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달라도 닿는
나는 스리랑카 말을 모른다. 아이도, 엄마도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외국인이 입원하면 가장 어려운 과제는 바로 의사소통이다. 앞으로의 치료와 간호 처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언어가 완전히 다르다면, 같은 공간에 있어도 그 사이엔 투명한 벽이 생긴다. 인지능력이 떨어진 경우에도 소통은 어렵지만, 이처럼 언어가 다른 경우 역시 서로가 눈앞에 있어도 마음을 나누기 어렵게 된다.
간호는 소통으로부터 시작된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처치에 대해 설명하고, 때로는 감정까지 살피기 위한 대화는 필수다. 요즘은 통역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 준다. 하지만 진짜 소통은 표정과 목소리 톤, 몸짓, 마음까지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됨을 경험한다.
주사를 놓아야 할 때, 피검사나 처치, 그 외 환자 상태를 알아야 할 때 언어적 의사소통과 더불어 예감이 동반된 관찰 능력, 공감 능력, 지식 정도에 따라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스리랑카 아이 lemon(예명)이는 눈이 크고 귀여운 아이다.
엄마 품에 안겨 처치실로 들어오는 순간, 그 크던 눈이 더 동그래진다. 무서움이 배가 된다.
주사나 채혈, 검사를 시행하려고 하면 엄마의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서로에게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다.
그럴 때 통역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찬스를 쓴다. 일하러 간 아빠와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 스피커를 켠다.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아빠를 호출한다. 내가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곧장 아내에게 스리랑카 언어로 이야기를 전한다. 아내의 말을 또다시 한국어로 전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이 오가는 순간, 언어의 소중함이 절실히 다가온다.
어떤 단어를 써야 마음이 잘 닿을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전달되는 말의 ‘모양’이 아름다워야, 그 의미도 더 잘 전해진다. 모든 말은 전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고 그 말은 각자의 생각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스리랑카 말을 모른다.
lemon이도 한국어를 전혀 모른다.
하지만 밝은 목소리 톤과, 웃음기 가득한 얼굴, 따뜻한 손길로 진심을 전하려 노력한다.
손짓, 발짓, 눈빛만으로도 내 마음이 닿길 바라며,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아픔을 나누는 자리는 언어라는 장벽으로 막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lemon이가 운다.
저런! 채혈 후 수액을 연결했는데 아뿔싸! 혈관이 퉁퉁 부어오른다. 유지할 수 없어 빼야만 했다. 엄마에게 다시 혈관을 잡아야 한다고 몸짓, 발짓, 눈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엄마의 안쓰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그 마음을 단단히 안아가며 행해야 한다.
엄마도 따라 운다. 그 마음이 얼마나 속상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조심스레 엄마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한국어로 말한다. 말속에 담긴 나의 의지와 공감이 엄마에게 닿기를 바란다.
“한 번만 더 혈관 찾아볼게요. 너무 걱정 말고, 아이 안아주세요.”
어디서든 아이가 울면 엄마는 더 슬프다. 아이의 울음이 엄마에겐 무엇보다 가장 아픈 소리기 때문이다.
울음! 이것이 만국의 공통어다. 언어가 달라도 우는 행위는 같은 소리가 난다. 슬프고, 아프고, 기쁘고 행복한 모든 감정이 눈물을 따라 맺혀가면 각각의 맛은 다르겠지만 그 안에서 공명이 되는 마음은 결국 전해진다. 그것이 감정이입의 순간이고 경험으로 축적된 간호의 시간이다.
울음은 누구에게나 같은 반응이다. 언어를 몰라도 울음으로 알아차린다. lemon이가 울면 나도 슬프다.
치유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 견디며 우리는 조금씩 나아간다.
처음이 있기에 끝이 있고, 아픔이 있기에 치유가 가능하다.
간호로 이끄는 어루만짐이 그러하다. 결국 언어로 막히는 것은 없다. 진심으로 대하면 그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로 전해진다. 수액이 흐르고 종이 반창고로 단단히 고정한다. lemon이 손등에 덧대진 반창고만큼 아픔도 조금씩 사그라진다. 수액은 잘 흐르고 나오던 울음의 크기도 약해진다.
“끝! 고생했어. lemon아!”
쓰담쓰담.
어여쁜 볼을 만져주고 머리카락을 쓸며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물론 한국어로. 엄마도 안아주며 안심시킨다.
병실로 돌아가는 길. lemon 이와 하이 파이브를 한다.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최고의 윙크를 보낸다. 그제야 lemon이가 웃는다. 말이 통하는 순간이다. 서로를 믿어가는 순간의 기록으로 남겨지는 뿌듯함이 있다. 여기 심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마음이 서로에게 전해지며 간호로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