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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Feb 16. 2024

혼란스러운 사랑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

혼란형 애착

  이제까지 안정형, 집착형, 무시형 애착을 함께 둘러보았고, 이제는 혼란형 애착을 설명드리는 것만이 남았습니다.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은 사랑에서 가장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만큼 사랑을 향한 갈망도 가장 큰 사람들입니다. 안정형 애착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존재한 애착 유형이 혼란형 애착입니다. 안정형 애착을 통해서 사랑이 충분히 채워졌던 삶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이번 혼란형 애착에서는 사랑의 빈자리가 컸던 삶을 살펴보실 수 있으실거에요.




  혼란형(disorganized) 애착은 성인과 유아 모두에게 존재하는 애착 유형입니다. 안정형 애착도 성인과 유아에게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단어였었는데요,  양극단에 존재하는 애착 유형들은 성인과 유아 모두 혼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기억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설명드렸던 세 종류의 애착 유형들은 자신이든 타인이든 어느 한 군데는 믿을만한 곳이 존재했습니다. 안정형 애착은 자신과 타인 모두를, 집착형 애착은 타인을, 무시형 애착은 나를 믿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은 세상에 믿을 곳이 하나 없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고, 타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타인들에 대해서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포함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신뢰하기 어려운 삶이 혼란형 애착의 삶입니다.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때 나도 믿을 수 없고, 남들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스스로 결정을 내리자니 자신이 없고 불안해서 남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싶어 지겠죠. 그리고 남들의 의견을 따르자니 타인을 믿을 수가 없어서 또 한 번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해도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몰린 것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은 얼어붙은 상태로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있거나, 혹은 공포에 질려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무 선택이나 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의 대인관계도 비슷합니다.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처럼 의존 위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처럼 홀로 살아가는 것도 어렵렵게 느껴집니다. 결국 이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로 많은 혼란감을 겪습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지도 못하고 멀어지지도 못한 채로 어쩔 줄 몰라하거나, 극단적인 회피 상태와 극단적인 의존 상태를 오가기도 합니다. 본인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기에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거나 아무 선택이나 하는 상황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 다른 애착 유형의 사람들보다도 사랑을 향한 갈망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론 이런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고 야속한 일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음에 상처들이 많았던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에게는 집착이나 회피와 같은 차선의 선택도 쉽지 않게 느껴집니다. 결국 대인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막막해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러한 사연들이 있는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게 됩니다. 자신에게 조그마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있으면 금방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을 조금이라도 실망시키는 연인에게는 금방 사랑이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들의 혼란스러운 사랑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도 혼란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첫눈에 반해서 자신에게 큰 사랑을 줬던 사람이 어느샌가 자신을 극도로 싫어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니까요. 이러한 혼란스러운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래서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의 곁에는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정신분석적으로는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은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이로 인한 대인관계의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는 표현을 통해 설명합니다. 이상화(idealization)는 상대를 지나치게 이상적인 대상으로 판단하는 방어기제입니다. 이상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백마 탄 왕자님처럼 환상적인 존재로 여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환상은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죠. 그래서 백마 탄 왕자님과의 행복했던 관계는 어느 순간이 되면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던 관계로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왕자님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됩니다. 자신에게 실망을 주고 상처를 줬던 사람을 좋게 바라보기는 어렵고 나쁘게 바라보기는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이상화의 대상으로서 과도할 정도로 좋게만 보였던 과거의 왕자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과도할 정도로 나쁘게만 보이며 평가절하되는 대상만이 남아있습니다. 평가절하(devaluation)는 상대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방어기제로서 이상화와는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상화와 평가절하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상대방을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결국 대인관계에서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화는 대인관계에서 지나친 기대를, 평가절하는 대인관계에서 지나친 실망을 반복하게 만들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매우 피곤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느끼게 합니다.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의 대인관계를 살펴보면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사이에서 오는 혼란감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상화 대상을 향한 환상은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이상화 대상은 미래의 평가절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는 대상에 대해서 과도한 실망을 하게됩니다



  

  이제 혼란형 애착의 유아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른 애착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혼란형 애착을 가진 아이의 부모도 혼란형 애착인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혼란형 애착의 사람들은 앞서 설명드렸던 취약성들로 인해서 감정상태와 대인관계가 불안정한 편인데요, 이것은 육아에 큰 장애물이 됩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말은 기분이 태도가 되기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양육에 대한 태도도 예외는 아닙니다. 혼란형 애착의 부모는 불안정한 기분처럼 양육 태도 또한 불안정할 수 있습니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일관된 양육 태도입니다. 하지만 한결같은 태도로 양육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님도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부모가 시종일관 한결같이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요. 안정형 애착의 부모도 기분이 좋지 못할 때가 있고, 그럴 때면 건강하지 못한 양육 태도로 인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모들은 아이에게 실수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심한 정도의 실수를 하더라도 그 실수가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실수로 상처를 받은 뒤에, 부모의 품이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아이들의 불안정한 감정을 이해하고 달래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안정형 애착의 부모입니다. 이처럼 안정형 애착의 부모와 아이는 필연적으로 관계에서의 시행착오를 맞이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해와 수용을 통해서 서로의 사랑과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란형 애착의 부모는 감정과 정체성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양육 태도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는 아이에게 폭력, 방치와 같은 학대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아이는 부모에게 크고 많은 상처들을 받습니다. 게다가 이 상처들은 부모들로부터 충분히 수용받거나 이해받지 못하기에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채로 방치됩니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에게 상처받은 마음이 점차 곪아만 가고, 부모의 품을 온갖 위험의 근원으로 느끼면서 더 이상 안전한 곳으로 여기지 못하게 되어 혼란형 애착을 갖게 됩니다.


  혼란형 애착의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독특한 생존 전략을 채택하게 됩니다. 아이가 부모 대신에 본인들이 부모 역할을 도맡아서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예시로는 퇴근 후에 피곤해 보이는 아빠에게 '아빠 고생 많았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제가 물이라도 한잔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고, 두 번째 예시로는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엄마에게 '닥치고 내 말 들어!'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두 경우의 아이들은 매우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살펴보면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이와 부모의 역할이 서로 바뀌면서, 아이가 부모를 통제할 수 있도록 돕는 행동들이라는 점입니다. 첫 번째 예시의 순종적인 아이는 따뜻한 부모처럼 행동하면서 피곤한 아빠가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예시의 난폭한 아이 또한 강압적인 부모처럼 행동하며 엄마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죠. 이러한 아이의 생존법을 두고 역할 뒤바꾸기(role-reversal) 전략이라고 합니다. 이 전략은 부모가 아이에게 위협을 가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결과적으로는 아이에게 두 가지의 도움을 줍니다. 하나는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나마 안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입니다. 역할 뒤바꾸기 전략은 혼란형 애착의 아이들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전략 또한 일종의 적응인 셈입니다. 비록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가지 못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치르게 되겠지만 이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차악의 선택조차 하지 못하면 현재를 버텨내는 것조차도 버겁게 느껴지니까요. 양극단에 존재하는 것들은 서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사춘기와 같은 반항적인 시기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이가 매일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이나 걱정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혼란형 애착의 아이들은 역할 뒤바꾸기를 통해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고, 그 대가로 부모를 통제할 권리를 얻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미래를 약속하는 것을 연습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사랑을 포기한 채로 현재에서 살아남는 것만을 연습하게 됩니다. 이들은 나중에 혼란형 애착을 가진 성인이 될 가능성이 높고 결국 대인관계에서의 수많은 혼란감들을 겪으며 사랑에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차라리 무시형처럼 사랑을 포기하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애정을 향한 갈망(affection hunger)이 너무나도 크기에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집착형처럼 사랑에 매달리면서 살아가기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서 사랑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없습니다. 국 이들은 사랑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혼란스러운 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란스러운 사랑에서는
사랑은 없고 혼란만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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