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아 Oct 23. 2024

한여름밤의 템페스트

관용과 화합, 자유에 이를 존재는

“여러분의 박수갈채로 저를 이 무리들로부터 떼어주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숨결로 저의 돛들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을 즐겁게 해 드리는 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 박수만이 오래 그곳에 남았다. 길게 남긴 여운은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를 향한 시선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단순히 연극이 주는 힘은 사람이 하는 대화와 행위에 있지 않고 오랜 기간 연습을 거치며 투영된 작품 속의 자신과의 합을 이룬 또 다른 자아다. 던지는 메시지의 힘을 알려면 우리도 그 속에 들어가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고 의미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지난 주말 남편과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서 「한 여름밤의 템페스트」 연극을 보았다. 충북 도립극단 창단 기념으로 공연할 연극의 포스터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흑발의 늙은 여성의 또렷하고 강한 눈빛의 힘이 저절로 눈에 들었고 연극이라는 무대가 궁금하기도 하여 신청한 것이다.

템페스트? 그 뜻은 과연 무엇일까? 배우이면서 극작가인 셰익스피어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셰익스피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그가 녹여낸 철학적 의미가 연극으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졌다.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으로 들어서니 객석은 이미 차 있었다. 앞쪽 가까이 보기 좋은 자리로 예약을 하였기에 지정된 자리로 편하게 들어선 순간 무대 커튼에 띄워진 연극의 제목이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연극이 시작되면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할 수 없기에 얼른 무대의 적막만을 핸드폰 사진으로 찍어 기록해 두었다. 희극의 하나로 마무리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 오늘 공연하게 될 충북도립극단의 창단을 위한 시작이라고 하니 처음과 마지막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둥글게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드디어 막이 오른다. 심오한 음악과 함께 바다를 표현한 배경 장면이 펼쳐진다.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서커스를 보는 듯한) 파란 요정이 심해의 어두운 바다에서 책을 하나 건져 올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장면을 숨죽이며 바라보는 동안 공간의 미학이 손끝과 발끝의 몸짓을 따라가며 또 다른 언어로 우리에게 비추어을 느꼈다.


템페스트! 마법사와 요정이 일으킨 폭풍우가 거세게 일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바다에 떠 있던 배는 결국 난파된다. 배에 타고 있던 왕과 신하, 그 외의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잠기어 간다. 추방된 밀라노의 공작이 복수의 칼을 갈며 기다린 끝에 마법의 힘을 거머쥐고 왕과 배신한 신하가 타고 있던 배에 폭풍우를 일으킨 것이다.


아찔한 배의 폭풍우 장면이 음향과 조명, 배경 연출에 의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 직접 눈으로 보니 실감 나게 다가온다. 마법사는 프로스페라이고 님프들을 거느린다. 에어리얼이라 부르는 요정은 프로스페라의 명령대로 섬의 전체를 움직이며 마법사인 주인을 섬긴다, 반면 캘리 밴이라는 괴물은 프로스페라에 의해 철저히 감시와 노역을 당하며 끝없이 자유를 소망한다. 두려움을 가진 자의 자유의 외침이 안타깝기만 하다. 프로스페라는 강한 자의 영역에서 약한 자들의 고통을 밟아가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지우기 위한 복수의 과정이 타인의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며 생겨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희극이라고 하는 원작을 바탕으로 연극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배경의 장면과 장비들의 적절한 배치와 연출, 대사를 하는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한 분장이 점점 눈길을 끌며 빠져들게 한다. 큰 무대 위에 많은 관객들 앞에서 떨리지도 않고 당당하게 작품에 몰두해 표현하는 모습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멋진 장면이다. 연극이라는 커다란 무대를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기에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마다 열렬한 열정의 혼이 서려 있다.


다양한 역할을 마주한 배우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알고 연습에 연습을 이어오며 거기에 맞추어진 호흡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그 숨들을 들이마시고 뱉어낼 동안 인고의 시간이 몸으로 부딪혀 마음으로 깊이 박히어 갔을 것이다. 연극이라는 무대 위는 배우들의 것이 아닌 관객임을 알게 된다. 내가 그 속에 빠져든 2시간 동안 벌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그 안에 멈춰 들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연극은 용서와 포용, 자유의 외침으로 끝이 난다. 프로스페라가 남긴 자비는 우리 모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사이사이 코미디적인 표현들은 그들이 진정 원하는 꿈에 대한 표출이며 또 다른 생각을 낳게 한다. 억압과 복수는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마법의 힘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을 품어야 가능한 것일까? 프로스페라처럼 자비로운 마음이 결국은 모두의 자유를 상징한다. 탐욕과 배신으로부터 멀리해야 함을 일깨운다. 끝내 마법의 힘을 벗어던진 마지막 장면에서 진정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셰익스피어가 남긴 또 다른 자아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대사에서 너그러운 숨결을 이룬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인간의 세계는 탐욕이나 여기에 눈이 멀면 끝이 없게 되고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모두의 자유와 서로의 살아가는 힘의 방식을 잘 나누는 것이 좋음을 알게 된다. 연결고리는 나로부터 이어져 나와야 한다. 그것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 발상이 아니라 관용과 화합을 통해 자비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자유를 꾀하고자 하는 모두의 바람인지 모른다.


여러분의 박수갈채로 저를 이 무리들로부터 떼어주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숨결로 저의 돛들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을 즐겁게 해 드리는 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폭풍우가 남긴 것은


이전 20화 간호사로 거듭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