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이신가 봐요?"
처음 듣는 질문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웃으며 슬쩍 던질 때마다, 나도 웃으며 “네, 뭐 그런 셈이죠” 하고 대답하곤 했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담담한 것도 아니다. 그 말에는 무심한 호기심과 세련된 분류의 느낌이 섞여 있다. 아이 없이 사는 삶을 그저 하나의 선택지로, 유행처럼 소비하는 시선이 느껴질 때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진다.
우리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다. 아주 어릴 때 결혼한 것도 아닌지라, 주위에선 이미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처음 몇 해는 그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리라 믿었다. 노력도 해봤고, 기다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꼭 바라는 대로 흘러주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우리도, 서로에게도.
그러다 보니 이젠 익숙해졌다. “생각이 없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요” 같은 대답도 능숙해졌다. 그 말들이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다. 언젠가부터는 우리 자신도 정말 그런 줄로 믿으며 살아간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건 단지 한 가지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 못한 게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의 서사가 달라지는 일이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순간들, 공원에서 아이와 뛰노는 가족들을 볼 때 불쑥 올라오는 감정들, 명절에 형제자매의 자녀들이 모인 풍경 속에서 조용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일들.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숱하게 지나왔다.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물 먹은 천처럼 무거워졌고, 익숙한 웃음 뒤로는 말하지 못한 질문이 맴돌았다.
왜 우리에겐 오지 않았을까.
우리는 어떤 부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물론 우리에겐 고양이가 있다. 지금은 한 마리, 보리. 그전엔 또 다른 고양이가 있었다. 아주 작고, 조용하고, 애틋한 존재였다. 그 아이는 몇 해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날까지 내 품 안에서 숨을 쉬었고, 아주 조용히 떠났다. 그날 이후 한동안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집 안의 모든 공간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작고 가벼운 생명이 남긴 부재는, 의외로 삶 전체를 휘청이게 했다. 작은 물그릇, 식탁 아래 자주 앉던 자리, 해가 드는 창가. 사소한 모든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슬픔은 예상보다 더 깊었고, 오래갔다.
보리는 그 이후에 우리 곁에 왔다. 처음엔 대체할 수 없는 자리를 억지로 채우는 듯한 미안함이 있었지만, 어느새 우리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그 작은 존재는 다시 삶을 돌보게 하는 감각을 되살려주었다. 아이를 가지지 못한 우리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으로 누려보는 ‘돌봄’이라는 형태의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조그만 생명을 사랑하는 감정이,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감정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리가 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숨을 쉬며 잠들 때, 나는 그 작은 오르내림에 집중한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내가 품고 있는 이 사랑이 아직 유효하다는 확신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녀석이 없는 집을 상상한다. 소파 아래로 미끄러지듯 걷는 발소리 하나 없는 집. 그 상상만으로도 가슴 어딘가가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더욱 사랑하게 된다. 살아 있는 오늘, 함께 있는 이 시간의 의미를. 하지만 녀석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끝났을 때, 정말로 우리 둘만 남겨진 그 미래가 찾아왔을 때,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그 물음이 마음 한쪽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다. 언젠가 한 명이 먼저 떠나고, 결국 한 사람만 남게 되는 시간까지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무엇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은 아직도 내 안에서 말없이 자라고 있다.
우리는 자주 묻는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까. 우리 둘이 나이 들어가며, 이 고요한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까. 주변 친구들은 자식 자랑을 하고, 손주 얘기를 한다. 우리는 조용히 웃는다.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체념도 하며. 어쩌면 질투일지도 모를 감정이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드러내는 일이 어쩐지 부끄러워 애써 부인하고 만다.
정말 괜찮은 걸까? 우리는 자주 서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말없이 식사를 차리고, 같은 시간에 TV를 보고, 고양이와 놀고, 창밖을 함께 바라본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이상하게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말은 없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이 흐르고, 침묵은 고요한 위로가 되어 돌아온다.
나는 아이를 가지지 않았지만, 덜 부모인 것이 아니다. 나는 매일 그들을 보살피고, 걱정하고, 그들의 작은 표정 하나에 온 마음이 움직인다. 그들은 말하지 않지만 눈동자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본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도, 또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누군가는 말한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그 말이 꼭 틀렸다고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없는 자리가 가장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그 무게를 우리는 안고 살아간다. 없는 자리를, 있는 존재로 품으며.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 형체 없는 상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다정함으로 하루를 채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살아간다. 아주 조용하고, 아주 다정하게. 그것이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결국은 만들어낸, 하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