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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Dec 10. 2024

17. 꽁꽁 얼어붙은 세상 속으로   

따뜻한 말캉 젤리 같은 마음들이 뛰어온다.

세 번째 남편과도 헤어진 그녀가 운다. 

그녀의 눈물에 나의 눈물도 보탠다. 

그런데 그녀가 우는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녀 눈물의 이유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은 앞으로 어린 세 자매와 어떻게 살아야 될까 걱정이 되어서. 상처만 남긴 결혼생활이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던 지난 시간이 너무 한스러워서. 

앞에서 울고 있는 이혼녀를 보면 누구나가 상상할 수 있는 당연한 이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가 우는 이유는 로버트 때문이었다. 

로버트가 너무 보고 싶다고. 로버트가 너무 가엽다고 로버트를 너무 데리고 오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고. 

그래서 그녀는 너무 슬프다고 했다. 

 

로버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마마로 불렀던 세 번째 남편이 전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다.

 

3년의 결혼 생활 동안 생활비는커녕 오히려 그녀가 아이들의 밥값으로 힘들게 번 돈까지 강탈한 것도 모자라 폭력과 술주정과 잦은 가출을 일삼더니 결국에는 바람이 나서 그녀를 버린 전남편의 아들 로버트.

 

당연히 로버트는 아빠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녀는 로버트를 데리고 와서 키우고 싶어 했다. 

그녀에게는 이미 아버지가 다른 세명의 어린 딸들이 있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알게 된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갔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마마 비트리스!! 정신 차리라고!!! 당장 내일 먹을 거는 있어? 이번달 비트리스와 크리스티나 밥값은 있어? 내년이면 에스더도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와중에 로버트라니!!!"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면서 소리치고 싶었지만. 역시나 비천한 스와힐리어 탓에 아무 말 못 하고 답답한 나의 마음을 한숨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나 역시 한숨과 함께 밀려오는 로버트 생각에  마음 한편이 가시에 박힌 것 처럼 아팠다.  

비트리스. 크리스티나. 에스더의 집

그녀가 세 아이와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흙집에는 제대로 된 세간 살이 하나 없다. 

사람이 살고 있으니 아~ 사람 사는 집인가 보다 싶지 돼지와 염소가 있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가축우리와도 같은 공간이다.


넝마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은 오후가 훌쩍 넘었는데도 먹은 거라고는 어린아이 작은 주먹크기만 한 만다지(밀가루 뭉치를 기름에 튀긴 탄자니아 주식) 하나가 전부라고 한다. 

그녀는 며칠째 일이 없어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하니 내가 뭐라도 사주지 않으면 어쩌면 오늘 아이들은 굶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신발을 신어보지 못한 아이들의 발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딘 높은 산의 바윗돌처럼 딱딱하다. 

아이들의 교육은 얼마나 위태한지. 식대와 시험비를 내지 못하면 언제 학교에서 퇴학당할지 모른다. 

얼마 전 비트리스는 식대 천 실링이 없어서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인데 로버트를 데리고 오고 싶다고?       

운 좋게 하루 5천 실링이라도 받고 일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어 그녀가 일을 하러 나가면 두 동생을 돌보는 일은 언제나 장녀 비트리스의 몫이다.  

두 언니가 학교에 가면 5살 막내 에스더는 혼자 집에 있기도 하고 엄마를 따라 일을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일당 5천 실링짜리 일거리가 있는 날은 한 달에 열흘도 되지 않으니 입 하나라도  덜어야 될 상황에 로버트를 데려오고 싶어 하는 그녀의 바람은 무책임하며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내고 있는 세 아이에게는 잔인한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이 애틋하면서도 감사하다. 

비록 아픔과 고통만 준 남편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로버트를 향한 마음은 사랑이었으니까.

사랑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 애틋한 마음을 품고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모하다. 

사랑은 책임져야 한다고 급히 결론을 내리고 그녀의 바람을 외면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졌음 하는 마음이 들어 내가 도와줄 것은 없나? 를 모색하고 있다.  

로버트를 향한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 절절한데 누가 뭐래도 로버트는 그녀의 아들이지 않을까?

자신이 낳은 딸들과 진배없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로버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는 아버지와 새엄마와 함께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다.  

어쩌면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리움이 로버트를 더 원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면 아프지만 곧. 잊을 것이다.라고 믿고 싶었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마을 여인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인터넷을 사러 가는 길,  물을 긷고 있는 로버트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로버트!!!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로버트 언제 왔어? 너무 보고 싶었어. 

비명과 함께 한국말이 튀어나왔을 정도로 반가움에 흥분한 나는 로버트를 안아주었는데, 로버트는 나를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외면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나를 보면 한달음에 달려와 먼저 안기고 나의 손을 잡아 자신의 머리를 갖다 대면서 스킨십을 원했던 아이였는데.

얼굴에 희로애락 모든 표정을 숨기지 않은 아이였는데. 

장난꾸러기 쾌활한 아이였는데. 

이미 로버트는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동안 로버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시 혼자가 된 로버트의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다시 마을로 돌아왔지만 먼 친척집에 아이를 버리다시피 맡겨두고 다시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로버트의 집에 가면 로버트는 빨래를 하거나 물을 긷거나 장작을 패고 있었다. 

집안일을 하지 않은 날에는 하루종일 친척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13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엄청난 노동을 매일 매일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천덕꾸러기 눈칫밥 얻어먹으면서 밥값으로 일을 하고 게 분명했다. 물론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이다.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도통 입을 열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마음의 병이 깊이 든 게 분명했다. 

이제 겨우 13살이 된 로버트를 이대로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엄연히 보호자인 아버지와 친척이 있는 로버트를 자매들의 엄마에게 부탁할 수도 내가 데리고 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아이에게 어떤 후원도 케어도 할 수 없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로버트의 마음이 얼마나 추울까. 싶었다.

다가갔지만 아이는 곁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나에게 곁을 주기엔 아이가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있는 로버트의 세상은 얼어붙어가는 것 같았다. 


로버트와 그가 돌봐야 하는 동생들. 

그날도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묵묵히 빨래를 하고 있는 로버트 옆에서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너의 마음이 풀리겠니? 무엇이 너의 마음의 위로가 될까? 


그런데 로버트가 뭐를 봤는지 눈빛이 반짝이면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 멀리서 비트리스. 크리스티나. 에스더가 걸어오고 있다. 

로버트를 보더니 세 아이가 뛰기 시작한다. 

로버트도 아이들을 향해 뛰어간다. 

꽁꽁 얼어붙은 로버트의 세상 속으로 말캉젤리같은 따뜻한 마음들이 뛰어오고 있다. 

다시 만난 아이들은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한다.

이내 아이들은 함께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고 장난도 친다. 

영락없는 사이좋은 남매들이다.  


로버트를 다시 만난 뒤 안타까워 전전긍긍했던 나의 마음이 무색하게도 누나 여동생을 만난 로버트의 표정이 봄꽃같이 밝았다. 

말캉젤리같은 따뜻한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녹인 게 분명하다. 


세상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이보다 감동적일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을 축복하며 기도해 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파티를 사주는 것. 


얼른 스와힐리어를 잘 배워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래. 어른들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너희들끼리 얼어붙은 세상 속을 녹여주는 따듯한 마음이 되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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