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betic Ketoacidosis, DKA
출근하자마자 나는 어린이 병동으로 먼저 향한다. 간호부 일을 맡고 있지만 전날 입원한 아이들의 상태나 재검사 필요한 아이들, 부서에 애로사항은 없는지 등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인력이나 상황에 따라 부서의 일들을 함께 논의해 해결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일이 나의 역할이다. 문제해결을 완벽하게 하기보다 개선하여 나가는 일. 그 일 사이에서 무엇보다 환자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아침을 여는 아이들의 소리는 안쓰러운 순수함으로 빛난다. 수액을 달고 보호자와 간밤에 잘 지낸 아이들이 때론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증상에 따라 밤새 간호로 애썼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들의 협동이 시너지를 내는 순간을 만나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된다.
내 일에 활력이라는 것은 고된 업무 사이에 놓인 서로의 다정한 도움이다. 말하지 않아도 해내려는 이들, 말하지 않아도 도우려는 이들. 내가 무언가 보탬이 되고자 먼저 나서서 하게 되는 일들은 결국 나 먼저부터 시작된다. 오늘 어린이 병동의 아침은 평온하다. 맛있게 식사하는 아이들, 잠에서 못 깬 아이들, 일찍 검사를 마친 아이들이 섞여 즐거운 아침을 맞는다. 별다른 검사 일정이 없어 응급실로 향했다.
순회하는 동안 환자를 파악하게 되고 오랜 기간 입원해 있는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일이 좋다. 환자에게 내 손길로 도움을 주는 순간도 좋지만, 환자로부터 받는 에너지를 오히려 내가 더 받아 가는 셈이다. 나는 내 일에 강한 자긍심을 채우며 다시 살아가고 해내고 있음을 느낀다. 무한 반복적인 삶이 지루한 것이 아닌 새로 배우는 그날이 된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때마침 소아 환자가 접수하고 대기 중이다. 일요일부터 심한 구토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월요일에 집 근처 소아청소년과에서 노로바이러스 의심 진단을 받고 수액 치료 후 호전 양상을 보였으나 다시 처지고 힘들어했다. 밤새 버티다가 결국 8시를 넘겨 응급실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침 일찍 검은색 양상의 구토도 동반되었다고 하여 좀 더 관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곧바로 신체 검진을 시작했다.
산소포화도는 정상이나 혈압은 약간 높게 측정되었다. 무엇보다 만 12세 기준치고 맥박이 너무 빨랐다. 150회 이상의 심장박동수와 더불어 호흡 양상도 빠르다.
“OOO님, 일어나 보세요. 여기 어딘지 알겠어요?”
“네~ 병원...이....요. 졸려..요”
의식 확인차 묻는 말에 대답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힘이 없고 처져 있다. 졸린 듯 계속 자는 모습에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동반된다.
응급실 간호사와 함께 증상을 살피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수액과 검사를 진행했다. 맥박이 더 빠르게 뛴다. 호흡의 크기가 커진다. 만약의 상황에 따라 상체를 살짝 올려주고 호흡 양상을 살핀다. 어딘가 어렴풋이 의학적 지식을 동원하게 하는 호흡음이다.
구토로 인한 탈수와 위장염을 염두에 두고 입원 치료를 하기로 하고 응급실 의사 선생님이 소아청소년과 과장님께 협진을 요청했다. 전화를 받고 얼마 안 있어(외래 진료 전) 바로 아이 상태를 보기 위해 응급실로 부리나케 내려온다. 처진 증상을 관찰하고 구토 횟수 등 병력을 조사한 후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간이 검사로 혈당을 측정하기로 했다.
혈당검사는 Blood Sugar Test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혈액 안에 당 수치를 확인하는 검사이다. 구토를 많이 하고 처지니 혹시 모를 저혈당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행하기로 했다.
‘333’
5초의 시간이 흐르고 간이 검사 화면에 나온 혈당수치에 내 눈을 의심했다. 12세의 혈액 안에 끈적해진 농도로 높은 수치의 당이 흐르고 있다. 증상에 따른 위장 관련 의심 질환은 물러나고 당 검사 하나를 통해 새로운 검사가 처방되는 등 focus가 완전히 달라졌다.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면 정확한 glucose(포도당) 수치가 나올 테지만 이와 더불어 혈액 안의 케톤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 혈액가스 분석, HbA1c 수치 등 여러 가지 추적검사를 추가하여 측정하기로 한다.
보호자에게 물으니, 이전에 당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추가적인 검사나 진단을 위한 진료를 따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수액이 충분히 들어가도 처짐 증상과 졸려하는 증상은 변화가 없고 여전히 맥박은 빠르다. HbA1c 수치가 나왔다.
16%
결과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혈액 안의 glucose(포도당) 수치도 428로 높게 측정되었다.
혈액 내에서 산소 운반 역할을 하는 적혈구 속의 헤모글로빈(혈색소)과 혈액 안의 포도당이 서로 결합이 된 형태를 당화혈색소(HbA1c)라 한다. 혈당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이것끼리 결합을 하게 되는데 보통 2~3개월 간의 평균적인 혈당수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아이의 졸린 증상은 지속되고 맥박은 여전히 150회 이상을 웃돌고 있다 호흡음 역시 거칠다. 약간의 아리송한 냄새가 섞여 있다. 이 냄새를 무어라 표현해야 맞을까? 아이의 입을 통해 약하지만 시큼한 냄새가 올라온다.
여러 가지 검사를 토대로 아이의 병명이 진단되었다.
당뇨병성 케톤산증. DKA!
당뇨병의 위험한 급성 합병증에 속하는데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는 구토다. 메스껍고 복통을 동반한 구토가 나타나고 주로 소아의 경우 당뇨병인 줄 모르다가 첫 징후로 발견이 되기도 한다.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체내에서 인슐린의 작용이 부족하면 발생하게 된다. 인슐린 결핍이 심하여 당분을 끌어다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지방질을 분해하며 케톤체를 많이 생성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원리다. 이 때문에 체내가 산성으로 바뀌게 되고 호흡과 심박수가 빨라지게 된다. 심한 경우 의식이 소실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초기 치료로 인슐린 투여가 이루어졌다. 몸무게에 따라 속효성 인슐린을 수액에 희석해서 1시간 동안 주입하기 시작했다. 의약품 주입펌프를 이용하여 정확한 속도로 투여하고 이후 지속 요법으로 전환하여 30분마다 혈당 측정을 한다. 측정 수치 기준에 따라 용량을 조절하거나 중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혈액 검사 수치에 따라 칼륨 등 여러 보완 약물을 추가로 사용하면서 생체징후를 관찰했다. 맥박은 여전히 오르다가 서서히 130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침에 검은색에 가까운 구토를 했다고 했다. 실제로 양상을 보지 못했지만, 이것이 바로 커피 찌꺼기 양상의 구토가 아니었나 싶다. 아이가 내쉬던 빠르고 헐떡이는 듯한 호흡 양상은 바로 쿠스마울 호흡이었다. 여러 처치와 간호로 아이는 조금씩 안정되어 갔지만 좀 더 신중하고 집중적인 치료를 위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전원이 결정됐다.
12세 어린아이가 앞으로 겪어낼 앞으로의 일들은 높은 혈당수치만큼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힘겨운 사투를 벌일 것이다. 인슐린이 있어야 살 수 있는 현실에서 지속해서 견딜 일들은 작은 바늘로 투여되는 횟수만큼이나 오래 걸릴 것이다. 아이가 온 순간부터 일차적으로 손길을 내어줄 수 있어 고마운 일이다. 아이의 상태만큼이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손을 타고 들어간다. 혈액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제대로 잘 쓰이기를, 아이의 무궁한 앞날이 잘 열리기를 기대하며 간호로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