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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29. 2024

적당이라는 것의 기준

TV는 바보상자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우리는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좋은 일, 안 좋은 일 모두 안방에서 접하게 된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할 정도로 노출의 힘은 정말 강하다.


이면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눈으로 비치는 시각적 효과는 실로 크다. 대중의 관심과 흐름이 좌지우지된다. 어떤 뉴스나 이야기가 실제와 다를진대 쉽게 우리는 이미 거기에 각인이 되어 버린다. 반면 감동과 웃음, 재미를 주기도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전개된 사건의 참모습을 풀어내는 일이나 잃어버린 가족의 슬픔, 불우한 이웃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그들의 편에 서서 움직이기도 한다.      


 프로그램이 주는 영향은 이처럼 다양하다. 일반인을 겨냥한 이야기는 우리도 같은 일반인이기에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애써 각색된 이미지로 투영된 이야기에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 또한 텔레비전을 통해 감성을 톡톡 건들어 예전 젊었을 때의 풋풋한 마음을 되살려 보기도 한다. 심금을 울리는 로맨스 드라마에 울고 웃으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실제로 해 보지 못하는 간접적인 경험들에 빠져든다.   

   

 민족을 하나로 묶기도 한다. 한 예로 2002년 축구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을 외쳤고, 붉은 악마가 거리를 휩쓸었다. 통합된 하나의 소리로 우리는 막강한 민족성을 보여주었다. 사용했던 쓰레기 정리까지 완벽하여 투철한 시민정신을 보여주었다. 바로 TV라는 네모난 상자에 펼쳐진 공 하나에 대중이 하나가 되었던 시절이다.   

   

 TV에 보이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라 우리는 그저 보인 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참모습을 알기 전 그것이 정답인 양 굳어진 채 생각을 멈춘 것과 같다. 공부한다거나 일을 하다 보면 부딪히는 일들에서 생각한다. 여러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하여 결론 도출까지의 과정을 거듭해야 하는 것이라면 매체를 통한 시청각 효과는 에너지를 무리하게 들이지 않아도 쉽게 접속이 된다. 이것이 중독처럼 쉽게 이끌게 되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 하지만 굉장히 똑똑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세상이 윤택해진 만큼 다양한 세상의 일들을 쉽게 접하게 한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만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고 휴식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누워 지내는 자신은 배만 나오게 될 것이다. 세상을 쉽고 다양하게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성장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 이 앞을 계속 떠나지 못하고 서성인다면?

 사고의 전환 통해 다양하고 유연한 대처 방법을 터득하기보다는 그저 리모컨을 눌러대며 이리저리 휘젓는 외로운 사람들을 만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루에 조금이라도 행하여 내가 버틸 수 있는 시너지의 힘을 키우는 것은 삶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똑똑한 네모 상자 안에 그저 생각 없이 머리를 몇 시간째 주야장천으로 집어넣는 바보로만 살아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이든 적당히 조절하는 힘은 필요하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를 스스로 알아차리자.
적당한 선에서
 좀 더 내게 윤택해질 방향으로의 실천을 통해
일상의 행복을 잘 엮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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