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아 Jul 03. 2024

옥수수

눈으로 보듬어 흙과 만나는

나는 옥수수를 좋아한다. 찜기에 삶아낸 옥수수를 한숨 식힌 후 반으로 툭 잘라 남편과 나누어 먹는다. 옥수수 알갱이의 쫀득쫀득한 맛 약간의 달콤함과 어울리어 입 안에 퍼지면 저절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입을 쉴 수 없게 하는 여름 간식 중 하나이다. 근처 지역에 유명한 옥수수 품종이 있어 매년 구매 후 한 번씩 먹을 만큼 냉동고에 넣어 둔다.      


 아주 연한(거의 흰색에 가까운 베이지) 속살의 알갱이가 꽁꽁 얼려져 겨울을 난다. 어서 여름이 오라고 문을 열 때마다 아우성이었을 텐데 구석에 놓인 옥수수들을 들여다본 것은 제법 더워지기 시작한 6월 중순, 한낮의 열기가 길게 뻗어 쫀득한 맛이 필요한 여름 나절이었다. 비로소 꺼내어 찜기에 삶아 식탁 위에 두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지나다가 툭 건드리어 한 입씩 맛보기 시작한다. 나도 반으로 툭 잘라먹는다. 탱탱하고 하얀 쫀득함이 입안에 퍼지며 금세 옥수수 향기에 빠진다.


 주말 연속, 어떤 날은 평일에 쪄서  날마다 먹다 보니 옥수수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옥수수 삶아 먹자. 너무 맛있게 쪄서 또 먹고 싶어.”

 “이제 옥수수 없는데. 옥수수 나오면 사러 가요.”


이제는 나보다 남편이 옥수수를 찾는다. 지난 주말 괴산에 간 김에 시장에 들러 옥수수를 사려고 했으나 괴산 대학 찰옥수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7월이 넘어가면 그때부터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니 그때 오라고 하는 상인의 말에 아쉬워하는 남편이다. 뭐든 시기가 있으니 조금 기다려 봐야 한다. 무언가 얻으려면 기다림의 과정도 필요하니 흔하디 흔한 옥수수의 소중함도 몸소 느낄 터이다.      


일요일(6/30)에 직장 동료 돌잔치가 있어 청주로 나가는 길에 남편과 이동하며 지인과 만나기로 했다. 가는 도중 통화를 하며 서로 출발했는지 확인하는데 오전에 옥수수를 구매하여 나를 위해 맛보라고 쪄서 가지고 오고 있다고 했다.


“와! 고마워요. 옥수수 어디서 샀어요?” 당장 물었다. 그녀도 내가 옥수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렇게 따로 챙겨 나누는 마음이 고맙기만 하다. 소소한 옥수수 하나에 여러 마음이 들어 있다.


“석판이라는 마을에 미백 옥수수가 유명해. 거기서 한 망에 30개 3만 원 주고 샀지.”

“오. 그래요? 나는 대학 찰옥수수만 있는 줄 알았지. 돌잔치 끝나고 들러야겠다.”      


 내가 원하던 품종만 맛있을 거라는 고정된 생각에 아주 가까이에 다른 것이 존재함을 안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잘 모르는 것은 시선으로부터 아예 빠져 있고 아는 것만 보이는 현상이 여기에서도 나타나니 우습기도 하다.


돌잔치 후 밖을 나오니 비가 제법 쏟아지고 시간은 6시가 넘었다. 저녁 시간인 데다가 비까지 오니 옥수수가게들이 파장했을 것 같았지만 드라이브하는 겸 둘러보기로 했다. 와이퍼마다 부딪는 빗방울과 음악이 너무나 어울리는 감상적인 분위기에 취해 우리는 '룰루랄라' 옥수수를 사러 간다.      


석판 마을에 진입하니 시골 도로변 옥수수가게가 천막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조금 더 가니 다른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비가 와서 문을 일찍 닫았구나! 아쉬워하는 순간 멀리 불빛이 반짝이는 가게 한 곳이 보인다. 제법 널찍한 가게 앞쪽에 찜기가 돌아가며 하얀 김이 ‘퐁퐁’  솟아오른다. 매대 위에는 옥수수자루 망이 3개 놓여 있고 뒤쪽 커다란 소쿠리에 가득 오늘 수확한 옥수수들이 놓여 있다. 껍질을 깐 옥수수들과 마주하니 배가 부름에도 군침이 돈다. 미리 깐 옥수수들을 삶은 후 진공으로 포장하여 냉동고 보관하기도 하고 택배를 보내신다고도 했다. 작업량이 어마어마하다. 깐 옥수수 껍질 더미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처음 방문한 곳이지만 나이 지긋한 주인장께 농사의 고마움을 전한다. 이 때문에 내가 맛있게 먹고 있노라고. 여름의 햇살과 비와 그들이 땀과 눈으로의 보듬어감이 흙과 만나 이룬 결실이다. 힘든 농사일이지만 나름의 보람과 뿌듯함을 가진다는 말이 그을린 얼굴에 가득 번져 있었다. 이것으로 자식을 키우고 먹고살고 있으니 그만한 일이 없다. 세상에 하찮은 일은 한 없다고 느끼는 순간 열심히 사는 모습에 마음으로 감동하는 사이 옥수수 몇 개 더 넣어 주시며 미소를 지으신다.


운전석에 앉아 옥수수를 구매해 가져간다는 성공 사실과 함께 농사일에 한 땀 한 땀 귀한 경험을 이어가 결국 우리에게 돌려주는 그 마음마저 가져가게 되어 비 오는 날의 분위기는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감동스러운 마음이 포근해진 까닭은 감사한 마음을 이고 있어서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찜기에 넣고 뉴슈가 약간 참가해 25분간 쪄낸다. 집게로 뜨거운 옥수수를 그릇에 꺼내 놓으면 완성이다. 오늘 삶아낸 귀한 옥수수의 이름은 바로 얼룩이다(실제 이름).      


옥수수야! 이번 여름도 잘 부탁해!     


쫀득한 얼룩이 옥수수


수요일 연재
이전 04화 자전거와 현암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