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통을 이루는

너와 나 이전의 어떤 것

by 현정아

소통은 이전 세대부터,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까지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할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정답이 존재하지도 않고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대하는 깊이는 각각 달라진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지금도 여전히 너도나도 무진장 애를 쓰고 있지만 내 맘 같지 않은 현실 앞에서 때론 주저하여 무너지기도 한다. 현대로 갈수록 발전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속도만큼이나 소통은 점점 멀어진다. 오히려 단절이 되어 간다.


여기저기 소통에 대한 강연 프로그램과 책도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현대사회에 이토록 소통에 목마른 이유가 무엇일까? 오히려 소통을 외치기에 더 소통이 안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안아가는 일. 살아가면서 서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점에서의 맞물리는 연결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둘 이상이 만나는 지점부터 동요는 시작된다.


관계 안에서 울고 웃고 버겁고 기쁘고 힘들어진다. 서로 간의 충분한 이해와 신뢰가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이전부터의 모두의 삶이 그렇다. 내 마음에만 치우치면 소통은 어렵다. 반면 상대방에만 치우쳐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일하는 의료 현장은 소통의 비중이 무엇보다 높은 편에 속한다.


환자의 의무기록 안에 처방을 포함해서 처치와 간호 행위, 나타나는 증상에 따른 검사, 상태에 따른 관찰, 결과에 따라 평가되는 방식은 기록과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처방에 따라 우리는 간호 행위를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행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처방은 없는지, 투약에 따른 약물과 용량은 맞는지 등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더를 확인하여 이행하겠다는 의미는 pick up으로 마무리된다. 일단 오더에 따라 처방을 확인하게 되면 필요한 검사나 투약 준비가 이루어진다. 준비가 끝나면 환자에게로 향한다. 시행 전 설명이나 안내가 필요해진다.



10472957.jpg



환자의 성향이나 질환의 심각성이나 현 상태에서의 불편한 몸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여유 있게 기다려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극도로 예민하여 흥분의 도가니 한 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처치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이때 우리의 마음도 이에 따라 움직여진다. 언성을 높이면 언성을 높이고 차분한 말 뒤에는 싸늘함이 남아 간다. 그러면 모두에게 남는 것이 없다. 무심코 하는 말에 믿음이 사라지고 서로가 그것을 알아챈다. 때론 무섭게 다가오는 환자, 극도로 화가 난 환자 앞에서의 긴장감은 배가 된다. 심장의 고요함이 풀려 방아를 찧듯 펌프질을 해 댄다. 신규일 적에는 소통의 방법을 몰라 이처럼 바로 앞의 현실 앞에 쉽게 무너지기도 했다. 환자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과도 불통이 되면 더욱더 업무는 어려워진다. 힘이 생기지 않는다.


반대의 소통은 불신이 되고 곧바로 직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바뀐다. 회의감이 지속되면 내가 하는 행위에 진정성은 멀어진다. 내가 하는 일에 의욕이 없으면 무엇보다 슬픈 일일 것이다. 어려움 안에 어려움은 나날이 가중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가는 행위 하나하나가 이어진 결과가 소통이다. 해도 해도 끝없이 깊어지는 현실의 무게는 계속된 경험과 꾸준함, 최종의 끝에 환자가 있기에 성장은 이루어진다. 달처럼 기울다가 다시 채워지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내 자리에 서 있는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소심하고 표현을 못하고 모든 것을 껴안았던 아이. 착함이 그대로 드러나 모진 말을 못 하던 아이가 간호사가 되어 당당해지도록 수련하고 반복해 온 과정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빛을 발한다. 그대로 웃어주고 그대로 안아간다. 환자를 어루만지는 마음이 그렇다. 성향 그대로의 기질이 점점 이로운 쪽으로 기운다.


환자 앞에 설명을 정확하게 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순간 스스로 '최고'임을 외친다. 불만이 있는 환자 앞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해 가는 해냄에 혼자 감복한다. 내가 하는 간호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말로써 보답이 되는 순간, 내가 하는 간호가 누군가의 아픔에 한 끗 희망을 주는 순간 어떤 어려움도 희석되어 투명해진다.


소통의 기술은 앞으로도 영원히 풀지 못할 과제이지만 적어도 지난날의 나보다 훨씬 멋지게 성장해 가고 있음을 종종 목격한다. 내가 하는 일의 자부심 더하기 경험의 축적 더하기 배움과 더불어 나누는 삶 안에 성장은 녹아든다. 긴장감이 들더라도 인정하여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나를 발견해 간다.


환자의 처방을 확인하고 처치하고 추후 관찰까지 말로 이어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눈빛도 서로 교환된다. 의사에게 증상 보고를 할 때에 역시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소통은 안전이다. 소통이 잘 돼야 협력이 잘 되고 환자는 더없이 편안해진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행위는 여러 사람의 하나 된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두가 한 마음. 그것이 애써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소통이다.


간혹 누군가 화를 내어도, 억지를 부려도 그것에 동요되는 순간 소통은 허물어진다. 화를 낸다고 같이 화를 안 내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을 고요히 안아가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에 동요되면 나의 태도와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소통은 내 생각과 다른 반응에 쉽게 동요되지 않을 인정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다시 확인하여 이행하는 과정마다 소통의 기술은 그래서 필요하다. 거창함이 아니다. 언변이 좋다고 해서,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똑똑하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와 통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불통이라 답을 하는 것도 위험하다.


내가 그와 반대로 단절된 마음을 지니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보는 관점과 다르다는 것은 곧 한 가지 사물을 두고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이 느끼는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 가치관대로 움직이기보다 유연한 사고로 이끌어가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소통을 하기 위해 무진장 애쓸 필요도 없다. 애쓴 만큼 쉽게 지친다. 잘 보이기보다 그대로를 드러내되 나의 태도를 올바르게 하여 가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나를 먼저 알리고 환자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해 나가는 것, 처방 확인할 때 건설적인 대화로 이끌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건설적인 대화는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되 환자의 상태에 이득이 되도록 제안하는 행위를 말한다.


협력은 몸과 정신이 이어진 과정이 낳은 결과다. 소통이 잘 돼야 서로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가 제대로 이끌어지고 신뢰를 만든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통하는 사이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의료 현장에서도 나타난다(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고 눈으로만 대화하는 것은 금물). 손발이 맞는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예전에 업무 하던 수술실 부서는 모든 수술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생명과 직결되어 있어 무엇보다 침착함이 요구된다.


안정기의 환자의 상태 변화가 예상을 넘어서서 ‘빵빵’ 터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출혈 여부와 혈액량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불가분의 관계는 상태 변화로 곧바로 이어지기에 온통 집중을 요한다. 긴장되던 에너지가 수술이 끝나 회복기에 접어들면 스르르 풀리기 시작한다. 병동이나 중환자실로 퇴실하여 나갈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만큼 급박한 분위기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행위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환자를 사이에 두고 주치의와 간호사의 소통 관계가 더없이 중요해진다. 어려움이 있어야 배움이 생긴다. 소통이 불통이 되는 순간 몰려오는 극도의 예민함을 모두 받아 쳐내야 한다. 기구한 운명은 스크럽 상 위의 수술 기구만큼 야무져야 한다.


소통이 잘 되기 위해 외우고 외운 수술 procedure만큼이나 지속된 행위가 쌓여 비로소 잘 맞아간다. 처음은 서툴고 느리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여유로운 에너지는 없고 입안이 ‘쩍쩍’ 말라간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런 순간을 견디니 비로소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던 순간이 찾아왔다.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기구를 건넬 수 있던 뿌듯함이 내 속에서 차오른다. 소통의 창이 비로소 열렸다.



2203.q702.024.S.m005.c12.pregnant woman childbirth.jpg


과거로 이어진 일들을 기억해 내는 것은 나와 이루는 소통이다. 경험으로 이어진 배움 속에 다음에 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분간해 낼 능력이 생긴 것이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쩌면 누군가와 이루어가는 소통 이전에 나와 스스로 나누는 내면의 소통이 먼저 필요한지도 모른다. 내가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타인을 그렇게 본다. 열린 마음이 열린 소통을 만든다. 상대방의 태도에 좌지우지되기보다 그만큼의 마음을 오롯이 안아가는 것들을 배워가야 한다.


환자에게, 보호자에게 가까이 마음을 전하는 소통의 창은 결국 내 마음이 이끄는 생각이 연결되는 지점에서부터다. 투약하며 힘차게 설명한다. 내가 이루어가는 간호는 환자와 만나 소통으로 이어가는 치유의 과정에 힘을 쏟는 것으로 오롯이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환자와 이야기하는 자체가 즐겁다. 내 말이 닿는 자리가 조금은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호로 답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