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소중하게 여기는 화자의 마음이 드러나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상징하는 '간장'이라는 것이 할머니의 길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예전에는 지금과는 달리, 며느리가 남편이나 시부모님과 한 상에 밥을 두고 먹을 수가 없었기에 며느리였던 할머니의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지 차마 짐작마저 가지 않습니다. 그 인고의 세월을 간장으로 달래야 했던 할머니. 간장만이 할머니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화자는 할머니처럼,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처럼 간장을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따라 하고 싶어지는 그런 것 한 번쯤 있지 않나요. 화자는 할머니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고, 그래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장을 자신도 좋아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할머니가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했던 것처럼 화자도 간장을 먹을 때마다 외로움을 달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간장을 먹으면 뱃속이 따뜻해졌고 다시 일어설 기운을 주었다는 것에서 그것이 드러납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문장은 이 시의 중심 문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일 정도로 할머니와 간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할머니를 추억하며 혼자 남은 화자는 콩자반이 담긴 반찬통이 아닌,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놓았습니다. 이는 할머니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히는데요. 콩자반을 해주시던 할머니가 계시지 않고 이제는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하는 화자의 쓸쓸함 내지는 외로움이 읽힙니다. 그러면서 할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도 읽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2015년 작고하신 친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깊은 편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다니시고, 저를 특히나 예뻐해 주셨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는 제 인생이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관이 화장터에 들어갔을 때에는 꺽꺽거리며 울음을 토해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제가 떠올랐던 기억은 할머니께 잘못했던 기억들이었습니다. 오래전 할머니께서 짜파게티를 끓여 주셨을 때, 짜파게티에 물이 많다고, 짜파게티에 떡을 넣었다고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을 때가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이 나기도 했습니다. 또, 요양원에 계셨을 때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기로 해 놓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은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하상만 시인의 <간장>을 감상하면서 친할머니가 그리워지면서 문득 짜파게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를 그리워할 만한 음식이 하상만 시인에게 간장이라면, 저는 짜파게티인가 봅니다. 오늘따라 떡이 들어가고 국물이 많은 할머니의 짜파게티가 먹고 싶습니다. 할머니가 무척이나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