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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Sep 10. 2023

고문 기술자와 참기름 장사꾼

사는 이야기



난 지금 까지 여러 장소에서 살았다. 좋은 대학에 가라고 고려대 옆 종암동에 살았었고, 신도시에 살고 싶어서 한때 신도시였던 일산으로 이사 왔다. 그중 내가 가장 애착이 가고 기억에 제일 많이 남는 곳은 어릴 적 살던 용두동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공간들은 이야기 형태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남진의 노래 중 " 님과 함께"라는 노래가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라고 시작하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고향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가사와 달리 내가 태어난 고향은 푸른 초원도 없고, 그림 같은 집도 없다. 비 올 때마다 기름때가 흘러나오는 아스팔트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는 곳이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매연과 쇠 가는 소리, 용접소리가 나는 작은 기계 상가들이 몰려있는 동네였다. 거기 사는 이들은 호흡기 질환을 앓았고, 시커먼 청계천물에 피부병을 앓는 이들도 많은 동네였다. 심지어 청계천에 성냥을 던지면 불이 붓는다고 어른들이 겁을 주곤 했다.




세월이 흘러 청계천물은 깨끗하게 정화되었고 쓰레기가 있던 자리는 나무와 꽃들이 자라게 되었다. 그곳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난 가끔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어렸을 적 기분 나쁜 추억들이 새롭게 단장되어 기분 좋아지는 심리가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집이 여전히 거기 있기 때문이다. 점심때 추어탕집에는 수많은 손님들과 그들이 몰고 온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오갔다. 난 그곳에서 허기진 인간의 모습과 삶의 모습이 추어탕에 오묘하게 섞이는 광경을 보았다.


지금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지만 내가 다니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사립학교였다. 용두동에는 사립학교와 국립학교가 1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추첨번호를 받았고, 입학면접까지 보고서야 나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가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데 나만 다른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슬펐다. 그 시절에는 사립학교와 국립학교가 무엇이 다른지 몰랐다. 난 이후 대학교까지 모두 사립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엄마가 친구와 대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저 자식 학교 보내더라 뼈 빠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내 탓이 되었다.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내가 대학 때까지 살던, 부모님이 평생 일궈놓은 결과물인 건물을 사들이고 잃어버린 곳이다. IMF는 우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옥상이었다. 옥탑방에는 내 방이 있었다. 독립된 공간을 좋아하는 나는 부모님에게 조르고 졸라 옥상에 방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결국 방을 갖게 된 나는 매일 같이 옥상에 나가 하늘의 별을 보았다. 옥상에서 보는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저 멀리서 보이는 남산타워가 인공위성처럼 반짝이며 떠 있었고, 비슷한 키들의 건물옥상에 꾸며놓은 화단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난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미래를 꿈꾸며 성인이 되어갔다.




당시 우리 집 건물에는 여러 가구가 모여 살았다. 1층 첫 번째 집에 전파사가 있었고 가운데에는 미용실, 마지막 끝집에는 참기름 집이 있었다. 우리 집은 4층 주인집이었다. 나는 전파집 아들과 미용실집 아들과는 어울려 놀았다. 우리는 항상 전파사집에서 놀았다. 이유는 전파사집에 가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은 전파사집 아들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전파사집 아들은 늦둥이라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전파사집에서 놀다가 지루 할 때쯤 우리는 참기름집 앞에서 공놀이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참기름 집 아저씨는 번쩍이는 대머리를 만지며 조용히 놀라고 엄포를 놓았다. 참기름집 아저씨는 선한 인상에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파사집 아들 얘기로는 과거에 배우였는데 대통령을 닮아서 참기름 장사를 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저 아저씨 TV에서 봤다 “


근데 대통령 닮아서 참기름장사를 하고 있는 거래“


" 대통령을 닮았는데 왜 참기름장사를 해? “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파사집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그러는데 무슨 보안상 그렇데 “


난 보안상 그렇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전파사집 아들은 번쩍이는 대머리가 전파를 혼란시킨다고 했다. 그래서 군 통신 장비에 오류가 난다고 했다. 전파사집 아들 이야기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기름집 아저씨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번쩍이는 대머리를 가리고 참기름통을 리어카에 싣고 다녔다. 마치 대통령이 참기름 장사를 하는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참기름집 아저씨는 왜 하필이면 참기름 장사를 했던 것일까. 아저씨를 보면 tv에 나오는 배우 같기도 하고 대통령 같기도 하고 참기름집 아저씨 같기도 했다. 아무튼 참기름집 아저씨는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리어카만 끌고 다녔다. 가끔 우리에게 소리 지를 때는 TV에서 보던 대통령이 바로 앞에서 말을 하는 것 같아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나중에는 당시 대통령이 퇴임 후에 사과했다고 하는데 참기름집 아저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가 궁금했다.

몇 년 전 뉴스에서 종교 활동 중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미용실집 아들은 나보다 1살이 어렸다.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고 큰 얼굴 큰 눈을 가진 아이였고, 잘 웃지 않았다. 항상 비비탄 총을 들고 다녔는데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비비탄을 쏘고 다녔다. 미용실집 아들이 쏜 총에 전파사집 아들 눈에 비비탄을 맞았다 전파사집 아줌마가 미용실에 들어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항의를 한 사건이 있었다.

전파사집 아줌마는 한 번만 더 사람한테 총을 쏘면 그 집 아저씨까지 신고할 거라고 했다. 미용실아줌마는 눈이 돌아서 더 큰 소리로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었다.

나는 미용실 아줌마가 무서웠다. 붉게 칠한 입술에 통통한 체격을 가졌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미용실집 아줌마가 나를 위에서 내리 깔듯 쳐다보는 눈빛이 싫었다.

전파사집 아줌마와 미용실집 아줌마는 서로 파파머리에 손가락이 끼어 빼내지도 못하고 밀고 당기고 있었다.


그날 저녁 전파사집 아줌마는 씩씩거리면 우리 집에 올라왔다.


" 규호 엄마 그거 알아요? 미용실집 남편이 왜 안 보이는지? “


미용실집 남편은 미용실 안쪽 방에 숨어있다고 했다. 원래 경찰이었는데 큰 죄를 지어서 숨어 지낸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가끔씩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미용실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미용실집 남편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문기술자였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했다고 했다. 과거엔 영웅이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악마가 되었다. 아니, 악마가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미용실집 남편이 잡혔다는 뉴스를 봤다. 그때 생각했다. 못 잡은 게 아니고 안 잡은 거라고...


그러고 보니 미용실집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파사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우리 집에 올라와서는 짜장면에 탕수육을 시켜 먹거나 만화영화를 보았지만, 미용실집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미용실집 아이는 우리와 같이 놀지 않을 때는 혼자서 동네 아이들에게 비비탄총을 쏘고 다녔다.

언젠가 한 번은 미용실집 아이를 부르려 미용실 안 쪽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집안은 모두 불이 꺼진 채로 검은 공기가 흘렀다. 방 한쪽 구석에 곰같이 덩치가 큰 실루엣이 보였다. 살기 어린 눈빛이 번쩍였다. 미용실아줌마는 소리를 꾁 질렀다. 아들은 집에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


미용실집 아이에게 물었다.


"집에 있는 아저씨는 누구야?"


미용실집 아이는 대꾸 없이 자동모드로 벽에 비비탄을 쏘았다.


나는 그 곰 같은 실루엣의 남자가 미용실집 아이의 아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용실집 아들은 아빠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을까. 아빠를 숨기고 싶었을 까. 나는 성인이 된 후에 알았다. 미용실집 아빠가 누구이며, 고문기술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고, 왜 숨어 다니는지 말이다. 그리고 미용실집 아빠는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던 고문기술자가 있었고. 닮았다는 이유로 생계를 위협받던 참기름을 파는 배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세월이 변한 후에 종교인이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하느님은 그들 모두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었을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위로받고, 용서받는 것인가? 나도 시간이 흐르면 용서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

각자의 시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인생은, 삶은, 각각의 그들 앞에 어떤 얼굴이었을까?


수 십 년이 흐른 어느 일요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추어탕을 먹으로 그 동네로 갔다.


엄마가 물었다.

"저 아줌마 기억 안 나? “


"아니, 누군데? “


"미용실 아줌마“


어느 골목 사이에서 지친 얼굴로 주저앉은 백발의 노파를 보았다. 그녀는 헝클어진 백발머리에 머리를 숙인 채로 무언가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폐지를 담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어중간한 백발의 단발머리가 잔뜩 흘러나와 엉기어 있었다.

슬펐다.

인생을 스팩트럼으로 나눈다면 그녀는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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