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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26. 2024

심고 싶은 나무

봄 햇살이 나무 끝마다 매달리다

 지난 설 명절에 고향에 다녀왔다. 일주일 정도 휴가를 받고 부모님, 친지분들도 뵙고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짐 챙기는 아이들은 이미 신이 났다. 벌써부터 마음은 이미 제주로 떠났나 보다.


 저녁 늦게 도착한 제주는 겨울이어도 여전히 좋다. 공항에서 내려 집으로 넘어가는 내내 밤공기는 찼으나 상쾌하다. 바다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와 코끝으로 전해졌다. 날은 추웠으나 창문을 열고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제주의 밤은 아름답다. 별을 마주한 하늘이다.      


 다음 날 온 가족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웰컴 투 삼달리' 마을을 찾았다. 삼달이네 집 주변에 차를 세워 두고 동네 어귀를 산책하였다. 아담한 돌담을 이어간 동네는 예전 뛰놀던 신작로인 올레가 생각나 정겨웠다. 듬성듬성 쌓아진 현무암 돌담은 언제 보아도 참 그리운 광경이다. 

 쌓아 올린 돌마다 '뽕뽕' 뚫린 구멍 사이로 바람이 통한다. 제주의 매서운 바람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 힘을 견뎌낸 것은 사이사이 열린 구멍이 지닌 비밀에 있었다. 과학적 원리에 다시 한번 선조의 지혜를 엿보게 된다. 어느새 도착하여 삼달이네 집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삼달이 가족이 촬영했던 집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다. 마당까지 들어와도 좋다는 안내 문구를 보고 조용히 들어간다. 방송에서만 보던 마당의 모습을 직접 마주한다. 실제로 살고 계신 곳이라 조심스럽기도 하다. 관광객들에게 이렇게 공개해 주시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였다. 


 사진도 찍으며 아기자기 집의 전경을 보고 있는데 마당에 심어진 작은 나무 한 그루에 눈길이 갔다. ‘OOO 나무’라고 아이 이름이 쓰인 팻말에 태어난 날인 것 같은 날짜가 예쁘게 박혀 있었다. 나무 이름은 잘 모르지만 작은 나무는 이 아이와 함께 세상에 태어나 같은 의미로 자라나고 있었다. 한참을 쳐다보니 나무가 지닌 의미가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다음에 나도 할머니가 되면 손주가 생길 것이다. 태어남을 축복하고 기쁨을 나누고자 사랑스러운 맘을 담아 나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어린 나무를 심을 것이다. 평생을 함께 자라날 소중한 벗을 아이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 나름 상상하는 미래의 일들로 설렌다. 고운 흙 위에 뿌리를 담고 목마르지 않게 물을 주며 햇살의 기운을 보듬고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아이가 자라 자신이 태어난 해에 탄생을 축복하는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면 과연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 오래도록 인생을 함께 할 나무와 아이는 하나의 뿌리로 이어져 있다. 그 기억 안엔 조부모의 깊은 사랑이 진하게 심어져 있다.


나무를 심는다면 손주를 향한 사랑을 가득 담아낼 것이다. 나무는 봄이면 가장 먼저 솜털같이 앙증맞은 노란 꽃망울을 피워낼 것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은 이파리보다 먼저 봄을 알아차리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샛노란 빛이 나무에 점점 번져갈 때쯤 기어코 봄은 온다.  

    

 나무의 이름은 바로 산수유이다. 봄바람을 타고 앙상했던 나뭇가지 끝에 노란 향기가 따라 나온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꽃말을 지닌 의미처럼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는 않으나 추운 겨울을 이겨내 노란 따스함을 전하려 앙증맞은 꽃망울을 기어코 피워낸다. 

 가을엔 초록 잎 사이 붉은 열매가 되어 타오른다. 열매도 약인지라 간과 신장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 집 정원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쯤 가장 예쁜 아이의 이름도 봄처럼 포근하게 불릴 것이다. 훗날 ‘OOO 나무’로 이름 지어질 빈칸을 채우가는 것은 느긋하게 삶을 바라보아 사랑으로 보듬을 할머니의 마음이다. 


산수유는 이름처럼 귀하게 빛처럼 흐드러진 꽃망울로 고운 향기 고이고이 계절마다 품어갈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귀한 인연의 뿌리가 사랑으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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