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스며든 저녁놀에 차 안은 붉게 물들었다. 핸들을 꺾을 때마다 방향을 바꿔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썼다. 검은 렌즈 너머 색을 잃은 하늘 위로 먹물처럼 무거운 구름이 흘렀다.
그때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쓰러지셨어.”
왜 하필 지금인지 왜 또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짜증부터 치밀었다. 하지만 목구멍까지 오른 말은 혀끝에서 멎었다. 엄마는 지하철 계단에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몇 달 전부터 어지럽다던 말을 흘려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 했지만 무리하지 말라는 권유를 외면하고 엄마는 계속 출근했다. 그리고 결국 길 위에 쓰러졌다.
운전 내내 심장이 곤두섰다. 엄마 집 앞에 차를 세우는 순간 나 역시 갑작스러운 현기증에 휘청였다. 핸들에 머리를 기댄 채 숨을 고르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이 들어가는 만큼 부모도 늙어간다는 사실이, 그 가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현실이, 그제야 실감됐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공간에 감돌던 마늘, 양파, 간장의 냄새. 삶고 볶고 끓이는 부엌의 냄새. 그런데 그 속에 묘하게 환자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그 냄새는 이상하게도 구역질을 유발했다.
거실에는 여동생과 부모님이 앉아 있었고, 세 사람 사이에는 죄책감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았다. 불투명한 액체 속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며, 이 침묵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가늠했다.
엄마가 환자가 된 이후 여동생과 나는 병원 예약과 보험 약관을 뒤지고 혜택을 따졌다. 엄마는 암보험이 있어 다행이라며 안도했지만, 나는 힘없는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마 위로의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옆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아버지가 괜히 미웠다.
나는 맞고 자랐다. 아버지는 욕설을 섞어가며 나를 때렸고, 그것을 즐기는 듯했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답은 듣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집을 피해 독서실로 도망쳤고, 성인이 되어 가장 기뻤던 일은 부모로부터 독립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삶의 무게를 짊어질수록 다시 부모의 중력에 끌려들었다.
엄마는 억척스럽게 살았다. 무능한 남편 대신 생계를 꾸리고 사업도 해냈지만, 병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진단명은 다발성 골수종. 혈액암의 일종으로, 심장은 이미 심각하게 손상돼 언제 멈춰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의사는 희망적인 말 한마디 없이 항암치료를 권했다.
1년간의 치료 끝에 혈액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엄마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그 와중에 아버지도 병원에 드나들며 존재감을 내세웠다. 엄마보다도 관심을 원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엄마의 병 앞에서 내 불안장애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한 점 먼지에 불과했다. 그래, 언젠가는 이 시간도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나는 자유로워질까? 그러나 인간은 대체되지 않는다. 특히 부모는.
사람들은 말한다. 수용의 시작은 '용서'라고. 하지만 나는 용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주의 먼지가 중심을 용서할 수 있을까.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예전엔 자주 갔던 곳이다. 책 속에 파묻히면 세상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는 건 현실이 버겁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책을 덮고 나올 때쯤이면 조금은 담담해졌다.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다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채 새벽까지 기다린 엄마는 “이젠 병원에 가야겠다”라고 말했다. 본능적으로 눈물이 흘렀다. 죄책감이었다.
의사는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며 호스피스를 권했다. 내가 찾은 병원은 차갑고 무표정했다. 대변 냄새가 진동했고, 환자들은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엄마는 간병인에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이게 현대판 고려장인가.
결국 엄마를 다시 데리고 나왔다. 돈이 얼마 들든 더 나은 병원을 찾아 이송했다. 그곳은 밝고 쾌적했다. 희망은 없었지만 위로는 있었다.
그러나 감정이 사라진 듯 담담해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문득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살아 있지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주말마다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는 달라졌다. 말이 많아지고, 살가워졌다. 쇠약한 몸과 반대로 성격은 밝아졌다. 어쩌면 잃어버린 젊은 시절을 회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잠시라도 행복했으면 했다.
우리를 잊더라도...
시한부라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가방 하나를 들고 삶의 긴 여정을 걷는 나그네다. 어떤 이는 그 안을 끝없이 채우려 애쓰고, 어떤 이는 이미 다 내려놓은 채 빈 가방을 들고 걷는다. 엄마의 가방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벼움 속엔 살아온 세월의 무게와, 아직 덜 끝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원하는 결말을 보장받지 못한 채. 책을 덮을 수도, 다른 이야기로 바꿀 수도 없다.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
비록 엄마의 이야기가 슬픈 결말로 향하더라도, 그녀의 꿈속에서는 행복한 마지막이기를. 그것이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