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연주자 / 나의 분열에 대하여

<따뜻한 편지 1752호>를 읽고

by 제갈해리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맨발로 무대에 올라 타악기를 연주하며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던 스코틀랜드 출신 이블린 글레니.


그런 그녀에게도 시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8살 때 청각장애를 일으키며, 12살에 완전히 청력을 상실하는 장애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양쪽의 귀 대신 양 뺨과 머리, 가슴 등 온몸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피나는 연습과 20여 년의 노력 끝에 결국 그녀는 미세한 대기의 변화로도 음의 높낮이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극도로 섬세해진 발끝의 촉각 하나하나가 그녀의 청각기관이 되었고 소리의 진동을 더 잘 느끼기 위해 무대에서 신발을 신지 않은 채 연주를 해서 '맨발의 연주자'로 불렸습니다.


"귀로 소리를 듣는다는 건 한순간이에요. 그 후에는 사라지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더 많은 것들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받아들여요."


스크린샷_2021-02-01_오전_10.44.48.png 출처 : 따뜻한 편지 1752호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은 좌절을 주기도 하지만 반면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도 줍니다. 여러분도 시련을 극복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글레니가 소리로 감동을 주는 것처럼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시련이란 꼭 방해 거리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의 발 아래 놓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 C.F 블렌차드 -


*발췌 : 따뜻한 편지 1752호


따뜻한 편지의 이블린 글레니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자연스레 숙연해지는 마음이 드는군요. 청각장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귀'를 찾기 위해 피나는 연습과 20여 년의 노력 끝에 미세한 음까지 잡아내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보면 그녀의 의지가 얼마나 굳건했는지 알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보통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자신의 환경을 탓할 텐데, 그녀는 끈기 있게 자신의 환경을 극복해 나갔군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네요.


출처 : 구글 이미지

저는 4년 넘게 조현병(정신분열병)을 앓아 오고 있습니다. 처음 발병했을 때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가족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동생을 다른 존재로 여겨 동생의 종아리를 찬 적도 있었습니다. 4개월 정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었고, 퇴원하고 나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한동안 망상 증상으로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의 물심양면 지원(특히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쯤 아마 황천에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사고와 수습 기간을 반복한 끝에 지금의 애인 꼬북이를 만나면서 꼬북이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점차 생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경제적으로는 아직 안정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블린 글레니처럼 의지가 강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블린 글레니도 처음에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매번 부딪히고 깨지고 아파하면서도 견디고 참아내고 이겨냈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의지가 강하지 않은 대신(오히려 의지가 박약한 쪽에 가깝지만), 지금의 제 상황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견디고 참아내고 이겨내고 있습니다.


위의 따뜻한 편지에서 말하듯이 시련은 꼭 방해거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장마와 태풍이 스치고 지나간 만큼 땅은 굳어지고 새로운 토양에서 풀들이 자라날 테니까요. 저도 저의 메말랐던 토양에 물과 거름을 주어 땅을 기름지게 하고 그 곳에서 온갖 곡식들이 영글어 갈 수 있도록 만들 것입니다.


시련이 오는 것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아프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매번 두려움에 떨고 불안해 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 굳건해지는 것은 시련이 오는 것을 맞받아칠 수 있는 배짱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배짱을 가지고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아, 덤벼 봐라. 내 어디 기가 죽나, 하고 말이죠.


글을 쓴 김에 제가 대학 다닐 때 제 병에 관해서 썼던 시를 올려 볼까 합니다. 조현병에 관한 제 관점이 드러나는 시죠. 시를 꺼내 보이는 것이 (시를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두려우면서도 (내 마음을 꺼내 보이는 것처럼) 설레기도 하는데요. 제 시를 감상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좋으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감상은 제 퇴고에 도움이 됩니다.


소리와 음의 분열

창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나의 단잠을 깨운다 뭉쳐진 소리들은 사람의 언어가 되고 무리의 폭력이 되어 나의 고막을 터뜨린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된다 귀머거리는 자기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가 있다 토스트를 씹는 소리,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 소리, 지층을 울리는 발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에게는 내 소리밖에 없어 다른 것은 침입하지 못한다 이제 그 다른 것을 음이라고 하자 아무리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도 나의 고막은 그 음들을 저만치 튕겨내 창밖으로 떨군다 오로지 나의 소리들을 방해하는 음이 존재한다면, 존재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나의 단잠을 깨운 뭉쳐진 음들, 음들 속에서 내 소리들은 존재하지 않지만, 언어는 나의 음이 아니지만 폭력은 나의 음이다 좀 더 나의 폭력적인 음들을 듣고 싶다 내 안에서 나오는 거대한 폭력의 음을 소망하며 나는 창밖으로 낙하한다.
KakaoTalk_Photo_2021-02-01-10-51-37-1.jpg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