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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Feb 10. 2024

사람은 왜 건강한 애착을 갖고 싶어할까

존 보울비의 애착 이론, 안정형 애착

  이제까지 프로이트의 욕동 이론과 자아 심리학, 클라인으로부터 시작한 대상관계이론, 코헛의 자기심리학 등의 다양한 정신분석이론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까지 보셨던 이론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바로 사랑을 강조했던 이론들이라는 점입니다. 아이-엄마 관계에 관심을 보였던 대상관계이론이나 자기심리학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이트조차도 사랑과 관련된 에너지인 리비도를 강조했었습니다. 물론 각 이론들마다 사랑의 정의는 다를 수 있겠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탐색하려고 노력했다고도 할 수 있어요.


  이론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랑은 중요합니다.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도 막상 자신을 과시하며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사람들도 결국에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입니다. 인정 욕구는 타인에게 잘난 모습의 자신을 사랑받고 싶어하는 자기애적 욕구니까요. 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매몰차고 난폭하게 대하던 사람들도 내면에는 애정 욕구가 존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도 사랑에서 받은 상처들이 많아서 '이래도 나를 사랑할거냐'고 의심하고 경계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중심에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사랑에 문제가 없으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사랑에 문제가 있으면 우울하고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아져요.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분들도 연애, 결혼, 육아, 직장 등에서 생기는 고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셨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고민들도 대부분은 인정 욕구를 포함한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면서 시작해요. 이처럼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필수적이고 중대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랑이 건강하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애착 유형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은 삶의 행복에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사랑하는 방법이 건강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랑법이 건강한 사랑법일까요? 이 질문에는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대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애착이론은 존 보울비(John Bowlby)로부터 시작된 이론이에요. 그는 원래 대상관계이론가인 멜라니 클라인에게 정신분석을 배우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보울비는 대상관계이론이 현실 속의 관계는 배제한 채로 내면의 환상만을 강조한다고 생각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어요. 이렇게 출발한 애착이론은 사랑을 심리학적인 측면 외에도 생물학적 측면, 진화론적 측면 등으로 다각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포유류에 속하는 인간으로서의 생물학적 본능'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이론들을 담아내다보니 기존의 정신분석이론과는 멀어진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애착이론은 비록 정신분석이론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정신분석이론에 포함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도움될 수 있는 점들이 많은 이론이라서 애착이론도 이 책에 담게 되었습니다.


  애착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애착을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정신의사협회의 정신의학 용어사전에서는 애착을 '유아와 양육자 간의 정서적인 유대감'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는 양육자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많은 경우에서는 엄마가 애착 대상이 됩니다. 심지어 아빠가 주양육자인 경우에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여기에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애초에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약 10개월 동안 보호받다가 세상에 나오게 되죠. 그래서 열심히 육아하는 아빠들에게는 아쉽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아이는 생물학적인 본능으로 엄마와의 관계에서 애착을 찾습니다. 이처럼 애착은 엄마-아이 간의 관계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사랑을 주고받는 다양한 관계로 이어지는데요, 초기의 애착관계가 그 사람의 사랑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은 대상관계이론에서 초기 관계인 엄마-아이의 관계를 강조했던 이유와 비슷하죠.




  성인의 애착은 안정형, 무시형, 집착형, 혼란형으로 4개의 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의 애착에도 4개의 유형이 있는데요, 각 유형의 이름은 안정형, 회피형, 양가형, 혼란형으로 성인의 애착 유형 이름과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아이와 성인의 애착 분류법은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서인지 무시형은 회피형과 혼용되고 집착형은 양가형과 혼용되는 편이에요. 이 글에서는 애착 유형의 이름들을 성인과 아이를 구분해서 쓸 예정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실 때는 위와 같이 혼용하셔도 큰 무리가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착을 쉽게 분류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나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미지에 따라 나누는 것이에요. 이전에 대상관계는 나에 대한 이미지와 타인에 대한 이미지로 나누어서 우리 마음에 기억된다고 설명드렸죠. 애착 유형도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해요. 아래에 첨부한 그림을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거에요. 같은 사분면에 존재하는 애착형, 즉 무시형(성인)-회피형(아이), 집착형(성인)-양가형(아이)은 서로 상응하고 혼용되고 있는 유형들입니다. 이 책에서는 안정형, 집착형, 무시형, 혼란형의 순서로 애착 유형을 하나씩 설명드려볼게요.


애착의 분류 방법




  안정형(secure type) 애착은 나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타인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유형입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타인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의존적으로도 살아갈 수 있어요. 안정형 애착은 이처럼 독립과 의존을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애착 유형입니다. 이렇게 건강한 애착을 가진 아이의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바로 안정형 애착을 가진 부모들입니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부모들은 자신의 애착 관계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부모님과의 애착 관계에 대해서 소중히 여기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부모님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들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서 적당히 좋았던 부모님으로 추억해요. 반대로 자녀를 키울때는 지나치게 잘해주지 않아도 되고 적당히만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정형 애착을 가진 부모들은 육아에 대해서 부담을 지나치게 느끼지 않고, 부모가 자신에게 주었던 따스한 사랑을 자녀들에게도 주려고 노력합니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은 과거의 애착관계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이 크지 않아요. 그래서 이 부모들의 마음 속은 잔잔하고 고요합니다.


  우리는 잡음이 많은 곳에서는 새로운 소리가 들려도 알아채기가 힘들죠. 반면에 고요한 곳에서는 새로운 소리를 잘 잡아낼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정형 애착의 부모들은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아이들의 신호를 민감하게 잡아내고, 아이의 욕구에 섬세하게 반응해 줄 수 있어요. 이렇게 부모가 아이의 신호를 잘 알아채고 욕구에 잘 반응해주는 것은 안정형 애착을 형성할 때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안정형 애착과 안정적이지 못한 애착들을 구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아와 양육자간의 의사소통의 질이였다고 합니다. 유아는 본능적으로 불안할 때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어하고, 엄마와 함께 놀고싶어 합니다. 유아들은 아직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아들의 욕구는 비언어적으로 표현될 때가 많죠. 그래서 엄마가 아이의 욕구를 알아채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안정형 애착의 부모들은 아이의 미묘한 비언어적 단서들을 정확하게 읽고 아이의 의도에 맞게 반응해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가 신이 나서 몸을 흔들면서 즐거워할 때, 부모가 이를 알아채고 함께 웃음짓고 몸을 으쓱거리며 즐거워해줄 수 있겠죠. 이렇게 아이와 부모 간의 의사소통이 협력적으로 잘 진행되면 아이는 자신의 부모를 믿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들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이 요구하면 엄마가 조율된 반응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행복한 믿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러한 엄마-아이 관계가 '초기 조율(early attunement)'이 잘 되고 있는 관계고, 아이가 안정형 애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관계입니다.



  정리하면 안정형 애착의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고, 아이의 욕구에도 잘 조율된 반응을 보여주어서 결국 자녀들도 안정형 애착으로 잘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죠. 안정형 애착 뿐만 아니라 다른 애착 유형들도 부모의 애착 유형이 자녀에게 똑같이 전이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처럼 애착 유형이 그대로 전이될 확률이 약 70%라고 합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데, 이때 사랑뿐만 아니라 사랑법도 함께 내려간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안정형 애착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고요하고 진정된 마음을 가지고, 타인의 욕구에 잘 반응해가며 사람들과 행복하게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해가면서 자신과 타인의 좋은 이미지도 유지해갈 수도 있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타인의 욕구에 반응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건강한 행복을 주는 관계를 과거에 겪어봤기 때문에, 반대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관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안정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이미 안전기지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관계라고 생각되면 더 늦지 않게 잘 빠져나올 수도 있어요. 이렇게 안정형 애착의 사람들은 독립과 의존을 유연하게 오가면서 주변의 관계들에서 오는 사랑을 즐겁게 누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건강한 애착을 갖고 싶은 것은
사람의 당연한 본능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사랑 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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