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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Apr 05. 2024

아빠의 봄

하늘에서 꽃을 내리다

아빠!

나이가 들어도 딸은 "아빠"하고 크게 부르는 것이 좋은가 봐요.

제법 따뜻한 공기가 노란 산수유 가지 끝과 목련의 솜털을 이고 오고 있어요.

이번 봄은 벚꽃이 빨리 핀다는데 아빠와 함께 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쉬운 계절이에요.

아프신 병상에서 힘든 나날을 딛고 편히 눈 감으신 날도 어느덧 햇수로 3년 차가 되네요.


멀리 있어 자주 뵙지 못하지만, 아빠 계신 곳에 붙어있는 사진과 아빠의 추억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폐가 안 좋아서 숨이 차기 때문에 늘 산소요법으로 호흡보조하걷기조차 힘든 나날, 가까운 곳 나들이 쉽게 하지 못하신 아빠 생각에 봄날의 꽃마저 슬프게 흩어집니다.


부모님 세대가 그렇듯 가난을 딛고 식구들 먹여 살리시느라 짊어진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결혼하고 자식을 키워가며 조금씩 알아갑니다.

아빠가 이고 간 인생의 행로는 아빠의 체구보다 더한 무게를 이 악물고 짊어내어 견디어낸 흔적입니다.

고독한 독백을 느낄 겨를도 없이 왁자지껄 철부지 아이들을 키워내며 이미 더한 사랑으로 지켜간 세월입니다.  


아빠 덕분에 큰딸은 용기 있게 나아가는 간호사가 되었어요.

미래를 알지 못해 고민하던 고3 시절 저에게 간호사의 길을 가보라 권하셨지요. 아마 아빠는 선견지명이 있으셨나 봅니다. 생각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던 분야였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용기를 주셨던 것은 아빠의 다정하면서도 확고한 목소리였지요.

   

생명을 다루는 간호 행위를 서서히 배워나가는 동안은 실수도 하고, 혼나기도 하며 마냥 힘들게만 느껴지던 시절이었어요. 어려움에 맞서 익혀감과 얻어냄 속에 쌓여가는 경험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까지의 무수한 과정은 결국 스스로 보듬고 채워가야 단련이 되는 것임을 이제 압니다. 무엇이든 거저 주어지는 것은 절대 없음을 비로소 압니다. 아빠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고비를 이겨내어 우뚝 서셨을까요?


아빠 덕분에 점차 간호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갑니다. 눈을 맞추고 다독이며 거친 손을 가장 아름다운 손길로 건넬 수 있는 이유는 환자분들의 쾌유와 안위를 보면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던 나날들이 쌓여서입니다.  

나의 일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과 가치를 마음으로 되내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큰 행운입니다. 어려움을 비껴 서서 삶의 가치를 알아간 순간들이 쌓여 내가 되어 갑니다.

어느덧 25년 차 간호사로 성장하여 간 나날들은 오로지 내가 정성을 다하여 하루하루 걸어간 발자취 덕분입니다. 그 바탕엔 아빠가 계시지요.

    

내가 간호사임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빠가 나를 믿어주고 지켜봐 주신 이유 하나입니다. 아빠 덕분에 제가 선택한 방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스스로 걸어가고 찾아내며 깨달아가고 있어요. 간호사가 되어 정성 어린 마음을 지닌 내가 되어 봅니다. 기본을 알고 잘 행하도록 다짐하여 갑니다.  

환자와 만나는 일은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환자의 마음에 서서 생각하고 대할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이 향한 관점의 방향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다독이며 일어설 수 있도록 소중하게 바라봐 주고 생각하여 이해하는 마음같은 거에요.

     

아빠 덕분에 간호사가 되었고 아빠 덕분에 간호사 일을 합니다. 아빠의 소망으로 함께 한 간호사의 길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소망을 더해 점차 멋지게 성장하며 나아갑니다. 앞으로도 배워가야 할 것들은 계속 진행 중이에요.

오늘도 거동이 불편하신 88세 연로하신 할머니 옷을 벗기고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드렸어요. 무언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바라지 않은 마음이 전달이 될 때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할머니 옷을 갈아입혀 드린 것처럼 아빠의 옷을 만질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 제 기억 안에는 늘 함께합니다. 죽음의 끝에서 어찌할 수 없던 그때의 슬픔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아빠의 손은 식어갔으나 따뜻함은 내내 기억됩니다. 병상에 계신 아빠의 삶의 자국을 대신 닦아줄 그런 딸은 못 되었지만 날 위해 흘린 눈물만큼 잘 살아가는 것이 답인가 봅니다.


봄꽃 흩날리는 하늘은 지금 볼 수 있을 때가 가장 최상입니다. 어느 때고 소중하지 않을 지금은 없기에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지금을 잘 이어가기 위해 오늘 하루도 정성을 다해 살아보기를요.     

봄꽃의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날 아련함으로 몽글몽글 마음이 피어갑니다. 못내 아빠가 그리운 큰딸 정아가 아빠를 나지막이 불러보고 기억합니다. 감사하고 그리운 마음은 아빠의 봄처럼 흩날리어 밤이 늦도록 하염없이 깊어갑니다.


사랑해요. 아빠!


24.03.18. 월요일. 사랑하는 딸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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