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편지 1753호>를 읽고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추운 겨울 한 남자와 그의 아들이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은 그들에게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우리는 이곳에서 영영 떠나지 못할 것이라며 울부짖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힘들어하는 아들을 데리고 수용소 건물 한구석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고는 어렵게 구한 버터 한 조각을 진흙으로 만든 그릇에 넣고 심지를 꽂은 뒤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고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3주를 살 수 있으며 물을 마시지 않고도 3일을 버틸 수 있다. 그런데 희망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단다. 아들아, 어둠을 밝히는 이 불이 우리에게 바로 희망이란다."
저마다 다르지만 지금도 상황에 부닥쳐있는 많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당장의 어려움으로 절망과 손을 잡는다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잃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희망의 불씨를 항상 남겨 두세요. 지금은 절망이 온 마음을 휘감고 있어도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는 서서히 온 마음을 밝히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드릴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러운 희망이 시작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기다리고 보고 일하라. 포기하지 말라.
- 앤 라모트 -
*발췌 : 따뜻한 편지 1753호
오늘의 따뜻한 편지에서는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둠 속에서 밝은 불을 피워 주면서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한 것은 어떤 어둠이 닥쳐와도 희망이라는 불씨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으면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보입니다. 먹을 밥이 없어도, 마실 물이 없어도 희망만은 온전히 간직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제게 다가옵니다.
저도 집에서 반강제적으로 나오게 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었는데요. 그때 애인의 집으로 내의와 겉옷 몇 벌, 신발과 책 등을 짐으로 싣고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애인이 반겨주지 않았다면 저는 이 코로나 시국에 바깥을 덜덜 떨며 추위를 나야 했을 것입니다. 애인은 말 그대로 제게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애인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안일 돕는 것과 재택근무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물론 함께 장을 보기도 하고, 형이 일하는 편의점의 야간 근무를 함께 서기도 했습니다만, 형이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씻어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형은 요즘도 생활비와 그에 따른 하루 지출을 얼마 정도 해야 하는지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을 볼 때도 인터넷 쇼핑과 오프라인 마트의 물건 가격을 비교하고 구입합니다. 형의 이런 꼼꼼함 덕분에 저희가 굶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이겠죠. 물론 저희 어머니께서 아버지 모르게 어느 정도 돈을 보내 주시지만, 그것으로 남자 둘이 살아가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형은 자신이 조금 덜 먹고 더 일하는 것으로 형 자신과 저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고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어린아이같이 유치하게 굴고, 개념 없이 굴더라도 형은 그런 저를 가끔은 탐탁지 않게 보면서도 그래도 끝내는 품에 껴안아줍니다. 그런 형에게 저는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고 그런 형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작가로 등단을 해야 합니다. 제 마음은 조급합니다. 33살이라는 나이에 번듯한 직장도 없이 오갈 데 없이 형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급하더라도 한 발짝이라도 글을 더 잘 쓰고 싶고, 한 모금이라도 영감을 더 얻고 싶어집니다. 왜냐하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제가 언젠가 당당하게 돌아가야 할) 가족과 형을 위해서라도 저는 더 애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작가로 등단하기 위한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니, 의도가 불순하지 않냐고 하실 수도 있겠죠. 몇 년 전 천만영화로 등극했던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기억하시나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인 김자홍(차태현 분)이 지옥의 일곱 재판을 받다가 두 번째 지옥에서 선행을 베푼 것들을 칭송받다가 그것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김자홍이 밝히자, 나태지옥의 초강대왕(김해숙 분)이 벌을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순간 강림 차사(하정우 분)가 김자홍이 돈을 번 이유가 병든 노모와 나이 어린 동생의 학비를 위해서였다고 밝히게 되죠. 그 말은 들은 지옥의 대왕은 결국 김자홍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이유와 같습니다. 작가로 등단하면 소설 천만 원, 시 5백만 원을 줍니다. 이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이 돈이면 고생하고 있는 형과 제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작가는 남다른 소명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작가라는 꿈은 어렸을 때부터 있어 왔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저의 현실을 보면 작은 원룸에서 형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 그리 녹녹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당장 공부하기 위한 책을 사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조현병까지 앓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면 병증이 도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글 쓰는 것밖에 없기에 이것으로라도 조금씩 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사실을 말하자면, 저희는 동성애 커플입니다. 형은 집안에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형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집안에서는 형을 죽도록 패거나 정신병원에 보내 버릴 것이라고, 형은 말합니다. 그래서 집안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제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형이 형의 부모님과 통화할 때에 저는 숨을 죽이고 있거나 밖에 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형 집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실 테니까요.
그러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도대체 몇 개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그래도 살아보자고, 견뎌내자고 이렇게 악바리처럼 돈에 혈안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나쁜 것일까요? 돈이 정말 없는 사람에게 돈만 보고 산다고 욕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 추악한 면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저는 작가가 되더라도 세상의 이면, 추악한 면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피해자들, 소수자들, 불우한 자들을 위해서 글을 써 나갈 것입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작가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작가가 되려고 합니다. 그 돈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쓰일 것입니다. 위의 따뜻한 편지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라고 볼 수 있지만, 희망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필사적으로 도전할 때 희망도 보이는 것이겠지요. 또, 그렇게 할 때 기회라는 것도 포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절박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절박함에서 의지가 나오고, 절박함에서 용기가 나옵니다. 그런 의지와 용기는 희망을, 꿈을 현실로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