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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Apr 09. 2024

우정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요새 벚꽃이 만발하여 마음이 풍성해진다. 바람이 불면 꽃비가 되어 흩날리는 광경으로도 ‘몽글몽글’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다. 가지 끝에 기어코 걸린 봄은 살랑이는 봄 햇살의 포근함만큼 모두의 눈에 아른거린다. 지금의 시간이 무엇보다 최고임을 알게 한다. 여기저기 '톡톡' 터지어 머금은 꽃잎의 풍성함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나 귀한 광경이다. 지나는 거리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벚꽃의 봄을 이고 친구가 왔다.  내가 사는 지역에 일정이 있어 들른 김에 보기로 한다.

토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하며 통화를 마쳤다. 오랜만에 볼 생각에 반가운 맘이 앞섰다.


 우린 초등학교 절친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까르르’ 웃어대며 신나게 놀기도 하고, 비밀 친구라 ‘속닥속닥’ 편지도 교환하며 우정을 다졌다.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의 광경이 아직까지 떠오르는 것을 보면 기분 좋은 감정을 나누었던 것이 틀림없다.


 교정 아래 만발한 벚꽃의 광경이 아직도 생각나는 까닭은 꽃잎같이 어여쁘게 피어 있던 친구와의 우정을 서로의 마음에 ‘콕콕’ 심어 주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린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른 곳으로 다녔고 연락이 뜸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친구가 서울로 갔다는 말을 다른 친구로부터 듣게 되었고 더더욱 연락할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우린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며 서로의 소식을 알지도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몇 년 전 연락이 닿아 만났던 날은 어색함이 아닌 반가움이었다. 오랜 친구라 그런지 엊그제까지 만났던 사이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편해서일까? 그간 서로의 소식을 이야기하는 내내 학창 시절 우리의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아직도 내가 준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내심 놀랐다. 시간이 많이 흘렀을 텐데 어릴 때 나누던 꼬깃꼬깃 편지를 소중하게 간직한 친구의 마음이 그저 고마웠다. 예전 내 글씨체와 그려진 그림, 편지의 내용에 또 한 번 크게 웃는다.


 함께 공유되던 이야기 속으로 우리는 달려 나간다. 우리는 순수함 그 자체였기에 편지 하나만으로도 그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지금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추억으로 자리 잡아 소환되는 이유는 과거의 일상 안에 잊히지 않은 소중한 시절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쉽게 열어볼 수 있도록 기억 안에 책갈피를 고이 끼워 간직해 낸 것이다.


 “ 나, 2박 3일 간 남편과 남편 친구 가족과 여행해. 간 김에 너 얼굴 보고 가려고”

 “ 그래, 일정 보고 꼭 연락해. 차라도 마시면서 얼굴이나 보자”

 “알겠어. 내가 시간 보면서 연락할게!”


 얼굴이라도 본다는 것은 만나는 사이에 나눌 수 있는 가장 예쁜 말이다.

오래 만나면 좋지만 짧게나마 가까이에서 얼굴이라도 본다는 것은 서로의 눈을 보아 안색을 살피고 잘 지내고 있으므로 마음을 놓는 것이다.


저녁 늦게 친구 부부가 집 근처로 오기에 근처 카페를 갈까 하다가 집으로 오라고 일렀다.

처음 집으로 오는 것이라 친구는 난감해했지만 나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쉬웠다.

내려진 커피와 달콤한 과일이 어우러져 서로의 이야기는 즐거움이 되고 또 그렇게 얼을 마주한다. 친구가 내게 깜짝 선물을 내민다. 2시간~3시간 내리 손으로 일일이 뜬 양말목 방석이다.

자리에 앉은 채 내내 고개를 떨구어 집중하면서 떴을 친구 모습이 떠오른다. 받아 든 나는 감탄한다. 이것을 전해줄 생각으로 기쁜 마음을 넣어 한 땀 한 땀 내리 떴겠구나 생각하니 고마웠다.

내가 무언가 줄 수 있을 때 받은 이보다 내가 더 기쁘다. 친구는 그것을 내게 주려고 했나 보다.


근사한 방석은 내가 편해질 자리이다. 차 시트 위에 올려두고 사용하면 여름에도, 겨울에도 모두 좋다고 했다. 여름엔 시원하게 땀을 흡수하고, 겨울은 엉덩이가 시리지 않게 해 준다고 했다.


어떤 선물보다 한가득 정성에 기운이 난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 감사한 마음이다. 훗날 소환할 추억의 책갈피를 지금 여기에 끼워 두어야겠다. 나도 보답으로 예쁜 시집을 선물로 준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니 오히려 나보다 친구가 더 흐뭇해한다. 자부심이 왕창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리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다.


서로를 응원하고 고마워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이어진 피드백이다. 물질의 크기와 가격보다 더 큰 사랑을 서로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이어간 소통의 기술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품위를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나의 마음을 잘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기술이다.


친구와 나는 사는 곳이 다르고 멀어도, 오랜만에 만나도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어린 시절의 쌍방향 피드백이 잘 이어진 증거다. 표현하여 이야기하는 소통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도 안부가 된다.

 

친구가 돌아가는 길 가로등 아래는 유난히 빛이 나고 곱다.

보내는 마음을 얹어 가는 길 '조심히 잘 가라'라고 벚꽃의 향기가 한들한들 포개져간다.          


                                             친구가 떠 준 양말목 방석 - 고마워 잘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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