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위해 먹는 마음
병상 수 확보를 위해 닫아두던 병동을 다시 열다. 열어가려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구역을 확충하고 선반과 창틀에 묻은 먼지까지 닦아내야 한다. 환자들이 이용할 침대 구석구석까지 닦는다. 환경정리를 마치면 구역별 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주삿바늘부터 커다란 장비(제세동기, 환자 모니터 등)까지 점검하고 구비하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구비해야 할 서류와 안내문, 각종 서식 파일은 우후죽순 늘어난다. 매뉴얼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다시 시작하는 곳은 새로운 분위기로 설레기도 하지만 안정되기까지는 무던히 애를 써야 한다(물론 안정되었다고 해서 편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드디어 병동을 열었다. 대기하고 있던 환자가 입실하고 병실 안내가 이루어진다. 중환자실에서, 응급실에서, 외래에서, 타 병동에서 환자가 온다. 닫혔던 공간이 열리자 비로소 환해진다. 이와 동시에 분주함이 오간다. 우리만 아는 분주한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팡팡' 터진다. 물도 마시지 못한 채 발바닥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
병동 세팅을 위해 지금까지 수고한 우리들이 있다. 모두의 힘으로 비롯된 일이다. 열고 닫음 뒤에는 보이지 않은 수고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병동을 열기 위해 묵묵히 달려온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한 생명은 다시 연결된다. 편안해지길 바라는 소망이 여기 붙어 있다.
하나의 병상이 되려면 이처럼 여러 사람의 땀이 서린다. 그러하기에 이 땀들은 숭고하다. 열어내기 위해서 챙겨야 할 일들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럴 때 폭풍이 오듯 이어지는 압박으로부터 마음을 단호하게 먹어야 한다. 단호함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다잡는 일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것은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나에게 단호함은 부드러움이 깔린 실체다. 부드럽지만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 보이지 않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이면에 있다. 그것을 보아 가는 사람이 바로 '나'이니만큼. 환자를 향한 사랑의 힘은 그대로 이곳에 남는다.
오픈 병원에 입사 후 지금까지 열어 낸 부서가 많다. 생각해 보면 어찌 그 일을 다해냈는지 모르지만 이것저것 해 온 것들이 쌓인 이력은 무시 못할 '나의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 이룸은 없지만 부서를 열고 닫아내는 모든 과정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기 위해서는 그만큼 챙겨야 할 부수적인 일들은 많다.
OCS(처방 전달 시스템, Order Communication System), EMR(전자 의무 기록 Electronic Medical Record)을 섭렵해야 하고 질환별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계속 울리는 전화 응대와 환자 교육, 보호자 응대, 주치의 회진에 따라 이어지는 처방과 시행, 간호 처치와 투약, 감염 관리 및 환자 안전 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일들을 차곡차곡 해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나만 알아서는 이룰 수 없다. 나의 일과 너의 일, 그들의 일들이 서로 이어지고 연결되어야 한다.
오늘 병실을 오픈하여 환자를 돌보고 퇴근 후 마주한 일상을 넘긴 후 내일의 태양을 만날 때 또다시 나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서로 협력하며 호흡하는 순간이 좋다. 내가 아는 것을, 필요한 곳에 내가 보탬이 되는 사실이 기쁘다. 병실마다 서린 정성은 내가 숨 쉬는 공간 안에서 비로소 제대로 기를 편다. 누군가에게 불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나의 호흡.
부드러운 단호함이 만든 일들은 연륜이 쌓일수록 좋은 작용을 한다. 그것이 간호를 향한 당당함이니까. 오늘 잘 열어낸 만큼 내일 또 열어갈 일들이 줄지어 달려들 테지만 하나의 말과 마음을 이어 다시금 쌓아질 일들이 기대가 된다.
열어내다.
마음을 열고 고요의 순간과 혼잡한 순간을 모두 맞이하리라. 그 나름의 충만해질 설렘은 존재하니까.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방향은 내가 쥐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마음을 기울어갈지 간호로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