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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Feb 13. 2023

봄날의 추위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

  이번 겨울은 설날 즈음에 잠깐 한파가 찾아왔다가 날씨가 금세 풀려 버려서 그랬는지 추위를 탔다는 게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신체의 온도는 그다지 낮지 않게 느껴졌지만, 마음의 온도는 저 밑바닥으로 일찌감치 떨어져 버려 힘들게 보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나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라고, 필자는 추측한다.


  1월 30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어 코로나가 이제 한풀 꺾였다. 근 3년 동안 코로나에 전 세계가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던 것을 생각하면 드디어 코로나로부터 해방이 된 듯싶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몰고 온 여파, 눈앞을 가늠할 수 없는 칠흑과도 같은 세계 경제 추세, 끝없는 전쟁의 위기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가는 환경오염 등은 21세기에도 인류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전 세계의 위기를 차치하고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냉각된 북한과의 관계, 서로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는 정치판, 치솟는 물가 등으로 인해 서민들의 고통과 불안감은 점점 더 가중되기만 한다. 외교와 정치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서민들의 피부에 가장 와닿는 것은 역시 경제, 그중에서도 물가다. 설 연휴에도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기도, 가족,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사는 것도 겁이 날 정도로 물가가 올랐다. 계란 한 판이 만 원을 넘기고, 우윳값이 3천 원을 넘기고, 자장면이 5천 원을 넘긴 시대. 다음 달이면 봄날이 다가올 3월이건만, 서민들의 마음속 추위는 좀처럼 안정되지 못한 채 매서운 눈보라를 맞고 있는 것만 같다.


  1980년 서울의 봄을 기억하는가. 유신정권이 박정희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고, 새로운 평화와 자유가 보장된 시대에 살게 되리라고 굳게 믿던 그 서울의 봄 말이다. 너도 나도 광화문 거리에 나와 만세를 외치던 그때. 지금의 5, 60대 중년층들이 아직 청춘이었을 그 시절.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서울의 봄은 오래가지 않았다.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의사당과 청와대를 점거하고 또 다른 군부독재가 시작되었다. 그 해의 5월에는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해야만 했다.


  필자는, 이번 봄이 마치 1980년 서울의 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는 거의 지나가서 기쁘지만, 아직도 뭔가 불안함이 남아 있는 2023년의 봄. 머지않아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만개하겠지만, 그 봄을 우리는 진정 오래도록 즐길 수 있을까. 지구 온난화로 가뜩이나 짧아진 봄을.


  봄을 청춘의 계절로 빗대곤 한다. 나도 아직 30대 중반이니,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청춘들이 살아가기에 너무나도 퍽퍽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청년 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대출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집 한 칸 마련하기에도, 결혼자금을 모으기에도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버겁다. 부디 봄을 봄답게, 청춘을 청춘답게 보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 서울의 봄처럼 기대하고 싶은 것이 있다. 팍팍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 추위를 기꺼이 견뎌내 보자고. 비록 대한민국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엄혹하다 해도, 비록 대한민국의 정치가 개판, 야단법석이라고 해도, 비록 취업하기 어렵고 물가가 올라 살기 힘들다고 해도 우리는 무엇이든지 시작해 볼 수 있기에, 무엇이든지 도전할 수 있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기에 이 봄날의 추위는 기껍게 견뎌낼 수 있다고.


  이것은 비단 청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꽃샘추위 따위는 이겨내고 다가올 봄을 위해 갈고닦자. 준비하는 자만이 인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엄혹한 이 상황들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불안이 인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위기방재시스템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 당신이 느끼는 불안함은 당연하고 옳은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불안은 약이 되지만, 지나친 불안은 나의 도전 정신과 행동력을 잡아먹는다. 그 불안을 이용해서 일 보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바꾸자. 불안을 이겨내고, 내 앞에 놓인 상황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불안하다고, 당황스럽다고 모든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나는 또다시 불안의 먹잇감이 될 테니까.


  해리포터에 나오는 '죽음의 성물'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세 형제가 다리가 없는 강에 마법으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려는데, 죽음이 막아서며 말했다.


  "너희들이 현명하게 강을 건넜으니, 내가 너희에게 선물을 주겠다. 무엇을 가지고 싶은가?"


  첫째가 말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 지팡이를 원합니다."


  죽음은 첫째에게 딱총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선물했다. 첫째는 그 지팡이로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잠에 들었지만, 누군가 첫째가 자는 사이에 첫째를 죽이고 지팡이를 차지했다. 그래서 죽음은 첫째를 차지할 수 있었다.


  둘째는 죽음에게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는 힘을 원한다고 했다. 죽음은 마지못해 부활의 돌을 그에게 주었다. 돌을 가진 둘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약혼녀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부활할 수 없었고, 시름시름 앓던 둘째는 그녀를 따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래서 죽음은 둘째를 차지할 수 있었다.


  셋째는 죽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투명 망토를 선물 받았다. 셋째는 평생 동안 죽음의 눈을 피해 다녔고, 그가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되자, 자신의 아들에게 투명 망토를 물려주고 기꺼이 죽음의 친구가 되어 함께 저승으로 떠났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죽음 또는 사후세계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 중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이며, 불안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셋째가 죽음을 친구로 맞이하여 함께 사후세계로 떠났듯이 우리도 죽음과 같은 불안을 기꺼이 인정하고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면 영원할 것만 같던 불안의 감정은 사라지고, 이윽고 편안함이 찾아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주변의 상황과 형편이 냉혹하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까지 얼어붙어 있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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