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만의 시는 저번 간장에서처럼 쉽지만, 쉽지만은 않은 시인 것 같습니다. 쉬운 시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시어들의 맛을 느껴보면 꽤 깊은 맛이 느껴진달까요. 그러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느끼게 만듭니다. 나도 그랬었는데 하는 공감과 함께 나는 어느새 이 시 안에 화자가 되어 있습니다.
한 마리의 강아지가 된 것처럼 나로서는 결코 만질 수 없는 곳의 상처가 언제쯤 사라질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상처는 네가 치유해 주고 있었다는 것.
저는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 상처는 억울함과 창피함, 분노와 집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복잡한 트라우마는 저로서는 도저히 완전히 치유할 수 없는 것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고슴도치가 공격을 받으면 가시를 세우듯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보이게 될 때마다 날을 세우고 예민하게 반응해왔습니다.
부정적인 경험들은 저를 자꾸만 안으로 숨어들게 만들었고, 저는 비겁한 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다독이기는커녕 더 험하게만 다루었습니다. '무엇을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적인 사고와 그것에 점점 지쳐가던 저는 양가감정이라는 몹쓸 괴물을 낳았고, 그 괴물은 여러 중독과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뇌의 미세한 현조차 쉽게 고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피폐해져 갔고, 스스로 회생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악순환의 늪에서 저를 건져 올린 것은 애인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칭찬은 수십, 수백 번을 한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가 망가져가는 제 인생을 바로잡아 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저를 한없이 받아주기가 힘듦에도 불구하고, 또 그 자신도 지쳐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 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말합니다. "네가 날 배신하지 않는 이상 나는 널 포기하지 않아."라고. 그는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습니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번개가 쳐도 항상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 있을 사람. 그런 그가 저는 참 좋습니다.
저도 시의 화자처럼 손 닿지 않는 깊은 나의 내면에 그가 자꾸 입맞춤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의 무뚝뚝하고 엄격한 아버지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상냥함과 섬세함, 그리고 제가 겪는 고통을 기꺼이 함께 겪어주는 다정함과 배려심. 생채기가 난 제 마음을 그가 연고를 찍어 발라주듯 감싸주고 있어서 마음이 점차 아물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감정 기복이 심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곤 합니다. 약을 먹고는 있지만, 약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명상과 책과 글쓰기를 가까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정말 답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 기복과 변덕을 다 받아줍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의 생떼를 다 받아내듯이, 치매에 걸린 노인의 이야기를 다 견뎌내듯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임에도 그는 그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해 나갑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네가 어떻듯 상관없어. 나는 단지 너를 사랑할 뿐이야."라고.
그 한 마디 말이 저에게 사랑이 되고, 약이 되고, 힘이 된다는 걸 저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에게 "사랑한다."하고 말 한마디를 전달합니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