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여행을 함께 떠올려 보자니, 중고등학교 때의 수학여행과 대학교의 MT가 생각난다. 좌충우돌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고등학교 시절과 나름 푸릇푸릇했던 나의 20대 초반 대학교 시절이 영화나 사진의 필름처럼 쭉 스치고 지나간다. 두 시기 모두 나에게 있어 소중했던 시기였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래서 오늘은 세 개의 에피소드를 나란히 써 내려가보려 한다.
천년의 고도, 경주와 짝사랑했던 체육 선생님
출처 : 불교신문
어릴 때부터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고 좋아했던 중학교 2학년 생으로서는 경주에 가는 것이 말 그대로 설레었다. 또래 중학생 남자애들은 역사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어했는데, 박물관에 견학할 때마다 필기도구를 들고 열심히 써 내려가는 나를 그들은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경주의 수많은 고릉들과 천마총,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이런 유적과 유물들이 주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은 어떤 보석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조상들의 물건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보존되어 후손들인 우리 눈앞에 놓여 있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특히 석굴암이 주는 그 정교함과 세밀함이란... 우리의 조상들은 참 대단한 석조 기술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여행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아마도 술(?)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과 선생님 몰래 숨겨 들여온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이 수학여행의 묘미라면 묘미였던 시절, 우리 반에서 제법 논다 하는 녀석들이 술을 가져와 놀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부반장이었지만, 녀석들에게 뭐라 할 힘조차 없었다. 나는 그냥 녀석들이 알아서 하도록 신경을 끈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체육 선생님이 방 검사를 위해 숙소의 문을 두드렸다. 술을 가져온 녀석들은 혼비백산해서 술을 이곳저곳에 감추고 문을 열었다.
"어디서 술 냄새가 나는데?"
체육 선생님은 술 냄새가 나는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고는 술병들을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술병들을 찾아낸 체육 선생님은 우리 방의 모든 학생들에게 엎드려뻗쳐로 기합을 주고 벌로 한 명씩 팬티를 벗게 했다.
"너희들, 어디 꼬추에 털도 안 났는데 술을 먹고 있어? 그러면 어디 꼬추에 털 났는지 안 났는지 볼까."
아이들이 팬티를 벗지 않으려고 선생님 앞에서 안간힘을 쓰다가 팬티가 벗겨져 중요부위만 가리고 있는 걸 본 나는 내 차례가 오자, 팬티를 스스로 벗어 선생님 앞에 보여줬다. 나는 그 당시 단단한 체격에, 남자답게 생긴 체육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내 은밀한 부분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저마다 나를 가리키며 놀리고 있었고, 체육 선생님도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꼬추가 귀엽구먼."
체육 선생님은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자,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신라의 달밤은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다.
광활하고 이국적인 섬, 제주와 끔찍했던 한라산 등반
출처 : 제주의 소리
고등학교 2학년 때 제주도에 처음 가 본 이후로 대여섯 번은 다시 제주에 방문했던 것 같다. 그만큼 제주도는 가장 놀러 가기에 만만한(?) 섬이 아닐까 싶다. 외국에 나가기에는 부담이 되고 국내여행 가기에는 거기가 거기 같아서 질렸다고 할까. 아무튼 첫 방문했던 제주의 모습은 한국지리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중앙의 한라산을 중심으로 수많은 오름들이 솟아 있는, 수많은 현무암들로 이루어지고 바닷가 근처에 마을이 흩어져 형성된 제주도.
수학여행 코스로 한라산 등반을 빼놓을 수 없었는데, 그때 비가 와서 우비를 입고 백록담까지 등반을 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정상에 올라 백록담에서 겨우 사진을 찍고, 다음 일정으로 급하게 내려와야 했던 것이 많이 아쉽기는 했다. 역시 수학여행 코스는 일정이 빡빡해서 여행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술 난장파티(?)와 삼각관계(?)
출처 : 구글 이미지
2011년에 23살이라는 나이에 늦깎이 학생으로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나는 나보다 3살 어린 동생들과 함께 공부해야 했는데, 3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생들이 나를 잘 따라줘서 금방 친해졌다. 나는 1반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2반 아이들과도 친해서 4월 무렵 2반 동기들과 함께 남이섬으로 엠티를 떠났다. 지하철로 이동한 우리들은 학생회가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게임을 하고 놀았다. 나는 성인이 되어 스무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단체로 게임을 하며 노는 것이 익숙지가 않았는데, 특히 마피아 게임은 너무 어려워 번번이 벌칙에 걸렸다.
저녁에는 펜션에서 준비해 놓은 그릴에 남자 학생들이 삼겹살과 버섯, 소시지, 새우 등을 올려놓고 굽기 시작했고, 여자 학생들은 쌈 채소 등을 씻고 상을 차렸다. 3월에 입학해 한 달의 시간 동안 많이 친해지지 못했던 동기들이 술을 마시면서 이제야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역시 술의 힘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동기들이 하나둘씩 제 풀에 쓰러지거나 토사물을 바닥에 쏟아대거나 펑펑 울음을 터뜨려댔다. 한쪽에서는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고, 한쪽에서는 연인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때 나는 뭘 했을까. 나는 여자애들이 술 취해 울면서 하는 얘기를 들어주고 또 들어주고, 토를 하면 화장실로 데려갔던 것 같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내내 내가 좋아했던 한 남자 동기를 바라봤다. 그 녀석은 알고 보니 우리 동네에 살았고, 내 고등학교 4년 후배였는데, 그 녀석과 자주 만나 술을 먹다 보니 친해졌다. 나는 그 녀석의 귀여운 외모와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에 반했는데, 그 녀석은 나를 형이라 하면서 잘 따르고 애교도 가끔씩 부려서 나를 많이 혼란스럽게 했다. 그런데 그날, 그 녀석의 눈은 한 여자 동기 A에게 가 있었다. 그 녀석은 여자 동기 A를 좋아하고 있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나는 역시나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그 녀석을 포기해야만 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 녀석도 A에게 차였다고 하니, 서로 쌤쌤인 건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