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습성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처음에는 ‘제법 농담까지 해가며’ 이 병원을 찾았으나, 늙은 간호원이 병실 앞에 ‘나’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걸어준 후, 수의 같은 환자복을 주었을 때 비로소 정말로 아프기 시작한다. 입원한 다음날에는 한 떼의 의사들이 몰려와, 겁에 질려 있는 나를 전범 다루듯 사납게 벽 쪽을 향하게 한 다음, 주삿바늘로 옆구리를 찔러 굉장한 양의 노르께한 액체를 빼낸다. 그렇게 ‘나’의 ‘(모든 환자들이 양순한 민물고기처럼 조용히 지느러미로 미동을 하면서 병원을 부유하고 있는) 금붕어 같은’ 입원생활이 시작되었고,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이 붕어 같은 병원생활이 무척 마음에 들게 된다.
‘나’는 처음에 간호원들에게 흥미를 가진다. 각 간호원들의 주사 놓는 (개개인의 하찮은) 특징에도 어느 틈엔가 친숙해져 있다. 나는 길고 긴 하루를 재밌게 보내자는 생각에 흘금흘금 간호원실을 기웃거리지만, (간호원들의 얼굴이 지극히 사무적으로 뻣뻣해 있고, 그녀들의 얼굴에서 잘 소독한 통조림 깡통 같은 쇳녹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을 받아) 이내 그 작업에 권태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나’는 관심 대상을 의사들에게로 돌려버린다. 나는 (서너 명의 담당 의사들이 환자들을 회진하게 되어 있는) 오전 아홉시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의사들이 회진을 하고 돌아가면 동정을 잃은 소년처럼 쓸쓸한 얼굴로 무릎을 세우고 한참 동안이나 그들이 사라져가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서 ‘나’는 종합병원이 하나의 살아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불균형적인 우울한 희열에 빠지곤 한다.
한편, ‘나’는 입원한 이후 의사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치 못했다는 중대하고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 뒤로, ‘나’는 그들을 웃기기 위해 고용된 사설 코미디언 같은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갖게 되고, 밤낮으로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알아내려 애를 쓴다. 그러나 그들은 유난히 가려운 곳도 없었고, 무언가 가지고 싶은 욕구본능도 퇴화되어버린 것 같아 보였기 때문에 ‘나’의 첫 번째 시도는 좌절되고 만다.
그 다음 시도로, ‘나’는 오전 아홉시, 의사들이 회진하는 동안 병세를 과장해서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인턴의 하품하는 모습뿐이다. 이제 나는 목표를 (하품을 한) 그 젊은 인턴으로 잡고,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병동 15호실의 환자, 습성 늑막염 환자인 ‘나’는 건조성 환자인 그를 웃기기 위해 여러 가지 유머를 던지지만, 그는 마치 웃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내처럼 어리둥절해서 서 있을 뿐이다.
그 즈음, ‘나’의 몸은 적이 쾌조를 보인다. 그러나 그 인턴을 웃길 수 없다는 초조감 때문에 퇴원해도 좋다고 확인을 받고 나서도 약간의 미열에 들뜬다. 결국 ‘나’는 퇴원하기 하루 전날 밤, 병동이라는, 이 철근 콘크리트로 격리된 견고한 미로 속에 실험용 쥐 대신 그 젊은 인턴을 삽입해보자고 생각하며, 1병동에 있는 문패와 2병동에 있는 문패를 모조리 바꿔버린다. ‘나’는 인턴이 새로운 방황의 길로 떠나주기를 기원하지만, 다음날 일어나보니, 섭섭하게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날 오후, 퇴원한 ‘나’는 마중 나온 동생과 함께 차에 타는데, 차창 너머로 그 젊은 인턴이 어떤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파라솔 밑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병원 한구석 코스모스 피기 시작하는 병원에서 방금 그 젊은 인턴이 웃음을 띤 것 같은 환영을 본다.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서 퇴원을 했고, 그는 ‘나’에게서 퇴원을 한 것이라 여기며, ‘나’의 환자였던 사내가 고독하게 홀로가 아니라, 예쁜 여인과 함께 둘이서 콜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여인이 그를 잘 요양시켜 주기를 기원한다.
《견습환자》 작품분석
1. 유려하고 화려한 문체
최인호 작가의 초창기 작품인 이 소설은 근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와서 읽어봐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읽힐 정도로 문체가 유려하다.
2. 다양한 수사법의 사용
서술자인 ‘나’가 걸린 병이라든가, ‘나’가 입원하고 있는 병동,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원들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 묘사하고 있고, 무생물인 병동에 대해서도 의인법(擬人法)과 활유법(活喩法)을 사용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대하고 있다.
예) 감기로만 알았던 증세가 연 닷새를 계속해서 맹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전범 다루듯,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입원생활은 금붕어 같은 생활이었다, 종합병원은 하나의 살아있는 동물이었다, 모든 병동은 밤에도 환히 눈을 뜨고 있었다, 온상 속의 귀족 식물(의사들)
3. 인간은 유희적 존재
이 작품과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을 비교해 보면,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놀이’라는 수단으로 변형시켜 고통이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상의 작품에서 아내와 ‘나’는 각 방을 쓰는데, ‘나’는 아내가 외출할 때마다 아내의 방으로 넘어가서 이것저것 놀이를 한다. 돋보기로 아내만이 사용하는 휴지를 그을리기도 하고, 손잡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한편, 최인호의 작품에서는 ‘나’가 환자로 병원생활을 하면서 병동을 구성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원, 다른 환자들을 관찰하고, 더 나아가서는 웃지 않는 인턴을 웃기려고 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두 작품은 어떤 대상으로부터 고통이나 억압을 받고 있는 서술자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무미건조하게 느낄 일상의 것들을 재밌고 유쾌한 ‘놀이’로 변형시켜 잠시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상의 작품에서는 그 ‘놀이’가 아내에 의해서 중단되는 반면, 최인호의 작품에서는 웃기려는 ‘놀이’가 결실을 맞는다.
4. 최인호 작가의 초기 작품세계
최인호 작가는 1970년대 작가군의 선두주자로 불리면서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이 나타나던 1970년대 초 한국 문단에 소설 붐을 일으킨다. 그는 1970년대에 진행되었던 산업화 현상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도시화 과정이 지닌 문제점을 예리하게 반영하면서 신선한 감수성과 경쾌한 문체를 통해 ‘1970년대적 감성의 혁명’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는데, 이때 그의 초창기 작품으로는 《미개인》(1971) 《타인의 방》(1971) 《처세술 개론》(1971) 《무서운 복수》(1972) 《돌의 초상》(1978) 《깊고 푸른 밤》(1982) 등 단편 위주의 소설이 있다.
5. 최인호의 《타인의 방(1971)》과 《견습환자(1967)》의 사회적 배경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아주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났고, 농사짓는 것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이주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서울의 주택난은 심각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1960년대 중반 이후, 정부는 도시에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최초로 단지 형태로 건설된 아파트가 1962년 준공된 서울의 마포아파트다.
이러한 아파트 같은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인간 소외(고독한 도시인의 모습) 현상이 대두되었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 같은 작품에서 보면, 제목부터가 ‘타인의 방’이다. 이런 제목은 전통적인 공동체적 주거 공간이 아파트라는 사적 주거 공간으로 대체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관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주택에 비해, 아파트는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 알 필요도, 알 수도 없는 철저한 익명의 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에서 ‘의사’들은 환자인 ‘나’를 대할 때, 웃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한다.
‘그들은 동안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언제나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육상 선수처럼 복도를 부산스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언제나 그들의 곁에선 약품 냄새가 나고 있었고, 그들의 희고 투명한 손가락은 햇살 속에서 메스처럼 번득이곤 했다.’
간호원들도 마찬가지다.
‘간호원들의 얼굴은 지극히 사무적으로 뻣뻣해 있었고, 그녀들의 얼굴에선 웬일인지 잘 소독한 통조림 깡통 같은 쇳녹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이러한 묘사들로 미루어 볼 때, 경직된 병동의 분위기는 군부독재와 산업화로 인해 파생된 사회계층의 경직된 권력구조를 떠올릴 수 있다. 종합병원은 하나의 살아 있는 동물, 즉 권력의 몸체인 것이다. 그리고 가장 나이 들어 뵈는 의사, 젊은 인턴, 간호원들, 그리고 환자들. 이 순서가 바로 그들의 권력 순서인 것이다.
또, ‘나’는 젊은 인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인턴이 분명 이제 곧 우수한 성적으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해외유학을 해 박사학위를 따고, 고국으로 돌아와 종합병원 외과 과장쯤의 관록으로, 점점 그 알맞게 균형잡힌 몸매는 당연한 듯이 체중이 늘어, 드디어는 환자로 하여금 그 몸매만 보아도 병이 나아버릴 만큼 권위를 보이는 의사가 되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특권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권력구조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이어지며, 자유 의지를 갈망하던 인간에 대한 소외의식으로 이어진다.
6. 의사와 환자의 주객전도 현상
작품의 초반까지는 의사가 권위적인 위치에서 환자인 ‘나’를 비롯한 병동의 환자들을 통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사들은 마치 ‘전범 다루듯’ ‘나’를 벽 쪽으로 몰아세우고, 노르께한 액체를 빼내었고, ‘나’는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그들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울고 있었다.”라는 내용만 보아도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환자에 대한 권한(또는 권력)이 매우 센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견습환자인 ‘나’가 병원생활에 차차 적응하면서 ‘나’는 병동을 구성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원들에 관심을 보이고, 더 나아가 웃지 않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발견해 낸다. 그리고 웃지 않는 젊은 인턴을 웃겨 보려고 별의별 수단을 써 보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그를 건조성 환자로 명명하며, 젊은 인턴을 나의 환자로 여긴다. 결국 ‘나’는 젊은 인턴이 어떤 아름다운 여인과 파라솔 밑에서 콜라를 마시며 웃고 있는 것을 환영처럼 발견하게 되고, 감격하면서 그가 ‘나’에게서 퇴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와 의사의 권력 위치가 뒤바뀐 주객전도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최인호 작가는 왜 이러한 장치를 만들었을까. 아마도 또 다른 시각에서 의사 권력의 모습을 조망해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7. 암울한 현실에도 희망은 있다
결말 부분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한다. ‘이제 나는 통행금지 시간을 걱정하고, 신호등에 위반되지 않으려 걱정하고, 시민증을 꼭꼭 가지고 다녀야 하는 새로운 소시민으로서 파스와 나이드라지드를 하루에 꼭꼭 세 번씩 복용하며,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도 슬퍼해야 하는 길고 긴 방황의 생활과 서서히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나’는 이제 군부독재의 권력 아래에서 살아가며 방황하게 될 것이고, ‘병원’이라는 권력에 굴복해서 살아가야 하는 견습환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나’가 퇴원하고 나서야 어떤 아름다운 여인과 콜라를 마시며 웃고 있는 젊은 인턴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감격하면서 ‘나’의 환자인 젊은 인턴이 비로소 ‘나’에게서 퇴원을 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여인이 그를 잘 요양시켜 주기를 기원한다. (웃지 않던 사람이 웃게 되는) 인물의 변화에 주목해 본다면, 경직되고 살벌한 분위기의 병원(한국 사회)에서 벗어나 오롯이 한 사람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사랑(또는 기쁨)을 나누는 것은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최인호 작가의 메시지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