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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힘

우리가 있어야 힐 곳

by 현정아

낮의 햇살은 아침저녁의 쌀쌀함과 대비를 이룬다. 연둣빛 나무들의 세상은 점점 풍성해지고 여름을 향해 깊어질 녹음은 서서히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한다. 그늘의 색이 연두인 것은 지금, 봄에만 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연둣빛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면 사이사이 햇살이 뽀얀 빛을 드러낸다. 눈부시게 맑고 고운 색이 펼쳐지는 요즘이다. 봄이라는 시선이 주는 대로 이끌려 간다. 꽃과 나비가 어울린다. 파릇한 풀잎들이 돋아난 자리가 메워지면 땅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봄이 주는 인정이다.


병원 앞 정원에 꽃물이 열리면 환자들도 너도나도 나들이한다. 멀리 가지 못하는 제한적 활동 반경이지만 병원 앞 자연의 변화를 잠시나마 마주한다. 오고 가는 사이마다 봄이라는 기쁨을 잠시나마 코로, 눈으로 만끽하는 중이다. 휠체어에 의지해 간병사 손에 이끌려 나온 환자는 신이 난다. 병실 밖 바깥 온도는 병실 안의 온도와 다르다. 그만큼의 체감 온도는 표정부터 달라지게 한다.


고운 햇살과 바람이 하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 그만한 행복이 따로 없다. 잠시나마의 휴식이 안정을 가져온다. 환자도 자연을 맛보아야 함을 느낀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내려앉고 마음이 이완되어 간다. 밖의 세상은 기운을 돋게 하고 해처럼 활력을 준다. 침상에 누워 있지 못하는 환자에게 창밖 풍경을 보게 하는 것으로도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도 내가 일하던 병원은 전 병상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 승인되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앞서 보호복 착용 훈련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 처치에 앞서 두려움이 가중된 상태였지만, 국내외 COVID-19의 위력은 대단했기에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표준주의에 맞춰 우리도 자신을 보호해야 했기에 보호복 착용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덧신과 장갑은 두 겹이고 숨을 조이게 하는 N95 마스크는 벌써부터 호흡을 더디게 하였다. 고글이나 Shield(안면보호구)까지 착용하고 나면 끝난다. 병실 들어가기 전의 훈련 시간이지만 땀이 흐른다. 몸은 무거워진다. 일반 옷 위에 껴입은 얇은 레벨 D 보호복은 그야말로 사우나 저리 가라 수준으로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

착의보다 탈의가 더 중요하다. 자칫 잘못 벗으면 내 몸이나 주변을 오염시킬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한다. 그렇게 탈의를 마치면 땀이 맺힌 얼굴을 만나게 된다. 마스크를 벗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이것을 100회 이상 연습해서 몸에 익게 해야 했다. 형광물질을 발라 실제 벗을 때 오염시키지 않는지 테스트까지 거친다.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착, 탈의를 시행할 수 있었다. 환자를 배정받기 전까지 부서를 세팅하고 보호복 훈련을 지속해서 했던 경험은 지금에 와서도 절대 잊히지 않을 기억이다. 그만큼 동료들과 힘을 합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던 순간들이었기 때문일 거다.


병상뿐 아니라 처치, 투약 업무 등을 위해 코로나 격리 구역과 청결 구역 등으로 나누어 공간 배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날마다 뚝딱거리며 공사는 진행되었고 뒤이어 필요한 장비가 들어오고 자잘한 물품까지 정리하며 코로나 환자를 위한 입원실 setting이 마무리되었다. 외래와 응급실, 수술실은 폐쇄되고 보건소와 감염관리팀의 진두지휘 아래 환자 입실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그렇게 힘들지 몰랐다.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것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 앞에 실제로 행하기까지의 간접경험은 와닿지 않았기에. 그렇게 자연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이다.


첫 환자들은 요양병원과 정신병동 환자들이었다. 실제 우리 병원에서는 정신 관련 진료과목이 없고, 더더군다나 요양병원은 아니었기에 상황은 더 심각했다. 손이 많이 가는 환자들을 음압격리실에 배정하였지만, 보호자는 상주할 수 없었다. 오로지 의료진, 우리의 손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고군분투해야 했다. 도착한 환자들 대부분은 스스로 배변을 못해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었고 용변 처리 등 배변 관리부터 시행해야 했다.

두 겹 이상 낀 장갑을 다시 교체하며 환자들과 병상을 지키고 모니터링을 시작한다. 음압 장비는 크게 돌아가고 병실 속 소음 더하기 보호복 착용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머리끝까지 쓴 모자는 귀를 덮고 있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마스크로 인해 내가 하는 말소리 역시 전달하기 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일반적으로도 소통이 힘든 환자들 앞에서 의지할 것은 증상 관찰과 보내온 환자의뢰서의 정보지가 전부였다. 머리 역할을 하는 청결 구역의 간호사실에서는 환자에 대한 처방과 약물 준비가 이루어졌고, 그 외 처치 구역으로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


무전기와 청결 구역을 싸고 있는 창을 통해 보드마카 펜으로 써 가면서 소통한다. 처음 격리할 때는 2주간 진행했었으니 격리 해제 전까지 입원한 환자들은 감옥 아닌 감옥을 경험했다. 병실 밖으로 나오기는커녕 보호자들도 만날 수 없었으니 이 시기를 어떻게 잘 넘겼는지 신기하다. 그때의 우리에게 ‘잘 견뎠다, 대단하다.’ 이야기해 주고 싶다.


보호복을 입고 비장한 마음으로 입구로 들어가는 우리는 언제 퇴실할지 모르는 업무 상황에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고된 노동과도 같은 열악한 업무 환경을 마주해야 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은 고사하고 화장실을 갈 수가 없으니, 물도 마시지 않고 들어갔다. 환자 입원이 많아지면 4시간은 고사하고 교대도 할 수 없어 퇴실을 못 하기도 했다.

고군분투는 환자도 마찬가지다. 열은 오르고 호흡이 가쁘기도 하며 폐렴이 심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바이러스 약물을 투여받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입원 환자의 반 이상이 산소 투여까지 병행하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된다. 증상 호소와 더불어 치유 과정에서 긴긴 기다림이 시작된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고농도 산소 요법이나 인공호흡기 적용이 필요하기도 했다. 아찔한 순간과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을 만날 때는 마음이 더없이 아파진다. 7살 손주가 비뚤배뚤 써 내려간 편지를 전달받고 병상에 붙여 주며 읽어 주는 글귀 하나에 온 마음이 아려 온다. “할아버지, 얼른 나아서 꼭 만나요.”하는 글귀를 볼 때마다 마음은 이내 아픔이 된다.


누군가의 그리움과 소망이 벽면 종이 하나로 설명되고 있으니까. 글씨 하나로 서로의 마음이 닿아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애틋함은 더해간다. 극한의 바이러스로 결코 이기지 못할 우리들만이 이야기는 그렇게 누적이 되고 지금과 미래에도 연결되고 있다. 떠올리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때의 날들이 소환되어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두 겹 이상 낀 장갑으로 용케도 환자를 구한다.

처치 후 보호복을 벗고 퇴실하여 마시는 물은 천상이 맛이다. 가벼이 여겼던 물 한 잔에 몸을 타고 흐르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샤워하고 상기된 뺨을 그대로 로션도 제대로 못 바르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된다. 교대 후 퇴근하는 순간 병원 문을 나서면 새롭다. 비로소 자연 안에 모든 것들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풀꽃과 나뭇잎의 사르륵 소리가 좋다. 머리를 쓰다듬어 넘기던 바람이 햇살과 만나 눈이 부시다. 하늘이 있어 비로소 땅을 밟는다. 공기의 흐름이 폐를 타고 들어오면 크게 한숨 더 들이킨다. 온통 상쾌함이 전해지던 순간이다. 몰랐던 것들이 눈에 익고 작은 것에 소중한 마음이 열린다.

아! 우리는 자연에서 숨을 쉬고 바라보아야 비로소 잘 살아갈 수 있구나! 철마다의 계절은 이름만큼 다른 모습을 속속히 연결하여 보여준다. 그것에 따라 우리도 움직여 간다. 그 안에서 영글어야 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된다. 가치가 된다. 무질서의 세계는 나름 질서를 지켜 이리저리 돌아간다. 여기저기 돋아난 잎들만 봐도 그렇다.


자연만큼 성장에 대한 배움을 주는 것은 없다. 자연의 힘 안에 우리도 자란다. 더욱이 환자들은 아프기에 그런 자연의 힘을 느껴가야 한다. 그것이 생체리듬에 따라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기에. 봄은 여름을 행해 점점 달려갈 것이다. 이팝나무 쌀알들이 바람결에 퍼트려진다.


휠체어 위에 앉아 곱게 바람을 맞으며 꽃을 보고 햇살을 품는 어르신의 마음은 아마도 풍족한 행복이 조금씩 흐를지도 모른다. 일상이라는 쉬운 것들이 쉽지 않을 때 더없이 알게 되는 소중함이다.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에 무한한 마음을 감사함으로 안아가며 이 시절에 간호로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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