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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Oct 09. 2024

지금, 여기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내게 이롭게 누려지도록

가을이 깊어간다. 지나는 황금 들녘은 경이로움을 뿜어내고 이름 모를 풀잎, 나무, 꽃들의 조각조각이 모여 마치 하나를 이룬 조화로 연일 다른 빛깔들을 품고 있다. 빛깔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 빛깔이 되어 간다. 세상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이룬 조화로움은 계절마다 나타나는 경이로움을 스스로 알아차릴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눈을 돌리면 온 자연이 내 안에 있다. 자연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누구나 알 수 있게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없을 만큼의 소중한 순간을 공평하게 내어준다. 보아감과 받아들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남편과 모처럼 자전거를 타기로 하고 세종으로 향하는 오천 자전거길을 신나게 달린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가르는 바람 소리는 어디에나 머물러 있지만 각기 다른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뭇잎의 사각거림, 풀밭을 일렁이는 분주함, 윤슬처럼 빛나는 벌판에까지 각기 다른 소리로 내게 되돌아온다. 들녘의 황금빛의 소리는 익어가고 있고 이 길을 달리는 내내 들어오는 계절의 묘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지금이 참으로 좋기만 하다.     

휴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음 시간의 이어짐은 풍성해진다. 뿌듯함이 남긴 자리마다 길게 드리운 행복이 가까이에서 웃고 있다. 자전거 바퀴를 아무리 돌려도 남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지만 오르고 내려가는 사이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는 순서의 뒤바뀜이 꼭 술래잡기하는 것만 같아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낌이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랜만의 가을을 자전거와 만끽하니 그저 즐거울 수밖에.

세종 ‘이응다리’까지는 꼬박 2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여름의 뙤약볕을 한창 돌았으니 이번 가을이 주는 시간은 여유로움이 넘치고 있다.


미호강을 곁에 두고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흐르는 물결의 움직임 따라 새들이 노닌다. 그네들도 가을의 선선함을 몸으로 느끼고 있나 보다. 날갯짓이 강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저편의 나무숲이 어느새 곱게 물들어간다. 메타세쿼이아길이 이어지면서 나무의 피톤치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짙은 초록의 빛깔이 가을과 만나니 조금씩 황갈색을 틔우려 준비하고 있다. 조금 더 지나면 풀숲 우거진 사이로 가을과 잘 어울리는 억새가 고개를 흔든다. 빛깔이 윤슬처럼 해와 만나 반짝이는 은빛 물결을 이룬다. 잠시 서서 감상하다 보니 남편이 저만치 멀어진다. 눈으로 남기고픈 마음이 크다 보니 갈 길은 멀지만, 더디 가는 사이사이 나를 붙들어 매는 풍광이 우선이다. 남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같이 흐르지만 다르게 다가오기에 상대적인 관심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멀리 가다 기다려 주는 남편이 고맙다. 부리나케 지나는 길마다 여전히 바람은 노닌다. 아주 가까이에서.

     

자전거 도로를 지나다 보면 벌레들을 만나갈 때가 많다. 유난히 푸른 날이라 애벌레들이 꼬물대며 부지런히 길바닥을 지난다. 요리조리 피하기 일쑤지만 듬성듬성 보이는 조그만 털 뭉치를 잘 보내주려 하는 마음이 크다. 사마귀가 덩달아 지나간다. 천천히 구르며 피해 가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빤히 나를 쳐다보는 눈과 마주친다. 앞발을 치켜세운 모양새가 아무래도 긴장감이 도나 보다. 오히려 내가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피해 간다.

곤충의 세계는 그리 편하고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만의 습성과 생명에 나고 자람에도 이유가 있다고 여겨졌다. 자연 안에 모든 것이 그만한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느낀다. 좋고 싫음이 나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이룬 선택이다. 모든 것을 품은 자연이 그저 위대하다 느껴진 순간이다.      


어찌 보면 사람도 자연 일부분일 뿐이라 여겨진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지금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저절로 생긴다. 모든 것의 가치는 나로 하여금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더딘 자전거 바퀴만큼이나 멀리 가기까지는 벅차고, 오르고 내려가는 사이사이 힘들기도 한 순간이 파도의 높낮이처럼 반복되더라도 행하는 마음가짐이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다.


그때마다의 받아들임은 결국 나이다. 돌고 돌아 결국 내게 이롭게 돌아올 일들은 지금을 잘 살아낸다는 것이다. 완연한 가을의 날을 지금처럼 즐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계절의 풍광이 자꾸만 눈으로 들어와 마음이 일렁인다. 땅과 자연과 하늘 아래 소중한 순간들이 가득 들어 있다.


 오늘을 잘 즐기어 가자
지금 바로, 여기에서


가을의 황금들녘, 저절로 고개가 숙연해지는



미호강을 따라 펼쳐진 풍광을 따라



억새꽃의 흔들림을 배워가며



자전거길은 유유함으로 이어지고



금감을 따라 놓인 이응다리와 나뭇잎의 익어감


들꽃의 이름은 무엇



이 계절을 따라 녹여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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