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전문대 재학 당시, 소설창작론 교수님이셨던 강영숙 교수님과의 친분으로 박상영 작가가 일일강사로 초청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수업에 오지 못하게 되어 아쉬웠다. 하루는 내가 도서관에서 저녁까지 공부를 하다가 대학 입구를 나왔을 때 어디서 그와 비슷한 통통한 체형의 남자가 횡단보도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 "혹시 박상영 작가님 아니세요?"하고 묻자, 그가 맞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강영숙 교수님 수업을 통해서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작가님 팬입니다."하고 들뜬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강영숙 교수님 만나러 가는 중이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떠나가는 그를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핫하고 멋진 작가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박상영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박상영 작가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 현실을 웃프게 그려낸다. '웃프다'가 무엇인가. '웃기면서도 슬프다'라는 뜻의 신조어가 아닌가. 그의 소설은 마치 블랙 코미디나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청춘들이 겪고 있는 아픔, 고통, 시련, 외로움, 애증, 분노 등의 온갖 감정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그것을 해학적으로, 뼈 있는 농담과 함께 전달한다. 특히, 여태까지 잘 다루지 않은 성소수자, 즉 퀴어에 대해서도 그 현실을 (그의 말처럼) 마치 거푸집을 찍어놓은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의 문체는 간결해서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의 심리를 그리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재밌게) 표현해 낸다. 퀴어 작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박상영 작가, 그의 건필을 기대하며, 그의 다음 작품 역시 몹시 기다려진다.
나의 경험담
이것은 내가 겪었던 일이었다. 2015년 공익근무를 소집해제하고 나서 내가 살고 있는 옆 동네의 한 마트(대기업 계열사)에서 캐셔(계산원)로 일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우울증이 심해 분할 복무를 했던 나는 소집해제를 하고 나서도 우울증을 계속 앓고 있었지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일자리를 지원했다. 마트 A에서 내 이력서를 보고 합격 전화를 주었고, 나는 바로 마트에 가서 다음 날부터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농산, 축산, 수산 등 여러 담당 정직원들과 어머니 또래의 계약직 직원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 나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섣부른 추측을 했다. 역시 추측은 빗나가기 마련이었다. 나는 캐셔를 처음 접하면서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릴 때, 정산에서 과부족 실수를 많이 하게 되었다. 돈이 부족하게 되면 내 돈으로 메꿔야 했기에 나는 정신을 차려 일을 해야 했다.
그 정도는 처음 일을 배우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당시, 오후 11시가 마감이었는데, 나와 중년의 두 여자 캐셔 직원들이 마감 담당이었다. 그중 가장 나이 많은 여직원 B가 10시 50분 안에 모든 마감을 해야 한다고 나에게 얘기해서 나는 계산대 정산과 바깥에 진열된 물건 정리와 마트 현관 문단속을 했다. 하루는 내가 마트 입구 문을 닫고 나서 손님이 물건을 사러 들어오려고 했다. 시간은 10시 55분. 정식 마감 시간까지 5분 남은 상황이었다. 손님이 문 밖에서 몸짓으로 들어갈 수 없냐고 묻자, 나는 B를 돌아보며 열어주어야 하냐고 물었다. B는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 나는 경력 많은 직원의 말을 듣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음 날, 문제가 발생했다. 손님들이 본사 홈페이지에 우리 마트 A가 마감 시간에 문을 일찍 닫아 불편하다며 불만 사항을 올린 것이었다. 결국, 마감 시간을 책임지고 있던 나와 중년 여직원 B, C가 점장님께 불려 갔다. 점장님은 누가 문을 일찍 닫았냐고 물었고, 중년 여직원 B와 C는 나를 가리키며 내가 혼자서 문을 일찍 닫았다고 말했다. 점장님은 나에게 마감 시간까지 마감 준비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억울했다. 분명 B가 나에게 일을 시켰지 않았나. 점장님이 사무실에서 나간 뒤, 두 여직원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현용 씨, 현용 씨는 건사해야 할 애가 없잖아. 우리는 애가 있어서 그래."
어이가 없었다. 그쪽은 자식 키우는 어머니고, 나는? 내 생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을 어째서 내가 뒤집어써야 한다는 말인가. 화가 났지만, 참았다. 괜히 이런 일로 직원들 간에 불화를 만들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 신입 공산 담당 정직원이 들어왔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 직원이었는데, 마트에서 그를 환영하고, (말로만) 나를 환영하는 환영회를 열었다. 마감이 끝나고 공산 담당 직원과 함께 직원들이 회식하고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뻘의 계약직 직원들이 그를 환영하며 자리에 앉혔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앉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서로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하고 있다가 테이블 위에 있던 그릇에 담긴 뻥튀기가 (여직원들이 다 먹어 버려) 없자, 한 중년 여직원이 턱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용 씨, 뭐 하고 있어?"
"네?"
"뻥튀기 안 가져오고 뭐 해?"
나는 그릇을 가져가 호프집 주방에 가서 뻥튀기를 받아왔다.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올 차례가 되자, 나는 눈치껏 직원들의 자리 앞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공산 담당 정직원이 수저를 직원들에게 직접 나눠주고 있었다. 직원들은 (특히 중년 여자 직원들은) 호호호 웃으면서 수저를 받아 자기 자리에 놓았다. 나는 직원들의 자리 위에 수저를 놓았는데, 그의 행동이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회식 자리에서 나는 질문 한 마디도 받지 못하고, 그저 뻥튀기와 맥주만 먹었고, 그는 직원들의 질문 공세에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회식이 끝난 후,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는데, 뭔가 허탈하고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집 앞 골목에서 담배를 몇 대를 더 태우고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을 근무하고 나서 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극도로 심해져서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내가 좀 더 그 집단에 적응하고 어울렸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어찌 됐든 지금의 나는 좋은 사장님과 동료들을 만나 즐겁게 일하고 있다. 물론, 그때의 일을 가끔씩 떠올리면 마음이 언짢아지고 화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작품 요약
박상영의 <요즘 애들>도 내가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한 인간적인 멸시를 받은 수습사원 김남준과 황은채의 이야기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매거진 C에 적응하려고 노력해도 사수인 배서정 에디터와 편집장 등 매거진 C의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칭찬은커녕 인간 이하의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퍼붓고, 사사건건 일처리에 트집을 잡는다. 특히, 배서정 에디터는 두 사람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발언을 자주 하면서 요즘 애들과 자신들을 비교하고 요즘 애들을 비하한다. 그렇게 참고 일하면서 두 사람은 매거진 C에 정직원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정직원 불합격 통보였다. 참다 참다 폭발한 서술자 김남준은 매거진 C를 박차고 나가 새로운 직장들을 거쳐 지금의 기자로 자리 잡는다. 기자로서 8시 뉴스 앵커의 자리까지 올라간 그는 8년 만에 황은채를 만나게 되고, 황은채와의 대화 속에서 매거진 C의 폐간과 배서정 에디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마지막으로, 배서정 에디터를 회상하면서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애들>과 우리 사회에 대하여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내 경험을 떠올리면서도 한편으로 MZ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등을 떠올리기도 했다. 배서정과 편집장으로 대표되는 구세대와 김남준과 황은채로 대표되는 MZ세대. 그들 간의 갈등은 요즘 사회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요즘 애들은 과연 버릇없기만 한 것인지, 요즘 애들은 매사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은 것인지 그런 것들은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요즘 애들을 끼워 맞추려고 해서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요즘 애들도 자신의 꿈과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이 사회에, 이 직장이라는 집단에 적응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집 《믿음에 대하여》의 제목이 괜히 '믿음에 대하여'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믿음이라는 가치가, 신뢰라는 개념이 중요시될 정도로 그 기저의 것들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뢰가 없이는 모래 위의 성처럼 언젠가 그 집단과 사회가 무너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