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by 쪼교


주말 내내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감기처럼 분명한 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멀쩡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여기저기서 통증이 피어올랐다. 누워서 끙끙 앓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뺨에 뭔가 차가운 게 닿았다. 눈을 뜨니 고양이 보리가 내 얼굴에 앞발을 살짝 얹고 있었다. 보리는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아내는 침대 끝에 겨우 걸린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꿈을 꿨던 것 같다. 어디론가 외출하려는데 매번 뭔가 빠뜨리고 나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꿈이었다. 안경을 안 쓰고 나왔다가, 바지를 안 입고 나왔다가, 또 차키를 두고 나왔다가… 몇 번을 반복하며 드나들다 보니 짜증이 났다. 도무지 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 그러다 문득 오늘이 주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고, 다시 잠들 수 있었다.

그 꿈은 혹시, 지금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은유한 걸까.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마음. 아니면, 나가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나가려는 내가 만들어낸 꿈이었을까.


부모님 두 분이 거의 동시에 아프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나도 아팠으면 싶었다. 매일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프다, 힘들다, 못 참겠다.” 반복되는 그 말들에 지쳐가면서도, 또 받게 됐다. 처음엔 짜증이 났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고통 속에서조차 나를 필요로 한다는 그 감정이 낯설지 않았다.


고통을 오래 들여다보면, 정이라는 것이 생긴다. 과거엔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인데도, 지금의 고통이 모든 걸 덮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느껴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프면, 누군가 나를 안아줄까? 나도 그렇게 정을 느껴볼 수 있을까?

밤이 되면 불안이 밀려왔다. 침대에 누워 아내와 보리를 바라보면, 저들이 나 없이도 잘 살아갈까 싶었다. 눈을 감으면 그 어둠이 그냥 잠이 아니라, 뭔가 끝도 없이 내려가는 구멍처럼 느껴졌다. 깊고 조용하고, 내가 혼자인 공간. 내 존재가 깃털처럼 가볍게 흩어지는 느낌. 그래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보리가 울었다. 밥 달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료를 붓고, 보리가 밥을 먹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꿈과 현실 사이를 가른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낯설었다. 이게 내 얼굴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며 다시 쓸데없는 생각을 시작한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는, 결국 그 현실을 원망하게 된다.

생각했다. 신이 지옥을 만들었다면, 지금 이 세상이랑 뭐가 다를까?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산다. 참는 사람, 화내는 사람, 돈을 버는 사람, 돈을 쓰는 사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 상처받은 사람. 각자 선택했고, 각자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바뀐 건 환경이 아니라 속도뿐이다. 문제도, 폭력도, 오해도 너무 빠르게 생겼다 사라진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계속 자리를 바꾸고, 그마저도 금방 잊힌다.


요즘 자주 들리는 ‘묻지마 칼부림’ 사건들. 가해자의 삶이 지옥이었다면, 그 지옥은 왜 다른 사람을 데려갔을까. 피해자의 죽음은 누가 구제해주나.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지옥이 태어났을 뿐이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그가 쓴 『닫힌 방』이라는 희곡엔 세 사람이 등장한다. 한 명은 인정받고 싶어 하고, 한 명은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또 한 명은 그 욕망을 끝내 받아주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 방에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그들은 머문다.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공간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말한다. 지옥은 불이 아니라, 타인이라고.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회사에서 부당한 지시에 항의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이상한 일이 시작됐다. 정기적으로 사무실 청소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나는 혼자서 모든 일을 도맡았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다시 항의했더니, 대표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건 자격지심이야.”


그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었다. 마치 내 감정을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에 부여된 낙인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조심스럽게 걸었고, 말했고, 숨 쉬었다. 내가 말하는 톤, 표정, 발걸음까지 다 들켜버리는 기분. 그래서 점점 침묵하게 됐다.

그 공간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불이 아니라, 시선과 침묵과 무시로 이루어진 방.

이 세상은 나의 전부라서, 떠날 수 없다. 내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다면 해방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죽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욕망 없이 존재하는 건 인간이 아니니까.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겐 지옥이었을까?

나는 늘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 너무 무심했거나, 너무 예민했거나, 혹은 너무 존재감 있게 굴었거나. 나의 말, 나의 침묵, 나의 표정, 나의 결정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숨통을 조였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나를 오래 붙잡았다. 내가 타인의 ‘닫힌 방’ 안에 있었다면, 그 방의 공기는 얼마나 탁했을까.

나는 과연 누군가의 방에서 나갈 수 있었을까.


새벽 3시가 되었다. 불을 끄고 누웠다. 눈앞에 불빛 잔상이 떠다닌다.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이 오겠지만, 그 내일이 오늘보다는 조금 나았으면 좋겠다.

나는 누군가를 구원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지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지옥으로 만든 사람들도, 어쩌면 자신만의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보리는 조용히 내 옆에 누워 잠들었다. 나는 그 옆에 다시 눈을 감는다. 아주 잠깐, 해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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