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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Feb 04. 2024

전쟁 난민 이웃

일주일 내내 아픈애들 데리고 집에만 있었다. 나도 아팠다. 그래도 그 몸뚱아리로 쉬지않고 다섯식구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애들 돌보고 그랬다. 물론 남편도 옆에서 부지런히 자기몫을 했다. 재택으로 회사일을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장을 보고 밖에서 해야하는 잡다구리한 일을 다 했다.


남편이나 나나 잠도 거의 못잤다. 둘째가 열이 40도 된지 5일째다. 낮에는 잘 놀고 괜찮다가 밤이 되면 열이 오르고 애가 많이 운다. 밤에는 진짜 고문이다.


오늘은 남편 앞에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냐왔다. 그냥 이대로 어디가서 목 매달고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그러면 이 고통이 끝날까. 남편도 자기도 그러고 싶단다.


극단적인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입을 닫고 일단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간다. 우리 부부가 10년째 같이 살고 있는 비결이다. 죽기전에, 이혼전에 일단 한숨 돌려보자. 참을인자 세번에 살인도 면한댔다. 쿨하게 혼자 나가고 싶지만 양심이 있으면 그러면 안된다. 셋중에 하나는 데려가자. 막내를 데리고 한참동안 어르고 달래가며 옷을 겨우 입힌다. 목도리에 모자까지 중무장을 해서 나간다.


일요일 오후, 가게 하나도 문 연 곳이 없다. 갈 곳은 애들 놀이터. 우리 아기만 나홀로 놀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가온다. 율이와 엄마다. 우리 둘째 유치원 친구이고 그 애 엄마다. 일주일만에 처음 바깥 구경을 하고 처음 사람 구경을 하니 반가워 죽겠다. 우리 막내도 말도 몇마디 못하는게 프랑스말로 인사를 서너번을 한다.


율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 막내와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논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율엄마와 어른들이 하는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다. 율엄마는 나와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 이민을 왔다. 러시아 사람이고 전쟁난민 신분으로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에 왔다.


-이제 프랑스 적응되어 가나요? 프랑스생활은 어때요?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시내에 사니까 생활도 편리하고. 주리씨는요?

-다른건 그럭저럭 괜찮은데 병원이 문제에요. 여기 받아주는 의사가 있어요?

-없어요. 며칠전에 많이 아파서 응급실 갔었는데 네시간 기다렸어요. 정말 병원이 문제에요.

-러시아 병원은 어때요?좀 나은가요?

-훨싸 좋죠. 아프면 전화하면 의사가 20분안에 집에 와서 치료해줘요.

-근데 왜 여기 프랑스 왔어요?러시아가 훨씬 좋은데..우리도 병원 때문에 곧 한국에 갈 거에요.

-우리는 전쟁 중이잖아요. 남편이 전쟁 군인으로 끌려 가야하는데 우리는 우크라이나하고 전쟁하기 싫어요. 근데 전쟁 반대 한다 하면 감옥가요. 그래서 프랑스에 도망 왔어요. 러시아 있으면 감옥 가니까. 한국도 북한하고 같은 상황 아닌가요?한국도 북한군하고 싸우기 싫다, 군대 안간다 그러면 정부에서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잖아요


맞다! 한국에서 모든 남자는 때가 되면 군대를 가야하고 병역을 거부하면 감옥에 간다, 총을 들고 싶지 않다는 일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군대 대신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다는 신문기사를 아주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는 휴전국이고, 전쟁을 쉬고 있을뿐, 여전히 전쟁중이다.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나라는 휴전중이었으니 실감을 못했다.


외국사람들한테는 전쟁하고 있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전쟁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한국이나 북한이나, 그게 그걸로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휴전국에 살아온 나는 전쟁이 뭔지 몰랐다. 우물안 개구리였다. 오늘도 새로이 하나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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