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지법 수련일지

by 쪼교

나는 축지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시간을 단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다.

중국 무협 영화 속 사람들은 공중을 가르고 날아다녔다. 처음엔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도,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축지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먼저 축지법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축지법은 ‘땅을 줄여 먼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술법’이라고 한다. A에서 B까지 거리가 100이라면, 땅을 접어 50, 아니 20으로 줄이는 것이다. 축지법을 쓴 자는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나는 아무리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전설. 설명만 보면 꽤 그럴듯하다. 도술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이론상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상한 정보를 하나 찾았다. 지금은 사라진 합정역 1번 출구 옆, 축지법을 가르친다는 학원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축지법을 가르쳤고, 또 누군가는 배웠다는 말이다. 도인일까, 사기꾼일까. 나는 결정했다. 직접 실험해보기로.

알아보니 축지법은 기천문이라는 국내 전통 무공의 일종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보법’이었다. 무협소설 속 번개 같은 신공은 아니고, 실제 수련자들은 건강보법이라 부르며 잰걸음으로 산을 넘는다. 합정의 학원도, 아마 그런 기천문 수련원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고 넘기지만, 그들만큼은 웃지 않는다. 나는 그 진지함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가능할지도 모르잖아?”


참고로 나는 미치지 않았다. 조현병도 없고, 음모론자도 아니다. 다만 진지하다. 나는 생각한다. 태초의 인간은 우리보다 유능했을지도 모른다. 자동차도 전철도 없던 시절, 그들은 두 발로만 세상을 건넜다. 그 시절엔 초능력이 아니라 ‘필요’가 기술이었다. 아마 우리의 능력은 편리함에 의해 퇴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련을 시작했다. 집 앞 공원. 사람이 적은 한적한 산책로. 가부좌를 틀고 단전에 힘을 모았다. 축지법. 땅을 줄이는 기술. 이건 어쩌면 워프, 텔레포트와 비슷한 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경로를 단축하려면 공간이 휘어야 하고, 그러려면 광속에 가까운 속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빛처럼 달릴 수 없다. 그러니까… 뛰지 않고 이동하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이름들이 떠올랐다. 축지법을 썼다고 전해지는 의병장 신돌석. 고종의 심복이었던 보부상 출신 독립운동가 이용익. 고종이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두루마기가 걸리적거리지 않게 잡고, 좀 빠르게 걷기만 하면 됩니다.” 그의 발이 너무 빨라 보여, 어떤 이는 ‘발이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좋다. 나도 한 번 써보기로 한다.


100미터 앞 화장실 건물에 목표를 잡는다. 나는 원래 100미터를 약 18초에 달렸다. 지금은… 글쎄. 어쨌든 빠르게 달리면 그건 축지법이 아니니까. 힘을 뺀다. 대지의 기운을 느낀다. 눈을 감는다. 눈꺼풀 속에 건물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가까워져라. 가까워져라.” 눈을 뜬다. 건물이 약간 가까워진 듯 착각된다. 몸을 살짝 기울인다. 한 발을 들어 공중으로 점프. 공기가 내 폐로 몰려든다. 흡입–압축–폭발–배기. 자동차 엔진처럼 몸이 앞으로 밀려나간다. 두 번째 발. 같은 방식으로. 펑, 펑. 순식간에 도달했다. 성공이다.

이젠 시간을 재보자. 축지법 없이 달렸을 땐 24초. 지금은… 18초. 무려 6초나 단축되었다! 성공이다. 나는 축지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신선이 되어 있었고, 강호의 협객이었고, 시간여행자였다. 상상은 하늘을 날았고, 마음은 시대를 건너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갔고, 미래를 예견했고, 마침내 해탈에 이르렀다. 나는 진심으로 믿었다. 이것은 실현된 축지법이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자랑을 했다.


“나… 드디어 성공했어. 축지법.” 아내가 물었다.


“예전에 가장 빠르게 달렸을 땐 몇 초였어?”


“음, 고등학생 때 14초?” 그녀가 말했다.


“그럼 살 빼고 운동하는 게 더 빠르겠다.”


순간, 입이 딱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축지법은 다이어트였는지도. 그녀는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TV를 가리켰다.


“규호 씨! 똑같은 사람 나와. 봐봐.”


TV에서는 <나 혼자 산다>가 방영 중이었다. 배우 이주승이 축지법이라며 깡충깡충 뛰는 장면. 그 모습은… 나와 완전히 똑같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우스웠는지. 그리고 그 우스움이, 얼마나 나를 인간답게 했는지를.

그날 이후, 나는 축지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과거의 그들도, 언젠가 멈췄을 것이다. 현실이 그들을 웃게 만들었을 때.



브런치 북에 넣기위해 재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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