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물끄러미 철망 사이로 호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호랑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바라보려는 듯 한 시도 호랑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 안의 호랑이는 지금껏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안의 호랑이 앞에는 생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 고기를 앞에 두고도 좀처럼 먹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호랑이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털이 많이 빠져 있었고, 뼈가 가죽 위로 앙상하게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마른 상태였다. 마치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하염없이 엎드려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통일이는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있나?"
그는 사육사에게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러고 있네요. 아마도 심리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육사는 매일같이 동물원에 찾아오는 그에게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는 사육사의 대답에 다시 물끄러미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이만 가보겠네."
"예, 살펴 가세요. 어르신."
그는 사육사의 배웅을 받으며 동물원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탑골공원에 도착하자, 그와 또래이거나 연배가 아래인 노인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어이, 대근이. 오늘도 동물원에 갔었나?"
그의 뒤에서 동갑 친구 순철이 그의 어깨를 잡고 친숙하게 물어왔다.
"응. 그놈 얼마 안 남은 것 같어. 통 먹지를 않어."
"그놈도 자네랑 같은 거겠지. 고향이 그리운 걸 테지."
"그래. 그런가 봐."
순철의 말에 그는 괜스레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고향이라는 단어 하나에 이렇게 마음이 아파지다니, 세월이 흘러도 고향을 잃어버린 마음은 여전하구나 싶었다.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었다. 올해 여든넷인 그는 13살 때 6.25 전쟁을 겪었다.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그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피난을 떠나야 했다. 당시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은 유엔군은 평양을 탈환하고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지만,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어 결국 흥남부두에서 북쪽에 남아 있던 부대들과 주민들은 남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보다 7살 어린 6살 남동생의 손을 잡고 배를 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를 정신없이 뛰었더랬다. 저마다 미군 배를 타기 위해 서로를 밀치고 당기는 아비규환이 한참이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뛰던 그는 자기 손이 허전한 것을 느꼈다. 꼭 잡고 있던 동생의 손을 놓친 것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덜컥 겁이 났다.
"대진아!"
그러나 동생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라도 살아야 한다."면서 그의 손을 억지로 잡고서 배에 간신히 올라탔다. 그는 배가 흥남을 떠나는 순간까지 갑판 위에서 동생이 있던 부두를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난 2000년 그는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잃어버린 동생 대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마음속으로만 부르고 찾던 동생을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더랬다. 네 손을 놓쳐 미안했다고. 형이 정말 미안하다고. 동생은 그런 형의 눈가를 닦아주며 "내래 괜찮소."라며 웃었다. 그러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는 대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4일간의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대진은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돌아갔다. 그는 돌아가는 버스에 대고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른다. 이제 가면 언제나 다시 보나 싶었다. 하염없이 떠나는 버스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마치 5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 뒤로 총 스무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그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최근에는 북한과의 관계가 냉각되면서 점점 상봉 횟수가 줄어들어 그의 초조함만 늘어갈 뿐이었다. 게다가 요즘 그의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자식네들의 권유로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곤 했는데, 그동안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받은 검진에서 위의 소화력이 약해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요즘 입맛도 없어 음식을 잘 먹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았다. 그의 체중은 점점 줄고 있었고, 그에 따라 그의 아내의 걱정은 태산처럼 커지고 있었다.
하루는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TV에서 '북한에서 온 백두산 호랑이'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아내는 그의 건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오늘 정 대통령과 북한 김 위원장 간의 친교의 의미로 김 위원장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백두산 호랑이를 평화의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당신 요즘 식사량이 너무 줄어든 것 같지 않아요? 아무래도..."
그는 아내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TV에 정신이 팔려 뉴스 앵커의 말을 쫓아가고 있었다.
"이 호랑이는 멸종 위기에 처한 백두산 호랑이 종으로, 한반도에 5마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서울동물원에서 사육될 것으로..."
"당신 내 말 듣고 있어요? 아무래도 도련님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는 밥을 먹다가 바로 일어섰다. 아내는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여보?"
그는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어디 가려고요?"
"서울동물원."
"거긴 왜요?"
"호랑이 보러."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그는 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 양반, 서울동물원으로 갑시다!"라고 말했다.
서울동물원에 도착해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백두산 호랑이가 있다는 축사였다. 뉴스 보도대로 거기 백두산 호랑이가 있었다. 호랑이는 북에서 이동해오는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움직임 없이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호랑이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북에 있었으면 가족들 품에서 편안했을 것을..."
그는 어느새 호랑이에게 자기 자신을 이입하고 있었다. 호랑이에게 마치 잃어버린 가족이 있다는 듯이 대하고 있는 그였다. 그 뒤로 그는 줄곧 동물원에 찾아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호랑이 축사에만 찾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관람객이라고 생각했던 사육사 등 동물원 관계자들도 이제는 그가 어떤 사연이 있어 오는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정도로 그는 매일 빠지지 않고 (동물원 휴관일을 제외하고) 호랑이를 보러 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가 식사량이 줄은 것처럼 호랑이도 식사량이 줄고 점차 음식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갈수록 말라갈수록 그도 함께 말라갔다.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진 그는 더 이상 호랑이 축사에 올 수 없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호랑이를 찾았다. 그는 호랑이가 자신의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여겼다. 자식들이 모여 그런 아버지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엄마, 아버지가 왜 그러시는 거예요?"
"왜 그러긴. 매일같이 호랑이에 정신 팔려 계시다가 병을 얻으셨지. 에휴. 호랑이가 본인 신세 같은가 보지. 고향에 가보지 못하니..."
"이러다 아버지 돌아가심 어째요?"
"통일이 되면 모를까. 아버지 병 못 고친다."
"아이고..."
그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백두산 호랑이를 만났다. 그는 백두산 호랑이와 함께 꽃밭을 거닐었다. 꽃밭을 거닐다 동산 위로 올라갔다. 동산 위로 올라가면 저 너머에는 그리운 흥남부두가...
-삐이-
동시에 병원 TV에서 뉴스 보도가 흘러나왔다.
"북한 김 위원장의 친교 특별 선물로 알려진 백두산 호랑이 통일이가 오늘 아침 서울동물원 축사에서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은 이 기자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