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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몰디브였을까 (프롤로그)

두려움 보다 설렘과 용기

by 아테냥이
"제주도도 비행기 타야 하잖아."


누군가에겐 웃음거리인 말이 내게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대구의 유명 호텔, 서울의 스위트룸. 코로나 시절, 각자의 방식으로 국내 신혼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있는 여행도 충분히 낭만적이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물론 다시 해외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지만.)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비행기를 두려워했다. 태생부터 쫄보였지만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2014년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뉴스를 현지에서 들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그 공기를 그대로 품은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밤을 꼬박 새운 채 탑승했지만 잠도 오지 않았고, 내 몸 전체가 작은 동물이 된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6시간 반 비행을 하며 기도만 반복했다. '제발, 무사히만 내려주세요.'

그 후로 비행기는 나에게 공포가 되었고, 남편과 연애하는 3년 동안 공항 근처조차 가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마음 한구석에선 '가장 긴 휴가를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아쉬움이 생겨났다. 연차를 합쳐 만든 소중한 시간이고 어쩌면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데, 훗날 후회하지 않을까.





몰디브공항 바로 앞바다


“2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매일이 그냥 그림엽서였어.”

“언니도 꼭 그런 곳으로 가. 신혼여행은 평생 기억 남는다니까.”


동생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그때의 설렘이 묻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2주가 아쉬워, 결혼 10주년에 또 가고 싶다며 지금도 그 추억을 곱씹고 산다.


그러면서 점점 내 마음에서는

‘남편과 함께라면… 비행기 공포를 조금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아주 희미한 가능성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고개 들기 시작했다.






어느 저녁, 예비신랑과 신혼여행 전문 여행사책자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우리 물놀이 좋아하잖아. 그런데 습도 높은 더위는 못 견디고.”


20대에 다녀온 동남아는 습도와 열기 속에서 체력전을 치른 기억으로 남았다.

낭만보다는 생존이 먼저였던 여행.

그럼 평생 한 번 뿐일지도 모를 이 기회에만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출장으로 다녀온 나라 중에 스위스랑 체코 프라하도 좋았어."

예비신랑은 일정에 쫓기며 다녀온 출장지였지만, 알프스의 설경과 프라하의 낭만적인 분위기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여행사 책자의 나라들을 보며, 그에게 슬쩍 물었다.

"살다가 스위스 가보고 싶다고 하면 갈 거야?"

"응."

"이탈리아 가자고 하면?"

"그것도 괜찮지."


다음은 몰디브였다.

"그럼... 살다가 몰디브 가자고 하면 갈 거야?"

순간, 예비신랑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니, 그건 좀 그렇지."


그 한마디였다.


내 인생의 신혼여행지를 결정한 건.


그가 몰디브를 '그건 좀 그렇지'라고 표현했다는 건, 그곳이 우리 미래영역 밖에 있다는 뜻이었다.

신혼여행이라는 명분 없이는 절대 허락되지 않을 사치. 죽을 때까지 '언젠가'라는 미래에 머물러 있을 곳.


그렇다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신혼이 아니라면, 아마 죽을 때까지 “언젠가”만 되풀이하며 결코 발 딛지 못할지도 모르는 그런 나라로 느껴졌다.




몰디브 풀빌라 앞 해돋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나에게는 용기가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평생 못 갈 수도 있겠구나.”

그 단순한 문장이, 두려움을 작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지금 내게 허락된 이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그게 바로 몰디브였다.


그래서 선택했다.

두려움이 나를 밀어내는 방향이 아니라, 설렘이 나를 불러주는 방향으로.

마흔의 몰디브 신혼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미 겁은 마음속에서 아득히 떨고 있었지만, 그 떨림마저 바람처럼 데리고 가보자고! 우리만의 바다를 향해.





<마흔에 첫 경험입니다> 브런치북에 이어, 신혼여행기 <마흔에 첫 몰디브> 연재를 시작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주 금요일, 현실감성 에세이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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