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Box 초창기 사진들
이따금씩 휴대폰이나 대용량저장소 네이버박스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첩을 꺼내 바라보곤 한다. 예전에는 빛바랜 종이 사진첩을 먼지 가득한 장롱에서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서야 사진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워낙 기술이 발달해 있어서 어디서나 간편하게 휴대폰을 통해 사진 속에 담겨진 추억을 꺼내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사진첩은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MBTI의 P의 특성인 정리정돈 안 됨과 무계획성이기도 한 것 같지만) 오로지 시간 순서로 정리되어 있어서 스크롤을 꽤 내려야 예전 사진이 나오곤 한다.
네이버박스에 저장된 최초의 사진은 2011년 2월 10일 목요일에 찍은 여동생의 중학교 졸업식에서의 내 셀카 사진이다. 이 때는 참 피부가 백옥같이 희고 깨끗했구나. 지금처럼 수염으로 거뭇거뭇해지지 않은 모습은 아직 소년 티를 벗어나지 않았던 때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자기 관리에 실패한 지금의 모습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다이어트 운동과 피부 관리를 해서 20대 때의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Young해져 보자.
그 다음으로 저장된 사진은 친가 친척들과 함께 여행을 간 사진이었다. 정확히 어디로 여행을 간 것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갯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해안인 것 같다. 친척들과 함께 갯벌 위에서 소라를 잡기도 하고, 조카들을 데리고 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중고등학생이 되어 있을 조카들의 어린 시절을 보니,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나도 이때 23살밖에 되지 않았지. 23살의 나는 막 대학에 입학해 글 공부를 시작했을 때였지. 그러고 보니, 대학 동기들과 찍은 사진들도 있었다. 그때 수업 빼먹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니던 기억만 난다. 참 철 없고 막무가내였지.
그 다음 저장된 사진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간 제주도 여행 사진. 이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병이 있으셨는데, 그래도 여행에 못 갈 정도로 안 좋은 상태는 아니어서 다행히 함께 갈 수 있었다. 살아계신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외할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이 외가집에 놀러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더 주지 못해 안달하셨던 것 같다. 우리에게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시려 노력하셨던 분이었다. 11년 전의 엄마와 아빠는 지금에 비해 참 젊으셨구나. 지금과 달리 생기 넘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요즘 부모님께 잘하지 못해서 그런가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 다음 사진은 2013년 홀로 광주 여행을 갔을 때의 사진이다. 눈에 띄는 사진은 광주 민주화 운동 묘역에 방문한 것과 게장 정식을 먹은 것밖에는 없지만, 사진을 보면서 광주의 나머지 부분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특히 게이바들이 몰려 있는 대인동에서 광주 게이들과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이었다. 타지에서 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들. 다시 한 번 광주에 간다면 그 때의 기분을 과연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그때 그 당시의 추억은 그 때밖에는 느낄 수 없는 어떤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네이버박스 초반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소개해 보았다. 그 외에도 사진첩 속에 담겨 있는 추억들은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차차 풀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추억을 들춰보기로 하자. 추억을 계속 들춰 내어 그 시간을 즐기고 싶기는 하지만, 끝없이 추억을 들춰내다가는 내 일상이 과거의 추억으로 인해 물들어버릴까 경계가 된다. 추억은 잠시 즐기는 정도에서 끝내는 게 나의 현재를 또한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