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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Feb 14. 2024

우리는 사랑에서 왜 집착하고 회피할까

집착형 애착, 그리고 회피형 애착

  이전 글에서 애착 유형에는 네 종류가 있고 안정형 애착은 건강한 애착 유형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남은 유형에는 집착형(양가형), 무시형(회피형), 혼란형이 있는데요, 이들은 모두 불안정한 애착 유형에 해당합니다. 이중에서는 혼란형 애착이 가장 많은 고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집착형 애착 혹은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이 사랑에서 받는 고통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집착형 애착,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이 겪는 대인관계의 문제들과 그 원인들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집착형(preoccupied) 애착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믿음이 없고 타인에 대해서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평소 의사결정을 할 때 어떻게 행동할까요? 혼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면 상당히 불안해하고, 못 미더운 나 대신에 결정해 줄 사람만을 기다리고만 있겠죠. 집착형 애착의 대인관계도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느끼면 많이 불안함을 느끼기에, 평소에도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어떻게든 혼자 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집착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불안의 근원은 유기 불안(abandon fear)에 있습니다. 유기 불안은 '남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감을 의미해요. 대인관계에서는 많은 종류의 불안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유기 불안은 상당히 원초적인 불안입니다. 갓난아기들이 부모 없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죠. 그래서 아이들은 생애초기부터 부모와 분리되면 생존에 위험을 느끼며 불안해할 수 있는데요, 이것이 바로 유기 불안의 시작입니다.


  이처럼 생애 초기의 유기 불안은 험난한 세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적응적인 측면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기 불안은 부적응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기불안은 언젠가는 독립적으로 살아야 할 우리들에게 독립을 공포스럽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의존조차도 온전치 못하게 변질시켜 버리거든요.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은 곁에 의지할 사람이 있어도 유기불안으로 인해 종종 마음이 공포스럽습니다. 이전에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이들은 좋은 사람에게 마음 놓고 의지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나는 나쁜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언젠가는 날 떠나갈 거야'라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방해해서 연인 관계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쉽게 찾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의존은 진정한 의미의 의존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집착형 애착의 의존을 두고 '거짓 의존'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불안해지면 나의 감정을 진정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도 연인 관계에서 유기 불안으로 인해 힘겨울 때면,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상대와 함께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느 누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싶겠어요. 하지만 집착형 애착에서 오는 유기 불안은 정도가 지나칠 때도 있어서, 불안한 생각이 가라앉을 때까지 연인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 지나친 욕심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관계에서 불안하다고 해서 상대에게 항상 함께하기를 요구하면 상대방의 마음은 어떨까요. 나에게는 단순히 불안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상대에게는 힘겨울 수도 있는 집착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다 혹시라도 연인과 헤어지게 된다면 그렇잖아도 부정적이었던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추락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집착했던 자신의 모습을 자책하며 자존감은 떨어져만 가고, 추락하는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새로운 연인을 찾고, 새로운 사랑에서도 집착하면서 결국 이별을 맞이하는 등 이러한 대인관계 패턴이 반복되며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은 연인과 함께하는 순간에도 유기 불안으로 인해서 진정한 의존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피상적인 연인 관계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집착형 애착의 사람들은 왜 유기 불안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지는 걸까요? 이렇듯 유기 불안이 주는 삶의 고통들이 적지 않은데 말이에요. 저번 글에서 애착은 전이되는 힘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양가형(집착형) 애착이 있는 아이의 부모도 집착형 애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집착형 애착의 부모들은 자신의 애착 대상, 즉 자신들의 부모에게 느껴왔던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모들에게 아이의 울음소리는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부모의 애착 문제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부모가 자신의 유년기를 떠올리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부모들마다 다양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애처롭게 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수도 있고,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서 자신들의 부모가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죠. 안정형 애착의 부모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마음이 크게 동요되지 않고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섬세하게 반응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착형 애착을 포함한 불안정한 애착의 사람들은 아이의 울음소리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러한 부모들에게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과거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아픔들을 자극하는, 자신을 감정적으로 괴롭히는 신호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착형 애착의 부모도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섬세하게 반응해 주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서 터져 나오는 내면의 고통을 해소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에게 공감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공감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에 주파수를 맞춰야만 하는데, 나의 감정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어떻게 상대방의 감정에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겠어요. 이 부모들도 과거의 애착에서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폭발하는 바람에 아이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것뿐이에요. 이런 이유들로 최선을 다하는 집착형 애착의 부모들이 육아를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연들로 집착형 애착의 부모들이 제공하는 공감과 사랑은 그들의 감정처럼 들쭉날쭉하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는 언젠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부모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데, 아이들이 보기에는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은 부모님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가 많거든요. 상황을 파악한 아이는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생존 전략을 짜냅니다. 혹시 영화나 드라마에서 괴물을 앞에 두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제정신을 찾을 때까지 주변 인물이 정신 차리라며 소리 지르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집착형 애착의 부모 아래에서 자라나는 아이도 비슷한 생존 전략을 채택합니다. 아이는 혼란스러운 감정상태에서 빠져나오기에 바쁜 부모가 자신의 요구를 알아챌 때까지 더 가까이 달라붙고 더 보채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부모에게 찾아온 감정보다도 더 드센 감정을 아이가 표현하고, 부모의 초점이 아이의 내면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 결과 부모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결국 아이들의 요구에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집착형 부모에게 양가형(집착형) 아이가 자라나는 것은 것은 일종의 적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육아를 책임지려고 노력했고, 아이도 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생존을 위해서 노력한 결과인 경우에 해당할 수 있으니까요. 비록 이들은 안정형 애착은 되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차선의 애착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드릴 나머지 애착유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으로 소개드릴 애착 유형은 무시형(dismissing) 애착입니다. 대중 매체에서는 무시형보다는 회피형으로 자주 소개되는 편이긴 해요. 하지만 사실 회피형은 아이들의 애착 유형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성인의 애착 유형에서는 회피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인의 애착 유형을 표현하고 싶다면 무시형 애착이 맞는 표현입니다. 다만 지칭하는 대상이 성인이냐 유아냐의 차이일 뿐이고, 무시형이나 회피형이나 살아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기에 무시형과 회피형은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성인의 무시형과 아동의 회피형을 구분하여 사용하겠습니다.


  무시형은 나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타인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겠죠. 그래서 이들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하고, 곁에 의지할 사람이 하나 없는 경우에도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무시형의 사람들은 정말 외로움에서 오는 고통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애착 이론에서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본능에서 오는 애착 욕구를 부정하고 억압하면서,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스스로를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역동적 무의식 개념에서 빙산의 맨 아래층에 위치한 무의식이 얌전히 지내지는 않는다고 설명드렸죠. 비슷하게 이들이 의식 아래에 억눌러두었던 애착 욕구들도 얌전히 지내지는 않습니다. 좌절된 욕구들은 억압된 분노나 심리적 취약성으로 존재하면서 무시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시종일관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내면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평소에 정신적인 에너지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그러다가 대인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으면 억눌렀던 분노나 심리적 취약성과 맞물려서 누구보다도 폭발적인 감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설명은 억압의 방어기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들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무시형의 사람들은 억압을 주요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정리하면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은 내면의 상처가 많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척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하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엄마와 분리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관찰한 실험입니다.

안정형 애착의 유아들은 엄마와 분리되었을 때 불안해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엄마가 돌아오자 금방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에 회피형 애착의 유아들은 엄마와 분리되었을 때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지내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엄마가 돌아와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람에게는 흔히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코티솔(cortisol)이 있습니다. 코티솔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승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리고 회피형 애착을 가진 유아들의 코티솔 수치는 안정형 애착의 유아들에 비해서 두드러지게 상승되어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던 회피형 유아들의 마음은 사실 안정형 유아들에 비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셈입니다.


  마음의 상처들을 타인에게 보이기 싫어하고, 차라리 혼자서 감내하기를 택한 사람들이기에 내면의 고통을 섬세하게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도 마음의 상처가 적지 않음을 어렵게나마 헤아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진료실로 오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 증상은 좋아지고 있는데도 표정은 반대로 나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표정만 놓고 본다면 마치 증상이 나빠져가는 것만 같을 때도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타인에게 아픔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한층 성숙해졌고, 그 결과로 진료실에서 울어보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자신의 아픔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하거든요. 이런 시도는 내면의 아픔들을 외부로 꺼낼 수 있기에 오히려 환자들에게는 좋은 신호가 됩니다. 하지만 사실 무시형 애착을 가진 분들은 정신과 진료실로 잘 찾아오시지는 않는 편입니다. 이제까지 설명드렸던 부분들을 고려했을 때 이해는 되지만, 마음이 드러내는 것이 익숙지 않아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그 사람의 표정으로 나타날 수는 있지만, 반대로 한 사람의 표정이 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은  마음의 문 닫혀있기에 그들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 것뿐이에요. 그들의 마음을 한번 열어보면 꼭꼭 눌러놓아야만 했었던 아픔과 외로움들로 인해 한없이 어두울 때도 정말 많습니다.


무시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막상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억눌러둔 아픔과 외로움이 가득할 때도 있습니다.




  회피형(무시형) 아동의 부모들도 무시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시형 애착의 부모들은 애착 관계의 중요성과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려고 해요. 이 부모들에게 애착 관계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주목할 만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무시형 애착의 부모는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서 과도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묘사하려고 합니다. 오죽하면 '우리 부모님은 정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라는 표현이 가장 안 좋은 묘사일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부모님에 대해 아주 멋지고, 아주 자상했던 좋은 부모님이었다고만 대답해요.


  실제로 저렇게 좋기만 한 부모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죠. 하지만 무시형 애착의 부모들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부모에게 거절당하며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애착 욕구에 잘 반응해주지 못했던 부모일지라도 무조건적으로 좋았던 부모로 추억할 수만 있다면, 나중에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볼 때 완벽하고 행복했던 과거로 추억할 수 있거든요.


  이처럼 무시형 애착의 사람들은 부모에게 받았던 과거의 상처들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마치 이들이 애착 본능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것처럼요. 다만 이들이 육아를 시작하게 된다면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평소에는 애착 문제를 잘 덮고 지냈던 사람일지라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자신의 애착 문제가 다시 자극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무시형 애착의 부모 입장에서는 육아가 참 부담스럽기도 하고 야속할 수도 있습니다. 기껏 애착 문제를 억압하면서 살아오려고 노력했는데, 자신의 아이가 자신의 애착 문제를 다시 자극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무시형 애착의 부모들은 마음 한편에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 부모로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아이와 함께하려고 하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집니다. 과거에 부모님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많이 없기에 아이들에게 어떤 사랑을 줘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또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도 상당히 어색합니다. 그래서 무시형 부모들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이와 거리두기를 시도합니다. 아이가 다가오면 불편한 표정을 짓고 괜히 한 발짝 멀어집니다.


  집착형 애착의 부모 아래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처럼, 이 아이들도 부모의 표정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착형 애착의 부모와는 경우가 다릅니다. 만약 아이가 부모에게 더욱 보채고 더욱 달라붙는다면 어떨까요. 집착형 애착의 부모는 아이의 폭발하는 감정에 맞춰주려고 했지만, 무시형 애착의 부모의 경우에는 아이의 폭발하는 감정을 더더욱 피하려고 합니다. 무시형 부모들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도 무시형 부모의 성향을 눈치채고 전략을 수정합니다. 내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애착 본능을 포기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만큼 거리두기를 시도합니다. 이 아이들도 상황에 맞추어서 적응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는 먼발치에서라도 부모가 존재하는 것이 아이의 생존에 필요하니까요. 




우리가 사랑에서
집착하고 회피하는 것은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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