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또한 내 삶인데
어릴 적 처음 책을 폈을 때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내 취향과 멀다고 느껴졌고,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세월이 한참 흘러 친구가 생일 선물로 <자기 앞의 생>을 건넸다. 결국 한 번은 읽고 지나가야겠구나. 과거의 기억 때문에 미루다가 드디어 완독 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저자인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필명이다. 이미 저명한 작가였던 로맹 가리는 편견 없이 글을 쓰고 싶어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다. 한 사람이 두 번을 탈 수 없는 상까지 받는다. 에밀 아자르로 상을 받을 때 누구도 로맹 가리라고 짐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글에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대단하다.
그렇게 써 내려간 내용은 소년 ‘모모’의 이야기다. 모모는 창녀가 버린 아이다. 그와 같은 아이들을 여럿 키우던 ‘로자 아줌마’를 만나 사랑을 깨달아 간다. 마지막에 다다르니 예전에 읽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모모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한 듯 보이나 실은 삶이 어둡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빈민가에서 어렵게 살아간다. 때론 약간의 불법마저 저지른다. 자신을 걷어준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겨우 생존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모모가 만나는 주변인도 대체적으로 힘겹게 삶을 이어간다. 문제는 모모의 삶이 굉장히 촘촘하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모모로 빙의될 정도로 상황과 감정 묘사가 뛰어나다.
어린 마음에 모모에게 몰입해 어두운 세상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끝까지 읽었다면 더 우울해졌을지도 모른다. 외려 소설은 삶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 바라보게 만드는데 말이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진실로 서로를 위한다. 그 모습에 경외심이 든다. 운명적인 사건이 있거나 격렬한 감정이 뒤섞이지 않아도 사랑은 바로 곁에 있는 법이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토록 치밀하고 촘촘히 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생겨날까. 엄청난 필력이다. 한 번 더 이 책을 읽게 될 듯한데 그게 빠를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모모가 되어 힘겨운 나날을 견뎌낸다는 것이 두렵다. 그럼에도 모모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주체적으로 걸어간 모습은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