살처럼 어여쁘고
별처럼 빛나는 일생의 모든 순간,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는 작은 행복은
내가 누군가를 그리 불러주었을 때도
그렇게 나타난다.

 

그 마음으로 오늘 실습을 마친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소중히 불러주었다.

가장 예쁜 이름들을 다정히 불러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지금을 위해 하루를 살고 미래는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지만 가장 귀한 이름으로 반짝반짝 빛날 인생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지금의 인생을 꽃처럼 은은하게 남길 수 있도록 다정함을 나누어 주고 싶으니 '마음별'이라 애칭 하여 본다.

 

오늘은 가족 이름을 두 눈에 잘 담아내 진하게 불러주어야겠다.


24.03.08. 금요일. 사랑으로 불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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