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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Oct 16. 2024

간호사로 거듭나려면

나의 경험을 토대로 제대로 알려준다는

20대 청춘(혹은 그 이상)들은 앞을 알 수 없는 막연함과 걱정 그리고 약간의 기대와 설렘, 희망을 품고  달리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예비 간호사로 나아가게 될 시점에서 지난 4년 동안의 힘든 공부 과정을 그들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간호사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학업에 몰두한다. 어려운 전공 과정을 독파하고 부수적인 교양 수업, 근거 기반 연구와 지침을 기반으로 한 간호과정 적용, 윤리적 방향을 따르기 위한 지식과 태도를 기르고, 핵심 술기를 제대로 적용하도록 시뮬레이션 실습 과정을 충분히 거치고 평가한다. 또 실습지에서의 경험을 쌓아 임상으로 나아가기 전 여러 분야의 간호 업무를 배우고 익힌다. 뿐만 아니라 정서적 교감과 간호 영역별 숙지할 내용을 분야 별로 익히고 가장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 함양에 이르기까지 나날이 접근해야 할 과정은 차고 넘친다.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4학년 간호학과 D반 대상 임상 통합 실습을 맡게 되어 나에게도 새로운 2학기에 대한 도전 과제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든 찰나 무조건 많이 가르쳐 주려고 하기보다 함께 해보자는 마인드로 생각을 전환했다. 가르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많이 넣어주기만 급급할 것이다. 받아들일 그릇의 크기는 다양한데 넣기만 하다 보면 오히려 듣다가 일부는 넘쳐서 흘리고, 일부는 받아들이지도 못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집담회 동안의 짧은 시간 안에 각자가 발표할 보고서가 매주 가득하기에 모두의 참여를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에 집중해서 함께 토론하며 접근해 나갈 방법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의 경험을 잘 녹여내 정확한 사례와 근거를 기반으로 제대로 알려주자 다짐하였다.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절대 아니다. 이전 기본간호학과 성인 간호학을 뒤지고 부서에 맞는 환자 대상별 질환에 대해 미리 숙지하는 동안 제대로 된 앎에 대해 내가 다시 알아간다. 처음 접할 때 무조건 어렵다고 느꼈던 것들은 지금에 이르러 이미 익숙해졌다. 경험이 쌓이는 동안 관심의 영역은 넓어지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의 합 커다. 집중하는 눈초리와 접근하는 마음가짐 또한 달라짐을 느낀다. 뭐든연륜의 힘은 꾸준함이 주는 인내에 대한 보답인가 보다.


많이 다루지 않아 다시 숙지할 질환에 대해 근거 기반 간호를 다시 공부하면서 지금의 공부 접근 방식을 내 대학 시절에 적용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작은 체구에 무거운 전공 서적을 낑낑대며 들고 다닌 모습이 먼저 그려진다. 고등학생 때보다 더한 수업 일수와 평가 방식에 부담을 느끼고 낯선 용어와 해부학적 이론까지 독파하느라 어렵고 버겁기만 했던 시절이다. 아무리 외워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도무지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누가 젊을 때의 기억력이 더 낫다고  말했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내 것이 되기까지는 고된 과정을 스스로 느끼고 임해야 한다. 그중에 재미있고 관심이 가는 정신간호학, 아동간호학 등의 과목도 있었으나 그건 다른 친구들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누구나의 것이었다.


지금 학생들의 학업 수준은 예전과 비교하여 말도 못 하게 높아졌다. 근거 기반 간호 지침은 늘고 정확한 핵심 술기를 위한 시뮬레이션 과정, 사례기반 적용 등 학습할 주제와 보고서가 많다. 이론적 지식 함량을 위해 다양한 매체와 장비가 동원되고 있다. 책 외에 영상물로도 제작 배포되는 시뮬레이션 과정 접근법은 맘만 먹고 눈만 뜨면 얼마든지 활용수 있다.


그만큼 어려워진 것은 취업이다.

종합 병원 이상(일명 빅 5 병원과 대학병원) 입사하려면 토익 점수를 어느 정도 받아 두고 기본/전문 심폐소생술 자격증 준비와 의사소통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부터 직무능력평가(AI), 이론적 지식 테스트 등에 이르기까지 준비할 것들이 많다.


라떼는 토익을 준비하거나 기본/전문 심폐소생술 자격 과정은 전혀 하지 않았기에 하면 할수록 점점 높아지는 문턱의 크기에 실감한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 무게가 커졌음이 느껴진다. 더욱이 수도권 지역은 아예 취업의 문턱이 좁아진 상황이니 이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간호학과 학생 수는 증원하고 있으나 임상을 떠나는 간호사 수도 만만치 않다. 요새 의료 사태만 보아도 까마득한 미래 앞에 놓인 가엾은 후배들의 존재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학 3학년 때 실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교내 실습 시간은 이론이 아니라 직접 해볼 수 있어서 졸리지도 않고 너무 재미있었다. 하얀 간호사복(원피스)을 입고 간호화로 갈아 신고 머리에는 간호사캡을 쓴다. 간호사캡을 머리에 고정하려면 양쪽 정수리 옆에 왕실핀으로 고정해야 한다. 실핀이 머리에 엉기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아프기까지 하다. 잘 고정해서 유지해야 실습 시간 내내 흐트러지지 않게 집중할 수 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실습실로 모이는데 사복이 아닌 하얀 간호사복이라 다들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벌써 간호사 된 기분도 들었다. 교수님께서 이론적 부분을 들어 직접 시범을 보이시고 나서 우리는 연습에 매진한다. 요즘처럼 술기를 위한 시뮬레이션실이나 실습 모형(다양한 신체 부위별 인형)이 없었다. 근육주사를 위한 술기를 익히려면 사과와 귤을 이용하여 주사 연습을 했다.


사과가 영문도 모른 채 주사를 맞는다. 피스톤을 당긴다. 혈액이 안 흘러나와야 한다. 사과가 소리를 지른다.

“이게 무슨 일이냐! 아무 설명 없이 이러기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악!”

놓인 사과 엉덩이가 욱신거리더니 발끈한 부분마다 상처가 생긴다. 갈변하기 시작한 점들이 무수히 꽂힌다.

“미안! 내가 잘해볼게. 너의 역할이 나의 앞으로를 결정하니 잘 부탁해.” 자꾸만 소리 지르는 사과들이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다. 몇 번의 오랜 연습 끝에 짝꿍끼리 연습한다. 긴장되는 시간이 다가오니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심호흡도 소용없던 떨림을 마주한다.  내가 안아가야 할 시간이다. 어서 그 시간이 지났으면 하고 재미있던 처음의 기분은 울상이 된다. 서로에게 술기를 적용하며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관찰을 통해 제대로 된 행위를 하기까지 부담스러운 시간은 기어코 다가온다.


지금은 당당히 할 수 있는 행위들은 그동안의 경험이 오롯이 쌓인 결과이다. 처음의 떨림이 그래서 좋다. 풋풋한 마음은 새롭고, 긴장하는 손길을 따라 이어질 용기를 스스로 거머쥐어야 한다. 지금 학생들을 보니 그 시절의 나와 교차되 결국은 같은 입장이 된다. 알지만 잘 알지 못하고, 할 수 있지만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함은 여전히 쿵쾅거리는 심장의 소리만큼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힘껏 응원해 주고 싶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고 말해 주고 싶다. 처음이라는 순간의 마주함이 곧 시작이라는 나의 길을 하나씩 만들어간다고 말해 주고 싶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힘이 된다. 그 길을 가는 우리가 제대로 잘 알려 주어야 당당히 그 길을 따라 걸어올 것이다. 그리하여 25년 간의 간호사의 경험을 안으로 되살리고 밖으로 끄집어내 같이 가는 오늘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미 우리는 단 하나의 이유로 연결 지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러면 세상이 너를 반겨줄 것이다.

Go the way you want to go.
Then the world will welcome you.

by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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