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편지 1754호>를 읽고
가을철 산에 오르다 보면 산속 다양한 동물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도토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 도토리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다람쥐와 청설모인데 이들은 겨울철 식량을 저축하기 위해서 땅속 곳곳에 열매를 묻어둡니다.
하지만 다람쥐와 청설모는 머리가 나빠서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를 묻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묻었던 도토리 중 95%는 찾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찾아내지 못한 도토리 중에는 겨울이 지나고, 봄철에 싹을 틔우며 튼튼한 나무로 다시 자라납니다.
이렇게 자라난 나무는 숲을 이루고 산을 만들어 또 한 해 동물들의 양식이 되어 줍니다.
만약 인생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면 행복할까요?
오히려 잊지 못해서 괴롭거나 지난 일에 대한 후회로 삶의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때론 잊지 못해서 힘들 때도 있지만 잊음으로 득이 되기도 합니다.
실패와 후회보다는 고마운 일들과 소중한 것을 기억한다면 행복으로 가득한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 오늘의 명언
기억해 내는 힘이 아닌 잊는 힘이야말로 우리들이 살면서 더 필요한 것이다.
- 쇼렘 아쉬 -
* 발췌 : 따뜻한 편지 1754호
따뜻한 편지 잘 읽었습니다. 매번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음의 평안과 깨달음을 주셔서 따뜻한 편지 작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따뜻한 편지는 망각의 교훈을 주셨는데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말해볼까 합니다.
저는 관계에 상당히 연연하고, 상처도 많이 받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병을 키웠던 것이고,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뇌파 검사를 해서 진단을 받은 결과, 제 뇌의 전두엽 부분에 뇌파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민감하고 생각이 많은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평소 누군가가 어떤 말을 하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곱씹어 보며 생각이 많았는데요. 그런 생각하는 에너지로 인해서 체력이 금방 소진되고 말더군요.
그런데 약을 복용하면서부터 저는 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안 좋은 기억들을 말이죠. 물론 깨어 있을 때에는 그런 기억이 떠오르고 있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 기억들이 거의 생각나지가 않더군요. 조금 생각이 난다고 해도 그 기억에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서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참 잘 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항상 곱씹고 회상하고 그리고 후회하고를 반복했는데, 이제는 나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일부러 기억들을 망각하는 것은 아닌, 약을 통해서 잊어가는 것이지만, 그 잊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쁜 기억을 계속 머릿속에 두고 힘들어 할 바에야 잊어버리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제 기억이 나쁜 기억뿐만 아니라, 좋은 기억까지도 사라질까 봐 겁이 나기도 합니다. 가끔씩 건망증처럼 가게에 물건을 두고 오거나 집 밖을 나설 때 물건을 하나씩 빼놓고 온다거나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집니다.
<첫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드류 베리모어와 아담 샌들러가 출연한 영화인데, 루시 역의 드류 베리모어의 모든 기억이 하루가 지나면 교통사고 나기 전으로 돌아가는데, 헨리 역의 아담 샌들러는 교통사고가 난 뒤에 만난 남자라 루시는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루시를 사랑하는 헨리는 매일 그녀에게 모든 기억들과 사랑에 대해 고백하고, 루시는 매번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운 기억들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둘은 정말 천생연분이었는지 루시가 매일 기억을 잃어 버려도 서로의 사랑을 계속 이어나갑니다.
왜 이 영화 얘기를 하느냐고요. 이건 상상이지만, 제가 루시가 된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기 때문입니다. 루시는 매번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모르고 있던 새로운 기억들이 해일처럼 머릿속으로 쏟아지는 것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두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것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짜증나고 억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루시는 잠시동안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내 삶을 살아나갑니다. 그런 루시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루시였다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도망치고 화를 내고 상처를 받고 망가져 버렸을 것입니다.
가끔씩 제 기억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거나 갑자기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미지의 것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 좀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기억이라는 것이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거칠고 아프며, 무섭기까지 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적절히 망각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알 것만 같습니다. 뇌의 회로가 고장나 버리면 삶이 얼마나 망가지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치매에 걸리신 분들을 보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습니다.
적당한 망각이라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적당한'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는데요. '적당한'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균형 잡힌 것이죠. 너무 지나친 망각이든, 너무 적은 망각이든 나의 내면세계와 일상생활에 독이 되겠지요. 그러니 적당한 잊어버림은 축복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망각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좋아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망각을 너무 미워하면 할수록 망각은 반대급부로 더 많이 진행될 테고, 너무 좋아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이 사라질 테니까요.
망각이라는 것을 통해 새로운 출발, 그리고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억해 내는 힘이 아닌 잊는 힘이야말로 우리들이 살면서 더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판도라가 모든 세상의 추악한 것들을 다 잃어버렸지만, 오직 희망만은 간직했듯이 세상 모든 것들을 잃는다 해도 망각만은 내 편으로 두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