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서 원룸까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했다.
저 대자보를 보자마자 내 입에서 흘러나온 더러워서.라는 말은 서러워서.라는 말의 동의어였으며, 그 해에 들은 말 중 가장 마음 깊은 곳을 찔러대는 말이었다.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구태의연한 말 외에는 그 어떤 문장도 떠오르지 않아. 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슬퍼하며 서 있을 시간도 아까웠다.
여름 시즌은 회사 근처의 방이 동나는 속도가 월급이 통장을 스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치사하고 더러운, 그러면서도 서럽고 짜증 나는 모든 감정을 미뤄두고 얼른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 외엔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회사 주변에서 방을 얻으려던 나의 소망은 실망에서 허망함을 너머 기적(이라 쓰고 똥망이라 읽는다)이란 단어로 바뀌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이 똥줄 타는 다급한 상황에도 미적거리며 내 마음에서 방을 못 빼고 있던 ‘서러움’은 결국 포장되어 있던 짐들 중 절대로 풀어서는 안 될 짐 하나를 기어코 풀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정 안되면 고시원이 있지.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라도 남았다는데. 서러움이 풀어버린 그 상자의 밑바닥에는 고작해야 이 문장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미 상자를 벗어나 내 곁을 무심히 지나가는 감정들의 태풍 덕분에. 나는 서울로 왔을 때 내가 거쳐가야만 했던 고시원 생활을 다시 한번 시리게 느껴야 했다.
참 서럽고 힘들었으며. 외로웠지만. 로망이란 단어를 마음속 태양으로 삼고 기분이 눅눅해질 때마다 그곳에 드러누워 꺼지지 않는 로망의 빛으로 기분을 말리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비록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 비한다면 결코 좋은 집, 혹은 좋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가 동력으로 삼았던 그 단어 “로망”덕분에 고시원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방금까지도 판도라를 세계에서 제일 부러워하던 나는, 순간 내게도 이 문장이 마지막으로 남은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고개를 들어 다시 쳐다본 대자보는 더 이상 내게 충격이나 서러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는 이 순간은. 내가 이사를 해야 하는 타이밍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조그만 고시원 방 한 칸에서 원룸으로 오기까지.
한 인간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내가 가진 로망의 변천사 이기도 하다. 때론 지질하고, 때론 하찮겠지만. 그 조각들을 그러모아서 나는 나 자신을 빚었으니. 그 모든 기억과 그 속의 모습이 나 자신인 것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상자 바닥에 남아버린 문장 하나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